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어른
멈춘다고 죽지는 않던데
새해가 밝았고, 30대 중반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감당해야 하는 여러 가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중이다.
어른의 짐 중에는 책임감이란 참으로 무거운 감정이 실려있었다. 그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는 나를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이들이 있다. 나의 부모님이다. 그들은 내가 태어난 순간 아니 그 이전 뱃속에서부터 나를 보호했다.
시간의 유한함을 느끼는 순간 대부분 나의 부모님이 존재했다. 한없이 강해 보이고 무서웠던 아빠가, 운동회에서 작은 내 손을 잡고 함께 달리던 엄마가 이제는 추억에서만 존재한다. 그들이 노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언제나 익숙하지 않다.
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바래는 모습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온다. 외손자가 둘이나 있는 명확하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며칠 전 아빠가 떡볶이를 사 왔다. 딸이 그렇게나 자주 먹던 떡볶이를 지나가는 길 분식점에서 사 가지고 왔다.
엄마는 함께 마트에 가면 먹고 싶은 과자를 고르라고 한다. 아직도 그들의 눈에 서른 중반의 딸은 여전히 어린아이인 것이다.
어른이지만 스스로의 나약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는 나는, 부모님의 나약함이 낯설다.
부모님은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나에게 묻는다. 의견을 묻고, 함께 가자고 한다. 아마도 어른이 된 자식을 의지하게 된 것 것이겠지.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는 종종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나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자신의 부모님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부모란 그런 존재일테니
나약해지는 순간 그들은 그리움을 꺼냈다.
엄마는 심신이 지칠 때, 너무나 행복할 때,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는 특별한 날 부모님의 산소에 방문하고는 한다. 그들만의 그리운 표현이겠지.
이제는 안다. 나의 보호자들도 의지할 어른이 필요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부모님과 나는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중이다. 의지하고 싶은 순간 서로를 의지하며, 보호가 필요한 순간 서로의 보호자가 된다.
누군가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앞으로 더 쉽지 않겠지만 그들은 몇십 년을 그렇게 해왔다. 난 아직 낯설고, 버겁지만 기꺼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시간의 유한함을 알아버린 어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보호자들이 오랜 시간 내 곁을 지켜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