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친구를 만들지..?
살면서 이런 고민을 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학생일 때 전학을 가는 것도, 이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집을 옮기는 것도 새로운 소속으로 들어가는가 봅니다. 전학을 간 적도 없고 아직 이직을 한 적도 없는 저에게는 이런 환경이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대학 입학이나 첫 입사처럼 처음 들어가는 커뮤니티에는 항상 즐거운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가는 사회의 시스템에서 함께 시작하는 동기들과의 만남은 무척이나 설렜습니다. 그런데 해외로 이사를 오는 것은 이런 즐거운 긴장감과는 다른 묘한 이질감이 다가옵니다.
정신없이 이삿짐을 보내고 아이들과 입국한 이곳에서 레지던스 호텔에 머물며 저는 공황 증상이 있었습니다. 좁은 곳에 있거나, 수영장에서 물에 들어가면 시야가 좁아지며 머리가 옥죄며 식은땀이 났습니다. 해외로 와서 매일 아이들 등원과 하원을 반복하며 낯선 사람들과 언어에 둘러싸여 가족 외 다른 누군가와도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와 같이 주재원의 아내와 함께 이곳에 육아를 하러 온 남성 친구를 만들면 좋겠다.'
한인 인구가 10만 명인 이곳에서 그런 분이 없을까 했지만 여기 온 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런 분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오전과 오후에 아파트나 동네에 머무는 분들은 대부분 여성분들입니다. 사실 30대 후반의 남자로서 이 분들과 적극적인 친구 관계를 맺기에는 서로(?) 조금의 망설임이 있습니다.
■ SNS로 네트워킹에 도전! (중도 포기)
초창기에 SNS를 통해 친구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대학 이후 페이스북 이후 열정적으로 운영한 적 이 없는 SNS지만 익명성이 강한 스레드에서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오프라인에서 간단히 마음 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인데, 스레드의 익명성은 더욱 피상적인 관계만을 만든다고 느껴졌습니다.
■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 어머니들과의 교류하기! (반쯤 성공!)
중간에 동네 한인 커뮤니티에 들어와 보니 이미 많은 어머니들은 각자의 소그룹들이 있고, 꽤나 탄탄합니다. 저는 하얀 백조들 사이에 블랙스완으로 튀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오고 가며 마주 본 분들과 인사도 하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온 가족에 저희 아이들과 동갑인 친구들이 있어 부쩍 가까워졌습니다. 아이들을 통해 가까워지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억지로 가까워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자연스레 같이 지내어 가까워지면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이며, 적당한 거리가 있다면 그것대로 함께 지내면 될 일입니다.
■ 학교에서 학우들과 친해지기!
베트남어 수업을 들으러 대학교에 가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반에는 말레이시아, 러시아, 중국과 다수의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가까워진 건 한국인 형님입니다. 세계여행을 하고 온 형님과는 수업 후 점심을 함께하는 런치메이트가 되어 꽤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형인 줄 알았던 말레이시아 동생은 저보다 한 살이 어렸고, 러시아 친구는 아직 20대 후반입니다.
처음엔 서로 가깝지 않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농담도 하고 밥도 한 번씩 같이 먹으며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매주 금요일을 함께 점심을 먹는 날로 정하여 다양한 International Food를 먹으러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서로 영어와 베트남어를 섞어가며 이야기하고 있어 한국인들과 이야기하는 것과는 이해도는 다르지만 수업과 식사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깊은 친구들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건 서로 이야기하고 베트남어도 공부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직 2년여 이상 남은 이곳에서의 생활, 한국에서 친했던 친구와 동료들은 없지만 이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꼭 같은 말을 사용하는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영어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약해졌던 마음도 이제 단단해졌고, 베트남어 공부로 엮였지만 모두 이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이어서 전우애로도 묶인다고 느껴집니다.
매주 돌아가며 자신의 나라의 음식을 소개하고 밥을 사는 게 루틴이 되어가고 있는데, 다음 주에는 제가 한 번 소개해야겠습니다. 말레이시아 동생은 화교계 말레이시아인인데, 한국-중식에 대해 말하니 아주 신기해했습니다. 한 번 베트남에 있는 중국집에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아주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해져 갑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도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네요. 점점 나의 삶이 뿌리내려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