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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재원] #19. 이제야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

하루가 지난 다는 것

by 남산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참 더디게 가는 게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놀고 시험 때는 바짝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갔습니다. 또 취업을 하니 이젠 방학도 없고, 매일의 성과와의 싸움으로 8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후 회사 생활이 이제 10년이 넘었는데, 22개월의 군대생활보다도 훨씬 빠르게 지나간 10년입니다. 오늘은 매일 보고해야 하는 것도,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육아휴직자로서 느끼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1. 하는 것 없이도 보낼 수 있는 시간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도덕적 판단은 어렵습니다. 오전에 베트남어 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1시 반이나 2시 정도가 됩니다. 날마다 정해진 어디를 청소하고 정리를 할 것인지 계획은 세우지만 해내지 않으면 내려지는 페널티가 없는 스스로의 약속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들을 하원하는 3시까지 청소를 하는 날도 있지만,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 휴대폰으로 웹툰이나 웹소설을 읽기도 합니다. 나가기 전까지 말이죠.


초반에는 시간에 대한 의미를 두고 저에게 채찍질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초기에 스트레스가 쌓여 얕은 공황장애와 비슷한 불안 증세가 오기도 했습니다. 제 성격은 스스로 발생한 일들이나 어떤 행위에 대해 의미부여를 잘합니다. 나 스스로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어 그 시간을 잘 이겨내고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여기와 서는 이 육아휴직이라는 시간이 육아를 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과 시간을 보내어 바르게 자라게 하는 것이 목적인데, 향후 커리어적인 면이 자꾸 생각이 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주변 분들은 저에게 육아휴직 후의 복귀하는 저에게 걱정과 조언을 해줍니다. 커리어적인 'loss'를 예로 듭니다. 업무와 멀어지는 시간 동안 제가 잃을 것들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사실 얻는 것도 있는데 말입니다.



2. 하루하루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


첫 째가 7살인데 학교에 갈 때가 다 되어가서 그런지 부쩍 말 듣는 태도나, 부탁을 하는 태도에서 이전과는 달리 바로 실행하거나 하고 나서 본인이 원하는 일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먼저였고 아빠의 말은 그다음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아빠의 말을 그렇게 듣는 것은 아니지만 빈도가 갑자기 쑥 늘어났습니다. 이만큼 컸다는 느낌이 확 드니 놀랍기도 하며,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런 마음이 들 때면 혼자 가슴이 울컥해 눈물이 오릅니다. (하지만 흘리진 않습니다.)


5살인 둘 째도 변했습니다. 더 말을 안 듣기 시작했습니다. 미운 네 살이라고 했던가요... 이런 일반화하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확실히 변했다고 생각됩니다. 조금 더 어릴 때는 하지 마라고 했을 때에는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젠 하지 마라고 하면 일단 하고 봅니다. 어떤 아동심리학자의 말을 들어보니 당연한 행동이라고 하더군요. 순수한 호기심. '하지 마'라고 이야기는 들어지만 궁금한 겁니다. '하지 마'를 들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도 어렸을 때 저랬을까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잠깐 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첫째처럼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조금 더 더디게 가는 시간


연차를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육아에 돌입했으니, 휴직한 지 만 4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1년의 3분의 1의 시간입니다. 저에겐 이 시간이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디게 간다고 느껴집니다. 만 10년의 회사생활의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은 들고, 작년 한 해 머리를 싸매고 주말에도 집에 일을 가져가며 온통 회사의 일에 매여 있던 때는 정말 한 달이, 반년이, 1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을 언제 확인할까요? 해야 할 일을 끝내야 하는 시간인지 아닌지 쫓기듯이 대부분 볼 것입니다. 미팅이 있거나 퇴근이 있거나 언제 부를지 모르는 팀장과 임원의 호출에 흐름이 끊기면 안 되고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피드백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쫓기는 생활에서 지금은 쫓아야 하는 생활로 변화하였습니다. 일만으로 가득 찬 하루의 시간을 아이들을 보살피고 공부하고, 집안일을 하는 등 스스로 만드는 일들로 채워야 합니다. 마감기한은 있지만 더 널널하기에 그 사이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무언가 더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작정 채우는 것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루틴한 것들은 만들어가는 놓아 미리 채워두고 그 사이에 유연하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놓아 봅니다.




호찌민에 도착하고 한 달의 시간은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입니다. 5성급의 유명 호텔 체인의 레지던스였지만, 어둡고 하루를 낯설게 만들어주는 특유의 공간 구성과 '임시'거주라는 불안함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지나고 보니 이 시간도 정말 압축해서 생각해 보면 하루 정도의 의미를 저에게 지금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지금이 중요하니까요. 워낙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좋은 기억만 가지고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지금 내가 하가게 될 것이고 잘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좋은가, 천천히 가는 것이 좋은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 속에서 가족들과,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한 즐거운 기억들이 미래의 내가 긍정적으로 살 토양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쉽지 않은 하루이고, 오늘 아내와 아이들과 즐거운 기억을 만들었으니 내일도 힘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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