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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Oct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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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고 그랬고 이때도 이렇다.

늦은 밤 재건이 오빠 전화.

" 성준이 기억하지 계란 28?"

"어, 왜"

" 제주도 출장 간다더라 만나봐"

" 그다지 친하지 않았는데 서로 어색한데"

"이것들이 정말 너희 둘만 갔다 왔다(결혼 이혼) 안 했으니까 만나 보라고 28 선방해서 괜찮아"

그렇게 억지로 오면 만나는 보라고 그냥 만나보라고.

자신이 찾아오게 할 거라고.




이십사오 년 정도 전에

나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금요일이었고 재건이 오빠와 승아 언니는 한참 사귀는 중이었다.

재건오빠 승아언니는 나와 저녁을 먹고 같이 성준이 오빠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자 해서

우리는 92번가에 있는 성준이 오빠 스튜디오를 갔다.

재건이 오빠는 성준이 오빠와 중고등학교 동창이었고 승아 언니까지 다들 동갑내기여서

허물없이 친했지만 난 그냥 따라간 아이였다.

우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성준이 오빠는 꽤 반가워했었고 아무거나 내놔 보라는 재건이 오빠말에

" 아무것도 없는데" 했지만 " 우리가 맥주랑 칩은 사 왔어 따끈한 거 없으면 물이라도 끓여 와라 어휴 저 답답이"

란 소리에 성준이 오빠는 삼십 분이 훌쩍 넘어서 커다란 쟁반에 계란 프라이 28개를 가져왔다.

" 계란 밖이 없어서"

승아언니가 " 저 쪼다 새끼 그러면 네댓 개만 가져오면 되지 어떻게 저걸 다 부쳐오냐"

하며 우리 넷은 한참을 웃었고 그날 이후로 성준이 오빠는 ' 계란 28'로 불리게 되었다.



그날은 유난히 나의 출근이 빨랐고

감자 수프를 끓일까 해서 감자를 깎고 있었다.

"남이야 "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보니 계란 28이다.

23년 만인 듯한데 한 번에 알아봤고 목소리도 익숙하다.

" 재건이 오빠가 연락 줬어"

" 그 새끼 극성맞아, 괜찮으면 커피 주라 나 지금 도착했는데 중문 넘어가야 해 같이 커피 마실 시간 돼?"

"어" 커피를 내려서 앉으니 어색한 기운이 확 덮친다.

저 오빠가 저랬나... 싶은 기억을 거슬러 거슬러.

" 분쟁 중재 사무관 되었다고 오빠 선방했다고  재건이 오빠가 자랑하더라"

" 쌈 말리는 게 무슨 선방이야"

"우리 미국에서 한  번 봤었나?  따로 이야기도 해본 적 없는데 올 줄 몰랐어"

" 재건이가 이야기하길래 와볼까 말까 하긴 했는데 너 알지? 재건이 극성 11월에 재건이 한테 가는데

  피곤할 것 같기도 했도 너도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워낙 교류가 없이 살아서 "

"나도 숨어 사는 중인데 아무튼 재건오빠는 가지가지로 힘들어"

" 좋은 놈이긴 하지"

서로 헛헛한 짧은 대화가 오갔고 성준이 오빠는 내게 초콜릿이 있냐고 물었다

" 너 기숙사 초콜릿 사건 유명했었는데"

"아, 허쉬 초콜릿 한 바구니 사서 일주일 만에 해치운 거"

- 바구니는 정말 커다란  빨래 바구니 만한 통이었고 난 그걸 일주일이 안 돼서 허리를 굽혀서 꺼낼 만큼 먹어댔었다.-

성준이는 우리 학교도 아니었는데 어찌 알고 있는 건가.

내가 초콜릿을 하나 건네니 "아직도 허쉬네"하면서 좀 더 달라고 회의 지루할 거라 뭐라도 입에 넣고 있어야 할 것 같다해서 초콜릿 세 개를 더 건네주었다.

" 버스 타는데 까지 같이 가주라."

" 하여튼 사람 귀찮게들 한다. 이 바쁜 오픈 준비 시간에 들이닥쳐서는 커피를 내려라 초콜릿을 달라 데려다 달라" 난 25년 전에 나처럼 툴툴거리기 시작했고 성준이는

" 공항버스 차비 얼마냐? 나 돈 모자랄 것 같아"

해서 난 버스 정류장 도우미 서비스에 이천 원까지 쥐어주고 우리는 헤어졌다.

