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위로

마흔을 앞두고도 여전히 진로 고민

by 나미옥

내가 살고 있는 남쪽 동네는 벌써 벚꽃이 거의 다 떨어졌다. 더 늦으면 보고 싶어도 못 볼 것 같아 며칠 전 엄마랑 둘이서 얼른 집 밖으로 나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람 한 번에 벚꽃비가 봄눈처럼 흩날린다. 흩날리는 벚꽃도, 나무에 끝까지 버티고 피어있는 벚꽃도 예쁘긴 예쁘다.


벚꽃길을 걷다가 강 너머를 바라보니 유채꽃밭에 유채가 흐드러지게 폈다. 아.. 이러면 또 유채도 보러 가고 싶잖아. 결국 지하철을 타고 유채밭으로 향한다. 출근 전에 엄마랑 간단히 산책하려다 점점 스케일이 커진다. 그렇게 도착한 유채밭은 아무래도 꽃밭이다 보니 그늘이 없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그늘이 있는 유채밭 옆 벚꽃둑길로 걸었다. 먼발치에 있어도 바람 타고 넘어오는 유채향이 강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유채향 가득한 바람 너머, 엄마의 말이 오래 남았다.

한참 걷다가 오두막에 앉아서 노란 유채를 바라보며 엄마랑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의 진로,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흔을 앞두고 엄마와 진로 이야기라니..


사실 나 스스로는 이 상황이 갑갑하고 답답하면 그만인데, 부모님 생각을 하면 너무 죄송하다.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요,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오. 전생에 무슨 업을 쌓았기에 우리 엄마, 아빠는 다른 부모님들이 당연하듯 누리는 걸 한번 해보기가 이렇게도 어려우실까. '상견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죄송하면서도 불쌍하다는 마음까지 든다.


이 모든 게 나만 마음을 바꿔먹으면 쉬워지는 건가. 부모님의 숙제를 끝내드리기 위한 선택이라면 '나는..?' ' 내 인생은...?' 매번 이런 식의 생각들이 반복된다.


유채밭에서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1시간이 순삭이다. 머리가 무지 지끈거리며 아파왔는데 아직도 이것이 지독한 유채향기 때문인지, 엄마의 걱정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모르겠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와중에도 몸살기처럼 등짝이 아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와의 대화 끝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니, 마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제 할 일을 다 마치고 아름답게 물러나는 모습 같아 부럽기까지 했다.


같은 환경에서도 벚꽃은 같은 날 피고 지지 않더라. 어떤 나무는 자기 혼자서 뭐가 그리 급한지 앙상한 나무 친구들보다 빨리 만개해 이쁨을 독차지받고, 또 어떤 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다 같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때 잠잠하다 벚꽃 잎이 다 떨어져 갈 때서야 만개하는 경우도 있더라.


살아있다면 이렇게 제각기 각자만의 시간과 시기를 타고 한 계절을 보내는구나. 그럼 나 또한, 늦게 피는 벚꽃나무처럼 만개하는 시기가 오겠지.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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