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 신은 네메시스 Nemesis이다.
영어에서 네메시스라는 어휘는 관용어로 쓰인다.
1971년 출판된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제인 마플 추리소설이었던 <Nemesis>가 대표적인 예이다.
2001년 다큐멘터리인 <Walking with Beasts>에서는 이런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The last dinosaurs were already living on a sick planet when their nemesis arrived... from space."
이 여신은 흔히 '보복 報復'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것은 무언가에 대해 '갚는다'라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이렇게 보면 사실 보복 그 자체에 초점이 있는 여신(들)은 에리니에스 Erinyes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들은 인륜을 어긴 죄를 비난하고 심판하며 처벌하는 일을 했으며, 피눈물을 흘리며 죄인을 끝까지 쫓아가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네메시스 여신에게 더 정확한 표현은 '응보 應報'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의 초점은 '응' 즉 '응한다'라는 점에 있다.
네메시스는 '신상필벌 信賞必罰', '각자의 행함에 응하여 합당한 것을 To each according to what was deserved', '성스러운 보복 Divine retribution', '필연적인 심판 Unavoidable judgment' 등의 표현으로 묘사되었다.
테미스 Themis가 관장하는 질서와 율법은 너무 추상적이고 총체적이고, 에리니에스가 관장하는 복수와 보복은 결과적이고 지엽적이다.
불교에서도 업業(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कर्म라 한다)이라는 것이 있고 그에 따른 보報가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깨닫지 못한지라 업보와 윤회의 순환 고리 속에 계속 매여 있는 존재이다.
살면서 내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를 제일 염두에 두며 살아가는데, 이러한 관점에 가까울 듯 싶다.
노자는 하늘의 그물이 성기어 보이더라도 빠뜨리지 않는다(天網恢恢 疎而不失)고 하여, 아무리 인과의 경로가 길다 해도 돌고 돌아 결국 자기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이치를 말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의 본질은 결국 심판에 있다.
과거에 나는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지 자유를 만인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면 그 결과가 정의일 따름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정의의 본질은 신성한 분노와 필연적 심판에 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유약한 존재의 진화와 공존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가치를 부여해 판단하는 동물이다.
자신의 행동에 비례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잘 되거나 못 되거나 하는 결과를 받지 못한다면 인류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법의 본질도 여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국가에게 수권하는 것, 유죄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 개인에게 소유권 등을 인정하고 개인 간 계약의 이행을 담보하며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하도록 하는 것 등 법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전부 이러한 본질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켜져야만 세상이 유지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인과응보'의 정의이다.
단적인 예로, 나는 사형제에 반대하지 않는다.
법과 형벌의 본질은 우선 그가 자신이 범한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에 있다. (칸트주의적 정의관이기도 하다. 감정적 화가 아닌, 규범적 균형의 문제에서 사안을 보는.)
갱생과 재활 등은 별도의, 다른 영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2차적인 영역이다.
만일 어떤 유죄자가 져야 할 죄의 대가가 죽음 즉 사형이라면, 그것을 판결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이 판단한다기 보다도 가치와 규범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본다.
의인화하자면, 곧 그 유죄자에게 다가온 네메시스가 될 것이다.
정의의 핵심은 법의 심판이 누구도, 어떤 행위도 피해 가지 않고 응당 비례해 내려지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