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증이 발병했다
요즘,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꾸만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사실 ‘요즘’이라기보다는 몇 달째 이어진 상태였다.
아마 작년부터 이어진 직장 문제와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면서 생긴 증상 같았다.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중요성을 몸소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두 달 전, 가볍게 등산을 다녀왔을 뿐인데
피부가 갑자기 뒤집어졌다.
우둘투둘한 두드러기 같은 게 생기더니 자꾸 번지길래 병원을 찾았고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원장님은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최근에 잠은 잘 주무셨어요? 스트레스는 없었고요?”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땀이 나면 이런 증상이 생긴다고 하셨다.
다행히 연고를 바르고 관리하니 피부는 조금씩 나아졌다.
지루성 피부염이 만성으로 가면 꽤 고생한다고 하셨는데
이대로 나아지나 보다, 안도하던 찰나.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지난주,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새 버렸다.
해가 뜨는 걸 보고서야 겨우 잠이 살짝 들었는데
여행 가신 엄마의 전화에 잠에서 깨버렸다.
전화기를 찾는다고 눈을 뜨자마자 ‘웅—’ 하는 느낌이 들더니
몸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천장이 기울어지며 내게로 다가왔다.
내 몸이 꼭 낭떠러지로 깊숙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낯설고 깊은 아득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보았지만,
다시 또 낭떠러지.
결국 한참을 침대에 누운 채 진정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조금 진정된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고,
그날 오전은 내내 천천히 움직였다.
좀 나아지나 싶었지만
저녁 무렵, '웅-' 그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이건 단순한 피로나 어지러움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괜찮겠지 했는데 역시나였다.
다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이비인후과에서 내 증상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이석증일 가능성이 높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고글을 쓰고 정밀 검사를 받은 끝에,
말로만 듣던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석증은 어느 날,
갑자기 귓속의 돌(이석)이 제자리를 벗어나 생긴다.
특별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지만
나는 지난 며칠, 유독 잠을 더 못 잤던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빠져나간 돌을 제자리로 넣는 물리치료를 받고
아침저녁으로 먹는 (잠이 무진장 쏟아지는) 어지럼증 약을 먹으며
큰 어지러움은 한결 나아졌지만
일주일이 지난 아직도 약간의 뱃멀미 같은 잔상이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내가 좋아하던 운동도 쉴 수밖에 없었고
서류를 작성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것조차 힘겨웠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힘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내 몸을 돌보는 게 가장 우선이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성 모드.
나는 타고나기를 멀미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도 그런 걸 보면 전정기관 자체가 유전적으로 약한 모양이다.
버스, 배, 기차, 비행기, 놀이기구, 코끼리코 돌기.
넘실대는 파도만 봐도 어지러울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지럼증이 어떤 건지,
어지럼이 얼마나 일상생활에서 힘든 건지,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석증의 어지럼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깊고 낯선 공포 같은 것이었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떤 고통은, 겪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최고의 의사는 그 병을 직접 앓아본 의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내가 아는 어떤 고통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고통을 너무 쉽게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그 정도는 누구나 겪는 거잖아’
'이 정도 아픔은 나도 겪어봐서 알아' 같은 말,
그 어떤 위로보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의 아픔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기.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외로운지를
겪어보지 않았기에,
더 조심스러워지기.
이번 어지러움은
몸이 내게 보낸 경고였지만
내 마음을 다잡게 해 준 경험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빨리 이 물속에 침잠되어 있는 듯한 어지럼 잔상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 복귀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