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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Feb 22. 2024

평생 은인으로 섬겨

나의 친구.

미국에 가고 돌아와서도 도통 친구들과의 교류가 없었다.

그러다 가게를 시작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30년이 흘렀다.

가게를 한다고 연락한 적도 없었는데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게 문을 열면서 "저 미친년 으이그 "하면서 활짝 웃으면서 들어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앉아서

마치 어제 만난 우리들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작년 연말부터 미국에서 온 친구, 중국에서 온 친구 등등 삼십 년 만에 줄줄이 만남이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때 난 80kg이 훌쩍 넘어갔었다.

삼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야 경남아 반쪽이네" "무슨 일 있었어" "우린 너의 과거를 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많이 웃는다.

하긴 미국에서 헤어진 성준 오빠도 미국 들어가 재건이 오빠한테  " 경남이 바짝 말랐더라"해서

바로 재건이 전화 와서 "내가 성준이한테 바짝 마른 게 어떤 건지 알아?"하고 했다 해서 웃었었다.

올해 초 가게 한가한 시간 즈음,

중국에서 다니러 들어온 소형이랑 가게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작년의 내가 겪어낸 다사다난했던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고 구안와사부터 끝없이 헤맨 시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손님 한분과 문제가 있어서 맘고생을 나름 했었고 구안와사 나을 듯하다가 다시 문제 생겨서 한참을 고생했노라고 그분이야 내게 그리한 이유가 있겠지만 난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이유 모르고 두드려 맞은 게 아파서 오래갔노라고 덕분에 살이 10kg 너끈하게 석 달만에 빠졌노라고 이야기했고 가만히 듣던 소형이 가

" 오해가 있든 말든 무슨 문제야 이유 모르고 두드려 맞은 너도 힘들었겠다만 이유 말 안 해주고 두드려 팬 사람도 힘들겠지"

하더니 은근한 미소를 띠면서 나를 한번 훑어 보더니

" 그 사람 평생 은인이다. 섬겨"라고 해서 한참을 웃었었다.

80kg 에서 70kg으로 줄었을 때는 아무도 내가 체중이 줄었는지 몰라 봤다.

나만 아는 감량이었다.

70에서 60이 되었을 때는 몸이 안 좋아서 의사 선생님이 살을 빼라 하셨고 난 뺐었다.

의사 선생님이 " 하루에 200g씩 줄여 보세요"라고 하셨는데 내가 "제가 다진 고기인가요?" 했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웃으셨고 나도 웃어야지 별 수 없다 싶었는데.

그땐 무던히 걸었었다.

대학교 교양체육? 시간에 우리 학교에 한국 에로 배우님이 수강하신다고 해서 새벽에 수강신청하고 요가 수업을 한 학기 동안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없는 일이었다.

멋있을 거라고 부푼 맘으로 강의시간에 만난 에로 배우님은 다리가 짧았고 내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자신감을 드러낸 요가복 착장은 흉했었다.

일본인 요가선생님은 억지로 하지 말고 힘들면 가만히 서있으라고 해서 난 줄곧 가만히 서있다 보니

작은 배포의 나는 저절로 민망함에 살이 빠지고 우울증과 요가 공포증이 찾아왔다.

속앓이 할 때에는 일단 입이 불편해서 먹는 게 싫었고 가슴에 화가 있으니 새벽에 눈이 떠져서 컴컴한 새벽길을 새벽달을 보면서 수목원을 헤매고 걸었었다.

그렇게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슬슬 "사장남 어디 아프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모든 힘든 순간들이 소형이의 " 평생 은인으로 섬겨"라는 말 한마디에 한 편의 코미디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볍게 하지만 소중하게 그녀들이 나한테 온다.

몇 주전에 가게 마감하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다가 술 사러 편의점 가는 친구에게 "천하장사 딱 한 개만 사주라"

했는데 스무 개 정도를 사다 내 앞에 펼쳐 놓아서 숨 가쁘게 놀랐었다.

내 친구들은 '하나'의 의미를 모른다. 다 뭉터기 뭉터기로 떠안겨 준다.

내가 유난히 밥을 천천히 먹던 아이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밥 잘 사주고 잘해주던 친구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친구들의 기억은 무섭다.

나를 다 알고 있어 꾸밀 필요가 없어서 너무도 좋은 그녀들이다.


새삼스럽게 신기한건

몸무게가 거의 30kg이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르기는커녕 통통?한 나이다.

시련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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