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다

by 남재준

나는 철학서를 제대로 독파한 적도 철학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 내가 쓰는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한 바보가 되기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It is better to be a human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And if the fool, or the pig, are of a different opinion, it is because they only know their own side of the question. The other party to the comparison knows both sides.)고 존 스튜어트 밀은 저서인「공리주의 Utilitarianism」(1861)에 썼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바보나 돼지는 문제의 한 면만 볼 수 있지만, 인간과 소크라테스는 양면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어떤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했거나 도달해야 하는 그보다 못한 상황에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인간은 합리성 또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적 인간상이 전제된다.


하지만 나는 바보나 돼지가 되는 선택을 하고 싶다.


사람의 의식이나 지능 등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차원과 개념이 있겠으나, 나는 적어도 거기에 근대적 이성만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에 감성적 능력도 있게 되고 그것은 사람에게 삶의 깊이와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다.


무엇을 더 안다고 해서(단순히 지식만이 아니라 지혜라 할지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고차원적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의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조차 사실 앎과 직결되지 않는다.


밀 본인도 조기 교육을 가열 차게 받았고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울증을 심하게 얻었다고 들었다.


이것이 인생의 부조리이며 인간이 태초부터 마주한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질병, 슬픔, 고통 등을 알게 되어버린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한 번 상자를 열면 다시 그것을 닫는 행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그 상자 밑바닥에 남은 ‘희망’ 뿐이다.


그 희망에는 아무 이성적 근거가 없고, 그저 품거나 품지 않거나일 뿐이다.


처음에 언급한 밀의 원문에서 나는 ‘to be’에 주목하고 싶다.


‘되는 것’이라는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말은 노력을 통해 현명한 사람이 되듯 실현될 수 있는 말 같으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바보냐 인간이냐를 고르는 것은 지극히 가정적이고 어느 하나를 택한다고 해서 바로 실현되거나 하는 것도 아니므로 지극히 가상적인 가정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보가 인간이 될 수는 있어도, 인간이 바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 내가 언급한 판도라의 상자 비유와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바보냐 인간이냐의 문제는 그 자체로만 보면 실존적 문제이기는 하지만, 결국 실제로는 또 하나의 실존적 부조리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바보 또는 인간 어느 한 쪽에 더 가까울 것인데, 바보 쪽에 가까운 사람은 인간 쪽을 택할 수 있으나 인간 쪽에 가까운 사람은 바보 쪽을 택할 수 없다.


우리는 이처럼 부조리 속에 또 부조리가 내포된,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삶의 맥락에 놓여 있다고 나는 본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했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희망.


그 희망을 품고 백지(白紙)의 부조리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체적 선택으로 채워나갈 수밖에 없다.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희망을 다시 주체적 삶으로 전환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번뇌와 분투로 인간은 삶을 채워나가게 된다.


계속되는 실존적 선택의 과정속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고 미혹되기도 하고 하며 복잡한 삶의 씨줄과 날줄을 가로질러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각자의 인생의 맥락 속에 있다.


나도, 이 글을 읽은 당신도 각자의 희망을 가지고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에 이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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