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는 자유예요."
베트남에 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 그것은 바로 '내 소유의 오토바이'를 가져보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자차가, 이곳에 오면서 가져오면 관세가 차 가격의 50%라는 말과 오토바이가 많아 운전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에 냅다 팔아버리고 왔다. 그러고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불안 증세와, 일을 멈춘 뒤의 무력감. 용기 내어 타본 오토바이 택시에서 이곳이 낯설지만 바깥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조만간 오토바이를 사서 현지 사람들처럼 살아보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오토바이를 타기 위한 과정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경험들로 긴 시간이 걸렸다. 호기심과 짜증으로 가득히 보낸 시간들이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기 위해서는 베트남 운전면허증이나 국제면허증이 필요한데 국제면허증 유효기간은 1년이고, 베트남 운전면허증은 비자 기간 동안 유효기간을 받을 수 있다. 최소 2년은 있을 테니 국제운전면허증을 택했고, 또 베트남 운전면허증이 이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으로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장장 한 달 반 만에 모든 서류를 준비하였다. 운전면허증 자체는 플라스틱카드 재고가 없어 2~3개월 뒤에 받을 수 있지만 운전면허 등록번호를 받았다. 공식적으로 정부 시스템에 등록된 드라이버로서 운전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설레기 시작한다. 어떤 오토바이를 사야 할까. 새 오토바이? 전기 오토바이? 비싸지만 예쁜 거? 적당히 실용적인 거? 이런 걸 한 번 파게 되면 또 성격 상 대충 볼 수가 없고, 현지 사이트들까지 다 뒤져본다. 일주일간 챗GPT와 베트남 중고 오토바이 매매 사이트를 보고 대략 결정. 이쁜 건 상관없고, 5년 이내 제품, 넓은 안장, 1만 킬로 미터 이하.
새 걸 사려니 외국인인 내 명의로 하면 번호판에 '난 외국인(이니 돈 뜯어가쇼)'라는 의미의 'NN'번호판이 주어진다. 공안이 잡아 벌금을 물리거나 뒷돈을 타간다. 난 지갑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중고로 원 소유자로부터 소유권을 공증받는 것으로 진행하려고 하고, 매물을 찾았다. 집 주변 한 오토바이 렌털샵에서 원하는 사양의 혼다 'LEAD'가 판매 중임을 확인. 바로 다음 날 방문하여 시운전과 공증을 모두 진행하였다. 2개월마다 와서 엔진오일을 갈라는 AS를 해준다. 샵에서 사면 좋은 점이다.
그렇게 난 검은색의 혼다 LEAD를 중고로 자유를 구매했다. 이동의 자유.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이동. 돈 많은 사람들은 기사를 두고 시간을 버는데, 난 이동하는 시간도 참 좋다. 내가 못 가본 길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움을 항상 맞이하게 된다. 매일이 변화가 생긴다. 지루하지 않다. 지나간 곳에서도 내가 못 본 것들을 본다. 파라솔 밑의 작은 반미 가게들, 아침에만 서는 노상 카페들, 도로 위에서 복권을 파는 사람들. 롤스로이스와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스쿠터의 손잡이에 달린 대학생의 보온물병과 스티로폼에 담긴 점심도시락. 밀크티를 배달하는 그랩기사. 오토바이 그랩 기사 뒤에 타서 달리는 중에도 스마트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정수기 물통을 20개는 달고 가는 오토바이. 오토바이를 다 밀어버릴 듯이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시내버스.
시선을 가리는 것이 없기에 달리는 모든 순간이 다 나에게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이다. 이제는 아이들과 한 번 타봐야겠다. 항상 안전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