'재 성공했다는데 저거 성공한 거 맞아 이 삥 뜯긴 기분은 뭘까"



오후 네시쯤 계란28한테 전화가 왔다.

" 샌드위치 10개 포장해놔 봐 우리 직원분들이 가지러 갈 거야"

어스름한 저녁 6시 검은 정장의 남자분들 등장

"사무관님이 주문하셨다고 하셔서 찾으러 왔습니다"

포장되어 있던 샌드위치를 내어 드리니 봉투를 하나 주면서 "이걸로 계산하신다고"

기대감에 가슴이 둥둥거리면서 봉투 받고 보 정장분들 떠나신 후

봉투 열고 금액 확인, 적당한 건가  너무 많은 건가 에라 모르겠다.

좋긴 좋은 거지 뭐.

계란28 전화.

봉투 덕분인지 어색함이 살짝 걷힌 통화.

유학생 사이에서 유명했던 오빠의 불행한 상황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고

"어떤 사람을 내 불행에 발 담그게 해 그냥 혼자 살자 했어"

"너는?"

" 난 그냥 인연이 없나 봐. 그렇게 원하지도 않고 이리 사는 것에 불만도 없고 편하네"

"샌드위치 먹었어?"

"아 그거 형식상 산 거야  직원분들 드셨을 거야"

"돈 많이 보냈더라"

" 얼마를 넣어야 하는지 재건이랑 정상회담했다 모자라면 더 줄까"

"좀 모자란듯한 금액은 내가 재건이 오빠한테 받을게 오빤 빠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시간 반 정도 했고 조금 더 친해진 듯하고

"모레 오후 비행기로 일 본가 공항 가기 전에 한번 더 보자"하며 마무리 인사를 했다.


휴무일인 일요일.

가게에 볼 일도 있었고 냉장고 청소도 할 겸 나와 있었다.

오후 세시정도에 계린28이  왔다.

" 오빠 난 배고픈데 뭐 먹을래?"

"내가 라면 사 올까?"

"어"

냉동실에서 떡을 주섬주섬 꺼내놓으니 라면 사서 등장하시고

"떡 넣을까?" 하니 활짝 웃으면서 "진짜 오랜만이다 떡라면" 한다.

냄비에 떡라면을 끓여서 조그만 공기그릇 두 개를 덩그랗게 놓고는

"김치 없는데 괜찮아?" " 괜찮아  괜찮아 "

" 재건이가 너 만나면 퇴직금 가르쳐 주라고 내가 모아 놓은 돈은 알지? 우리 집 빚 갚아 대느라

   없거든"

"그래도 오빠는 낫네 나한테는 몸무게 묻더라 예전에 너 **kg이었지 뺐냐?

빠졌으면 가게에 체중계 갖다 놓고 올라가라고 나 텍사스 갈뻔했어 죽이러"

" 나이 합쳐서 104들이 뭐 하냐고  하더라"

"맞아 우리 나이 104네 108이 더 맘에 드는데"

라면 그릇을 치우고 계란28이 " 이 동네 이쁘더라 좀 걸을까?"

하셔서 햇볕 작렬하는 동네를 두 바퀴 걷고 도서관 자판기 커피를 드시겠다 해서 - 동전이 있으실 리가 없으시고-

접대해 드리고 편의점 들려서 믹스커피 한 박스를 사 드리니 좋단다.

미국에서 칠 년 동안 세 번 만난 우리는 한국에서 삼일 만에 두 번을 만났고

대화는 일곱 배쯤 많이 했다.

나이가 104라... 꼭 남자 여자로 만나야 하나.

이번에는 택시를 태워 보냈고 계란 28은 "자주 전화 할게 받아라" 하길래

난 눈을 번득이면서 물었다.

"오빠 연봉이 얼마야" 하니  계란 28이 "네 몸무게부터 까라"

하면서 우리 둘은 굿바이 했다.

이십 대에 만났거나 오십 대에 만났거나

남자 여자 사이가 아니어도 좋은데? 재건아!

우리 나이 51, 53 재미있네. 104


남이야

너 감자 살살 깎아라. 감자가 밤 만해 지더라.

원자력 오염수 회의 하는데 그 감자살 뚝뚝 떨어지던 게 생각나서

웃었다. 동네 산책 중 들은 잔소리.

오빠 라인은 다 피곤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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