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각자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산다.
나는 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모든 이에게 자신만의 세계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세계는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닌 세계다. 어릴 적으로 거슬러 가면 '나'를 이해하는 것과 '나'를 알아가는 것은 앞 뒤가 맞는 않는 이야기라 여겼다. 나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아는 것이라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 록 복잡함이라는 것은 늘어나며 '나'라는 존재를 혼란하고 모호하게 했다. 이 혼란과 모호는 미궁 속으로 빠뜨리고 잃어버림을 느끼게 했다. 어쩌면 애초부터 알지 못하고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잃어버림이라는 공허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나아갔고, 방황은 시작되었다.
스스로를 알아 가면서 깨달은 것은 난 자주 그리고 주기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울감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행위를 한다고 쳐도 늘 먹히는 아닌 것이다. 때때로 어떤 마음들은 늘 알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게 되기도 하고 때론 그런 상태로 머물러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있기에 나는 계속해서 '나'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론 간절하게 내가 하면 즐거울 일들에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낸다. 그러다 나에게 맞는 일들이 있으면 하나의 방법을 적립하는 것이다. 많으면 많아질수록 좋고, 하나의 방법을 공고히 할수록 더 좋았다. 어쩌면 날 알아가는 것이 a 냐, b 냐처럼 단순 명료하고 정답지가 있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이처럼 나의 세계가 존재하고 당신의 세계가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긴밀하고 복잡하게 엮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의 부당함을 견디며 산다. 어쩌면 당연한 이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 나만이 겪는 억울함과 부당함이지 않으며 가끔은 나누고 나면 일정 부분 해소가 된다. 우리로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안심 같은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각박하고 개인적임을 강조하는 사회가 싫지 않다 때때로 매우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게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렵다. 각자가 가진 집합의 동그라미 속에서 일정 부분 교집합으로 존재해야 한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사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을 안다고 해도 사는 건 고되다. 하지만 이런 것을 모르던 때의 나였다면 벗어남이라는 표면적인 자유에 굴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 안에서 방도를 찾지 못한 시기엔 매일은 견디기 힘듬만이 남아 있었다. 이 생각은 벗어남이라는 눈앞에 놓인 손쉬운 방법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었었다. 이 처럼 내가 겪은 수년간의 불안과 우울 그리고 나쁜 생각들은 결국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었다. 내 안의 자유를 찾기 위해 그리고 내 안의 부정과 긍정들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나날들이었었다.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해 그간의 깊은 부정들을 견딘 것이다. 지금도 때때로 부정들은 날 휘감는다. 하지만 이젠 두렵지 않다. 이렇게 나는 나에게 한 발 다가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