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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18. 2022

나의 레이디, 헤디.

일본의 캐릭터 인형 몬치치モンチッチ







만약 당신의 삶에 같은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절대 피하거나 도망가서는 안된다. 그 패턴이 더욱더 몸뚱이를 불리며 당신을 쫓아오기 때문이다. 언제나 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내 앞에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밀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갑작스럽게 서점을 그만두고 메지로에 있는 집을 떠나 동경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헤디의 집으로 이사를 갔다.


헤디는 동경의 요요기 공원에서 발견한 인디밴드 '루시즈'의 공연을 갔다가 만났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헤디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 온 것 같은 헤디는 생김새도 옷차림도 성격도 따분하고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런 헤디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위기가 나를 전혀 다른 신세계로 안내해 줄 것만 같았다.


나는 헤디의 모든 것을 다 좋아했지만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가 언제나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유명한 사람에게도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인사하고 말을 거는 모습이 정말 쿨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작고 귀여운 원숭이 캐릭터 '몬치치'를 좋아하는 헤디는 몬치치처럼 짧은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작고 귀여운 소녀였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이나 더 많았지만 나는 언제나 헤디가 동생같이 느껴졌고 그녀의 사랑스러움과 밝은 모습이 좋았다.


일본의 허름한 라이브 하우스에서 나를 처음 보자마자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헤디의 모습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헤디는 거침없이 나에게 다가왔고 나의 세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존재였다.




헤디의 집은 동경 중심가에서 한 시간 정도 전철을 타고 가야 도착하는 곳에 위치한 허름한 아파트였는데 한 사람밖에 못 들어가는 아주 좁은 주방과 두 사람이 함께 쓰기에는 아주 작은방 하나만 있는 일본식 다다미식 집이었다. 방에는 텔레비전과 코타츠와 화가 지망생인 헤디의 그림들이 가득해서 발 디딜 곳조차 없었지만 그곳에서 우리 둘은 이불을 깔고 자며 꿈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마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건물 벽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은 헤디를 동경하며 그녀처럼 나도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은 그릴 줄도 모르고 노래에도 소질이 없던 나는 작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헤디와 나는 '캐시미어 나폴레옹'이라는 인디 개그 듀오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항상 그들의 코믹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우리도 반드시 만담을 하는 개그 듀오가 되자고 굳게 다짐하며 매일 밤 이불속에서 우리만의 개그를 창작하며 큰 소리로 웃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그때의 나는 정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밀크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팠지만 밀크보다 더 완벽한 소울메이트가 내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헤디와의 생활은 언제나 즐거웠고 가슴 벅찼고 아름다운 청록빛이 물드는 여름 같았다.




헤디의 이름은 '쿠스모코 요시코'이다. 일본의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난 헤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으로 올라와 미술 대학을 다니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공장에서 친한 사람이 헤디가 사람들 앞에서 서슴없이 방귀를 뀐다면서 '방귀(일본어로 방귀는 헤屁へ이다) 나라의 레이디'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요시코는 헤디가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방귀를 뀌어도 사랑을 받는 헤디는 사실 가정 폭력을 경험하고 자랐다. 그래서 헤디가 매일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전개에 굉장히 익숙했다.


자해를 하는 밀크의 폭력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지만 헤디의 폭력은 조금씩 타인인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사소한 걸로 화를 냈다. 내가 목욕을 너무 오래 한다. 얼굴과 패션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쓴다. 게으르다 등의 이유였다. 그리고 매일 밤 잠을 자려고 하면 드럼 스틱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나의 잠을 방해했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했는데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내가 가난을 알아야 한다면서 상한 음식을 억지로 먹게 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헤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고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헤디와 나와 함께 친하게 지내던 리카가 헤디를 완전히 손절했을 때 나만 헤디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밀크와 헤디로부터 큰 가슴의 상처를 입은 나는 정신적 안정을 위해 잠시 한국에 귀국했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디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헤디와 지내면서 점점 몸이 아파진 나는 리카의 도움을 받아 밤에 몰래 짐을 챙겨서 이사를 갔다. 그리고 그게 헤디와의 마지막이었다. 밀크와 마찬가지로 헤디는 나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마치 갑작스러운 작별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모두가 이렇게 나를 떠났다는 듯 침묵으로써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밀크와 헤디 전에도 그리고 헤디 이후에도 나는 비슷한 패턴을 이십 대를 다 받쳐 경험해야 했다. 나는 사람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여 밀크로부터 헤디로부터 그리고 나를 아프게 하는 모든 상처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을 때까지 폭풍은 멈추지 않고 불어왔다.


왜 나를 계속 쫓아오지?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한 거지? 내 인생은 왜 이렇지?


그리고 그제야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구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고 나와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완벽한 단짝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외부로부터 구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했다. 나 자신만이 나의 유일한 단짝이 되어주어야 하고 나만이 나의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다고 큰 목소리로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이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남편이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남편과 모든 것을 함께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나만이 나를 언제까지나 사랑하길 바란다. 나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란다.




아주 오래전 헤디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적이 있다. 너무나 나답게 끝까지 완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 쓴 첫 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안전한 곳에서는 특별함을 느낄 수가 없어. 헤디 그래서 나는 네가 좋은가 봐.'


내가 이제는 모든 인간 드라마와 특별함을 벗어던지고 나 자신과 평화로운 관계를 되찾았듯이 헤디도 밀크도 지금 어디에선가 자신을 사랑하고 안전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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