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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Oct 31. 2023

크림치즈

만드는 휴무일.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휴무일.

일요일에는 알바 개념의 과외를 한다.

-난 지난 십수 년간 고등 영어 과외샘이었다- 솔직히 아직은 국자 보다 샤프와 형광펜이 편하다. -

이번 주 화요일은 핼러윈 데이라 홍시 크림치즈와 애플 시나몬 크림치즈 그리고 소고기 볶음 고추장을

준비하겠다 공지드렸다. ( 인스타에 올리는 건 내가 꼭 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내가 만들기 싫어질까 봐서)




볕 좋은 가을날 오후

가게 문을 활짝 열고 나무 주걱을 들고

식기 세척기에 유리병 소독 하는 소리, 꾸적 꾸적 홍시잼 끓는 소리, 포르포르 사과잼 끓는 소리에

사과향과 시나몬 향 한껏 느꼈다.

나의 과외 학생분들은

중2여학생 두 명과 고3 여학생 한 명이다.

중2 들은 실력이 별로라고 어머님들이 말씀하셔서 공부하자 했는데

웬걸? 너무 잘해서 그래서 너무 피곤하다.

도대체 지문 몇 개를 준비해야 하는가? 싫어요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척척 해내는 그녀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고3 분도 요즈음 한참 문제 풀이에 푹 빠져서 모의고사 풀이 폭주 중이시다.

오전에 학습에 열을 올리고 그녀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잼을 끓이면서 있자니

내 사는 모습이 꽤 괜찮게 느껴지는 일요일 오후였다.



일요일은 잼 작업까지 마치고 마무리.

오늘 월요일 휴무일 아침 일찍 서둘러 가게로 향하는 나를 우리 엄마는 황당해하신다.

"쟤는 이상해 천천히 해도 될 일을"

느긋느긋 하게 생긴 모양새인데 난 느긋하지 못하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식은 잼을 확인하고 한번 더 끓이고

크림치즈 작업에 들어가고

소독한 병에 담고  완성.

애플 시나몬향은 진하게 여운을 남기고 홍시잼은 은은하고 단아한 맛이 난다.

따끈따끈한 치즈와 잼 냄새는 못 참겠다.

여름에 정원이 어머님께서 보엠에서 식빵을 사다 주셨는데 냉동실에 두쪽이 남아 있어서

급하게 토스트를 하고 커피를 내려서 나만에 아침 잔치 준비를 하고.


순식간에 해치웠다.

마침 라디오에서 Adele의 Someone like you 가 흐르고 커피 향도 진하게 퍼지고

가을 햇살은 따갑게 쏟아지고 선선한 바람은 가게 문으로 입장하고.

두터이 바른 치즈도 그 위에 척척 바른 사과잼도 모든 게 좋았다.

13년 정도 짝호감했던 오빠도 생각나는데

13년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서운했던 일이 오빠가 사다준 베이글에 버터만 발라진 일이었다.

가슴이 뭉하게 서운했었다.

맞아! 미국 첫 수업 시간 기숙사 카페테리아에서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맛본 나는

그 맛에 빠져서 하마 터며 수업 놓칠 뻔했었고, 방학 한국 방문할 때마다 그놈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많이도 들고 왔었다.

크림치즈를 바르는 것을 표현할 때 나는 " 뭉텅뭉텅 바르세요. 없는 가난 있는 가난 끌어 담지 마시고요"라고 한다. 크림치즈를 아껴바르는 움츠린 손 끝은 생각도 하기 싫다.

오전엔 잼을 젓고 치즈를 푸고 병을 닦고 냄비 정리를 하고

오후에는 고추장을 만들어서 또 병에 넣고 닦고 덩치 큰 냄비를 닦고 마무리를 하고


집에 돌아와 뻗어 누우니

내 몸에서 사과잼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이젠 로맨틱하지 않다.

슬슬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하고.

내일 가게 여는 날이구나 하면서 조금 시들어한다.

휴무일에 가게 가는 것과 영업날 가게 가는 것은 무게가 다른가 보다.

저녁 즈음 선주문이 살살 들어오니 또 기분이 좋아지고.

모쪼록 크림치즈가 맛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고추장도.... 넌 내가 손으로 저었다. 믹싱볼도 안 넣고.... 그러니까 제발

맛있어라. 손목이 아직도 뻐근하단다. 그러니 맛있어라 맛있어라.

이런 바람과 함께 내 휴무일은 끝났다.


P.S : 오늘 ebs 고등 책을 처음 접한 나의 이쁜 중2가 정색을 하며 "이건 정말 이상해요" 라 했다.

        환영해 이제 한 문장이 주어인 ebs와 친해져야 할꺼야...동화,소설 지문 너무 좋아하는 아인데..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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