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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Nov 27. 2023

첫맛의 추억. clam linguine.

미국에 도착해서 한 달쯤 지나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고 모든 게 낯설었을 때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처음 맛본 토스트 베이글과 크림치즈는 수업을 가야 하는 나를

붙잡을 만큼 홀딱 반할 맛이었다.

요사이 베이글이 유행이라 근사한 베이글 가게에 온갖 종류의 베이글이 나와있지만

어떤 맛도 그 시간의 베이글을 맛을 넘어서지 못하는 건 그 맛이 그 향이 내 어딘가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요일 저녁과 밤이 되면 기숙사 학생들이 삼삼오오 누군가의 방으로 모여들고

언니 오빠( 그 당시에는 가장 어렸고 기숙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으니)들과 가벼운 술자리가 있었다.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끼어들 만큼의 주제도 못 되었고 혼자 방에 남겨져 있기에는 초라해 언니 오빠들의 방에 자리를 잡고 손에 쥐어주는 맥주 한 캔을 받아 거절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있던 어느 금요일 새벽이 넘어가는 시간에 다른 어색한 언니와 둘이 "우리 나갈까요?" 하고 초겨울이 시작하는 쌀쌀하고 거무스름한 새벽 거리로 나왔다.  찬 바람이 설렁설렁 불고 익숙하지 않은 술기운이 돌고 언니와 나는 기숙사 근처 다이너 (24시간 레스토랑)에 들어가 쭈볏쭈볏 자리를 잡았다.

다이너는 24시간 오픈하는 동네에 하나씩 있었던 편안한 식당이었고 주로 할머님들이 서빙하시고 음식가격도 무난해서 종종 들렸었다.

종종 들렸었을 때는 치즈케이크와 커피 정도만 먹었었는데 그날은 우리 둘 다 유심히 메뉴를 읽어 내고

'clam lingui ne'를 주문했다.

나의 첫 오일 베이스 파스타였고 linguine 가 뭔지도 몰랐지만 주문을 했다.

언니가 주문한 시금치 오믈렛과 클램 링귀니가 나왔을 때 둘 다 커다란 오벌 접시에 턱턱 쌓인 음식량 때문에

웨이트리스 아주머니 한 번 보고 음식 할 번 보고 서로 얼굴 한번 보고.

클램 링귀니는 보기에 면가득에 조갯살 가득 그리고 듬성듬성 마늘 편이 다였다.

그런데 맛이 맛이.... 기가 막혔다.

인생 처음 만난 오일 파스타는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점점 고급 파스타를 섭렵하게 되지만 그만한 게 없었다.

두껍고 낡은 오벌 플래이트에 그득그득 무성의하게 턱 얹어진 링귀니는 환상적이었다.

미국 속담에 " 새벽 두 시에 바에서 여자를 보지 말아라"란  말이 있는데 그런 이치였을까?

 - 그 시간 술집 조명에 비친 술에 취해 보는 여자는 다 예쁘다는 의미로-

내가 제일 맛있게 먹은 파스타는 링컨센터 살롱에서 돈을 좀 주고 먹었던 라구 파스타가 최고인데

라구는 고급진 고기 소스와 더 고급진 치즈의 풍미라는 장식이 있었지만 클램 링귀니는 단순하고

소박했지만 정말 그뤠잇 했다.



링귀니 linguine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혀'새의혀,'라는 의미의 파스타 종류인데 면 절단면이 가운데 부분이 살짝 도톰하다.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클램 소스의 똑같은 레시피로 스파게티 면으로 하는 것과 링귀니면으로 한 결과는 무척 다르다. 다른 오일소스 베이스는 오히려 스파게티 면이 더 나을 수가 있는데 클램은 링귀니 면을 써야 클램클램 한 듯하다.  (앤초비 파스타 같은 경우는 스파게티 면이 더 어울리기도 )

올리브오일에 마늘 편을 골든 브라운 (?) 이 될 때까지 약불에서 볶다가 조갯살을 아낌없이 넣고 조갯살이 설핏 익으면 화이트 와인을 넣고 면을 넣고 소금과 파마산 치즈로 간을 맞추면 끝이다.

수분의 농도는 면수롤 맞추는데 면수가 짜므로 주의해야 한다.

쥬파게티와 함께 올해 동절기 메뉴로 간택된 클램 링귀니이다.

링귀니의 식감을 시원한 조갯살과  느껴 보시라.

어두운 뉴저지 작은 동네 식당의 인심 좋은 파스타가 낯선 이에게 전해준 온기를 느끼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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