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칼국수... 굴 세비체...
쉬는 날,
노는 날.
밤새 눈이 와서 어제 저녁 과외학생들에게 전화를 해서 일요일 수업을 전부 월요일로 옮겼다
오래간만에 맞는 계획 없는 일요일 아침.
지난 이 년 동안 난 불면증을 앓았지만 지금은 불면증이었던 시간이 기억오 가물 가물 할 만큼 잘 잔다,
새벽 네시반에는 저절로 눈이 떠지는 괴기스운 일은 사라졌지만 아침에 일 없이 한가하게 남겨지는 것은
아직도 낯설다. 졸린 빛 역력하게...
열 시까지 잠자리에서 비비대면서 있던 나에게 엄마가 벌컥 문을 열고 " 내가 닭 사가지고 올게 칼국수 해 먹자" 하시다.
"아.." 뭐라고 대답할 틈 없이 엄마는 마트로 가셨고 난 일어나 세상 하얀 풍경을 바라보았다.
교회 간 동생이 돌아오려면 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엄마는 닭 한 마리와 칼국수 면을 사가지고 돌아오셨고 난 닭 칼국수를 준비해야 했다.
닭을 씻고 정리하고 한번 데우치고 파랑 생강이랑 마늘 넣고 닭 국물을 만들고
찬찬이 라디오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을 한다.
닭은 무쳐야겠지.
빨갛게 하얗게?
딝 칼국수는 예전 미국에서 음식을 잘하시던 분이 만들어 주신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닭 살을 정성스레 발라서 빨간 양념닭이 고명으로 돋보이는 자태였다.
닭 칼국수도 그게 처음이었고
빨간 닭이 유혹전이던 그 칼국수.
엄마가 웬 일이실끼 칼국수 잘 찾으시지도 않으시면서 그래서 빨갛게 해 하얗게 헤?
닭 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내내 내 머릿속은 양념을 결정짓지 못하다가 진한 양념대신
하얗고 뽀얀 심심한 칼국수를 해보자고 맘을 먹었다. 창밖에 눈이 하얗개 내렸으니.
나는 언제부터 인지 잘 모르겠으나 식당에서의 식사보다는 그냥 집에서 슬쩍슬쩍 없는 듯이
한 내 밥이 편하다.
식당주인이 할 말을 아니겠으나 화려하게 꾸민 식당에서의 식사보다는 반찬 한두 가지의 멀건 내 음식이 더 반갑다 많이 귀찮을 때도 식당가자 란 말을 안 하는 걸 보면 밥 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싶기도 하다.
닭이 다 삶아지고 동생이 돌아왔다.
친한 후배도 함께.
닭을 건져 살을 발라내고 ( 섬세하게 가늘게는 하지 않았다. 큼직하게 손이 덜 가게 )
참지 액젓, 마늘, 참기름으로 대충 양념을 하고
국수는 찬물이 담가서 밀가루를 털어내고 끓는 육수에서 익힌다.
칼수수면이 닭육수와 뽀얗게 하나가 되면 건져내어 양념한 닭을 얹으면 그만이다.
네 사람이 먹기에 닭은 풍성했다.
엄마도 좋아하셨고 동생들도 맛있다는 연발 하면서 추운 일요일에 흐뭇한 한 끼였다.
저녁에는 어제도 순대 곱창 볶음을 먹었으며 닭 칼국수도 꽤 든든 헤서 사람처럼 가벼이 먹어볼까 싶어서 굴 한 봉지로 세비체를 했다.
굴을 소금으로 깨끗이 씻고 올리브오일. 레몬즙. 케이퍼, 다진 마늘을 섞고 가장 중요한 청양고추를 다져서
소스를 만들어 굴과 가볍게 섞으면 초고추장이 아니어도 굴을 부담감 없이 먹게 된다.
나도 가끔은 타바스코를 넣는데 레몬즙도 훌륭하다.
과일을 하나 넣어서 완정을 하자고 하면 여기는 제주 도니까 레드향을 넣었는데 귤과 굴이 너무 잘 어울려서
개인적으로 내가 나를 칭찬. ㅋㅋ
비리지도 않고 가끔 톡 쏘는 청양고추와 신듯단듯 입에 파묻히는 귤도 아주 별미이다.
이번에는 김과 즐겼으나 바게트와 곁들여서 와인과 즐긴다면 훌륭히 다.
엄마가 점심 먹고 저녁 뭐 먹을까 하는 나와 동생에게 놀라셨는데
점심 먹고 바로 저녁을 준비하는 하루 일과가 나의 일요일이어서 피곤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