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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Mar 18. 2024

고3 과외선생기.

내가 사랑했었던 푸른 고3들.

십 이삼 년간 고3 영어 과외선생이었습니다.

3월의 중순이 지나가는 지금, 첫 모의고사를 앞두고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과외를 하는 녀석들은

중상위권 이상의 성적에 가정형 편도 무난하고 성향도 무난했던  녀석들이었습니다.

여학생들은 시기별 요동없이 시간시간이 살얼음판이고

남학생들은 시기별로 큰 지각변동이 있습니다.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345월, 678, 91011 이렇게 3,6,9 모의고사 시기와 일치합니다.

2학년 겨울방학을 보내고 고3 3월의 학생들은 긴장을 하고 각오를 다지며 3월 모의고사에 임합니다.

고3 시기에 성적이 오르거나 내려가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그리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는 시기라 고3 3월 모의 성적이 수능성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저도 시험을 보는 학생들도 3월 모의고사는 비장한 각오로 임합니다.

그렇게 3월 모의고사를 마치면 그들의 발정기가 도래합니다


3월 모의고사 성적을 받으면 어느 정도 가늠했었던 결과를 받고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계획도 세우고 다음엔 활기찬 연애를 시작합니다.

그 많은 곱디고운 동생, 누나들은 어디서 나타나시는지 왜 그때까지는 나타나지 않으셨는지

남학생들의 마음은 벚꽃과 함께 몽글몽글 피어나고 저마다의 여자친구 자랑에 목이 멥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고3은 여유가 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또 어찌 생각하면 아무도 섣불리 건드리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해서 시간을 째고자 한다면 가장 자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끔 저에게도 거짓말을 시전 하시는데 대부분은 앞뒤짜깁기에서 들통이 나고

제가 앞뒤 맞추라고 충고도 해줍니다.

이 분들이 이때 이성을 만난다고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할 일은 하면서 공부도 해가면서 틈틈이 열심히 이성친구를 만납니다.

'그저 무척 바쁘고 활기차구나 ' 하면서 그 시기를 넘기면 이별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6월 모의시작 전에 대부분은 다 이별을 합니다.

이별의 후유증을 오래 심하게 겪는 경우도 없이 "즐거웠다" 싶게 짧게 실연의 아픔을  앓고 6월 모의고사를 보고 잠시 절망감과 동시에 체력단련의 시기인 7,8월이 찾아옵니다.


이들은 국가 대표처럼 운동에 몰입합니다.

6월 모의고사의 씁쓸함과 허망함 ( 연애를 했던 것은 다 잊으시고) 다가오는 수능의 압박감이 

이들을 뛰게 만듭니다.

저마다 체육관도 다니고 운동장을 뛰고 집에 철봉을 매달고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만져봐요" 매번 똑같은 몸뚱이로 등장해서는 그리 제게 만져보라고 단단해졌다고 하는데

'더러워 싫어 "라 대답하면 "씻었어요" 하시고 그러면 전 "더 더러워"라 응수하면서 여름을 보냅니다.

이들에게 이 시기에 자신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몸 밖에 없거든요.

한 여름 과외 수업 전에 전화해서는 "저 뛰어갈 거예요 에어컨 파워로 시원한 커피 주세요"라고  말하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크 한 9월이 찾아옵니다.

남학생들은 9,10 월 달이 되면 입을 닫습니다.

문제 설명을 해도 반응도 없고 표정도 없고 아주 낯선 이들이 됩니다.

답답한 제가 "차라리 그만둬라 힘들어 못해먹겠다 "하면 '뭐 저런 게 있나'란 눈빛으로 저를 응시하고

"안 그만둬요" 해서 기운 쑥 빼놓죠.

10월 말이 되고 수능을 일주일 정도 남기고는 이 남학생들은 갑자기 눈물이 터집니다.

아무 예고 없이 묵묵히 지키던 침묵을 깨면서 웁니다.

" 누가 보면 너 서울대 가는 줄 알겠다 뚝 해"

어디선가 정직하게 울고 싶은 맘을 너무 잘 알아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합니다.

그렇게 다크 한 시기를 보내고 수능을 보고 난 후에 그들은 온순한 양으로 절 찾습니다.

"샘 나 놀러 가도 돼요?"

 "여자애들 안 들어왔어요 가서 좀 봐도 돼요?"

수능을 마치면 저를 잘 안 찾는 게 당연할 텐데 제 학생님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자주 찾아와요.

인쇄기 잉크도 갈아 주겠다. 고장 난 것도 고쳐주겠다면서 그렇게 찾아와서는 바닥에 다리 뻗고 누워서 음악도 듣고 실없는 소리도 하고 라면도 먹고 합니다.


기적 같이 제 학생들 공부 꽤 했어요.

의대도 여럿 갔고 원하는 대학도 곧잘 가고 공무원도 되고.

첫 수업 때 의대 간다 하면 "아프지 말아야지" 대답하면 나를 너무 얄미워하면서 웃어대는 내 학생들.

"산부인과 의사 할 거예요 샘 와요(이땐 제가 어렸죠 ㅋㅋ )" 그러면 저는 "이 변태새끼 뭐래?" 이랬답니다.

배낭 바닥에 습기에 떡진 성적표 뭉치를 꺼내면서 한번 보라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고 전 "하필이면 그게 왜 나냐고 만만하냐고"

"그럼 엄마 보여줘요 심장 마비되게"라고 대꾸하시던 학생님들.

때때로는 아기 같고 때로는 어른 같고 했었던 너무 이뻤던 내 고3 학생들.

길에서 만나면 은근히 옆에 슬며시 서서 " 나예요" 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학생이 선생을 잘 만나서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니라 너희는 원래 잘하는데 내가 얻어걸렸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헤어졌답니다.

학생 어머님들이 "과외 들어갈 때도 웃으면서 가고 나올 때도 웃으면서 나와서 정말 좋아요"

라고 말씀하시면 저도 정말 좋았습니다.

얼마 전에 제 첫 학생 아기 낳아서 맘이 울컥하기도 했죠.

가게 하면서 좋은 손님들 만나고 과외할 땐 좋은 학부모님들 만나고

기특한 학생님들 만나고 

저희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고 이제 그들이 저를 한심해하면서 "샘!!" 하고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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