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6개월 차 자기 평가
이제 다음 주면 육아휴직을 신청한 지 6개월이 된다. 그리고 베트남에 온 지는 5개월이 된다. 아내가 먼저 주재원을 떠나고 1개월을 한국에서 육아를 하고, 이제 5개월 간 베트남에서의 가정주부(夫)로서, 주재원의 남편으로서의 삶을 중간 평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직시절 인사부서에서 일하던 게 아직 몸에 배어있나 보다. 6월도 지난 김에 상반기 평가를 스스로 해보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도 좋은 남편이자 아빠로서, 그리고 당당한 미래의 나를 만들기 위한 시간으로 삼아야겠다.
[목표 1]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내기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를 따라 이곳에 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알 수 없는 불안증세였다. 공황장애 증상과 비슷했다. 잠에 들지 못하고 휴직, 복직, 육아, 사람들 등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이 밤새 머릿속에 떠다니며 뜬 눈으로 며칠을 지새웠었다. 새로운 환경과 역할에 '내가 기대했던 나의 모습'과 달리 내가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로 아내가 걱정을 하기도 했고, 위로도 해주었지만 핀잔도 주는 이야기를 듣고 서운해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돌고 돌아 결국 가족들에게 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바뀌어야 했다. 아니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다.
스스로 자부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확실히 긍정의 생각보다 마음에 주는 자극이 확실했다.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속에서 가둬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매년 To-do List에 있던 글을 쓰는 것을 시작했다.
[목표 2]
브런치스토리 작가 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 때부터였던 것 같다. 문학전공자로서 글도 많이 접했지만, 생각을 나만의 방식으로 글로 옮기고 싶어 했다. 블로그에 간간히 글을 쓰긴 했지만 글을 쓴다기보다는 여행기나 정보를 주는 것에 많이 무게를 두었다. 그런 포스트가 많이 읽힐 거라 보았다.
브런치스토리의 서비스가 시작되며, 나의 목표는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는 것으로 4년 전에 잡았다. 매년 연초 목표에 적기도 하고, 작심삼일처럼 연초에 4주간은 매주 글을 쓴 흔적들도 있었다. 간간이 브런치스토리 작가신청을 했지만 2번을 떨어졌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재원 아내를 따라간 남편의 이야기로서, 나의 불안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을 글로 처음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5개의 글을 쓰고 저장 후, 한 번 만에 작가로서 여기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매주 1개 이상을 게시하면서 나의 불안도 줄어들고 이제 매우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
[목표 3]
베트남어 배우기
집에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쁘지 않고 내가 만든 요리는 꽤나 맛있다. 다만 매일 이러한 루틴에 있는 것은 밖으로 에너지를 계속 발산해야 하는 나에게는 답답한 새장에서 지내는 일이었다. 밖에 나가 걷기에도 인도가 오토바이 주차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리고 친구가 없고 주재원 남편을 따라온 아내분들과도 다른 성별인 남자로서 거리가 둬진다. 어딘가 풀어야 하는데, 결국 빠르게 에너지를 쓰고 나의 능력을 향상하는 데에는 돈 주고 하는 것 밖에 없더라.
먼저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학교에 있는 베트남어학당에 정규과정을 등록하였다. 한국/중국/말레이시아/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학우들이 있었다. 초반에는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낯설기도 하지만, 모두가 낯선 나라에서 다른 목적으로 와 있었고, 또한 모두가 남자였다. 수업은 평일 매일 2시간씩이었는데, 매일을 보다 보니 모두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각자의 나라의 음식들로 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모두 흥미로운 목적으로 이곳에 왔고, 남자들끼리라 그런지 마음도 잘 통하고 유머도 잘 통해서 나의 심리에 큰 안정감을 주었다. 그중 몇몇은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갔지만 말레이시아 친구와 한국인 형님 한 분과는 지금 4개월째 함께 공부하고 있다. 서로 의지가 조금 되기도 한다.
[목표 4]
꾸준한 운동하기
한국에서도 사실 운동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로드바이크, 러닝, 헬스 등 6개월 이상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가장 오래 했던 스포츠는 수영과 검도다. 대학 졸업 전 인턴생활 동알 10개월간 주 3일 새벽 수영 6시~7시 부에 들어가 중급 1반까지 갔었으나 이사 때문에 계속하지는 못했다. 그다음 직장에 다니면서 검도를 시작했다. 이사 간 동네에 크진 않지만 아담한 크기로 검도장이 있었고, 11개월간 운동을 했다. 1단을 목전에 두고, 첫째 아이의 출산이 다가오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지속하지는 못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운동을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로 적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큰 수영장, 헬스장과 테니스장이 있었다. 수영은 이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정착 초기 겪었던 불안증세가 물리적인 답답한 상황에서 대부분 발생했기 때문에, 물속의 기분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30분 이상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혼자서 한다. 아침 6시에 비몽사몽일 때 뉴스를 보면서 그냥 하면 되더라.
가장 열심히 하는 운동도 생겼다. 돈을 주고 배우는 운동, 테니스다. 여기서 스포츠의 퍼스널 트레이너의 비용이 한국의 반값보다 저렴하다. 이에 아내의 열렬한 재가와 경제적 지원 덕에 매주 2회 1시간씩 테니스 강습을 받고 있다. 2회 중 1회는 아내와 함께 공동으로 강습을 받는데,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생긴다는 것에도 기대가 크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아이들만 놔두고 테니스를 치러 갈 수는 없지만 그런 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이고, 함께 즐길 준비를 한다고 생각한다.
테니스를 배운 지 2달 정도 되어가는데 오랜만에 재미를 느낀다. 코치의 말대로 공을 칠 수 있게 되고, 코치의 공을 받아칠 수 있게 되니, 단순하지만 나도 여기에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나 보다. 그래서 지난주부터는 거의 매일 서브 200개씩을 아침에 서둘러 연습을 했다. 다른 사람들과 게임을 할 때, 내 차례에서 서브라도 성공을 해야 게임이 시작될 수 있다. 적어도 시작은 할 수 있게 해야지라는 생각이다.
이제 다음엔 골프와 요가를 배우려고 생각 중이다. 골프는 부모님과 아내,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되고, 요가는 아내와 함께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함께 수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된다.
간단히 반년 간의 나 스스로의 목표를 적고 그래도 큰 성과를 이룬 것은 없지만 계속 이대로만 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서 익숙해질 것이다. 성과가 뚜렷하지 않아도, 다채롭고 단단한 나로 되어가는 데 충분한 양분이 되었을 경험들이라 믿는다. 이제 다음번에는 앞으로 남은 올해의 목표를 다시 세팅해 봐야겠다. 명색이 육아휴직이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있는데,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에 대해서도 즐거운 목표를 세워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