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 것은 의무가 될 수 없다

by 남재준

저출생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용. 단발성 지원보다는 아이와 엄마를 위한 생활을 바꾸는 구조개혁이 더 중요하다. ;


[“아이는 경제나 연금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나라를 위해 태어난다는 발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_ 지바 게이코(千葉景子, 1948-) 前 일본 법무대신, 2007.2.15., 참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서 아베 총리가 이번 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아이는 나라의 보물”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내 어머니는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지만 20대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이 사회에 대한 의무’라는 관성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기도 했다.


정확히 말해 신념이라기보다 ‘관성’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결혼과 출산은 1차적으로 일반적인 생애과정에서의 통과의례의 한 단계로서 이해되어 왔다.


또한 2차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사회/국가/공동체에 대한 의무’로도 이해되어 왔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나 미시/거시는 구분되어야 하고, 사실/당위 역시 구분되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사회의 물리적 지속가능성은 경제성장이나 사회보장의 유지 등을 위해 필요하고 인구증가율이 적정 수준일 때 노인부양비의 일정 수준 유지 등에 기여함이 사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시적으로 볼 때 개인이 선택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전제되는 최소한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당위)에 결혼과 출산이 포함된다고 할 수는 없다.


결혼은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하며 가정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출산은 새로운 인격체를 탄생시키고 그가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 그를 책임진다는 의의를 가진다.


물론 그러한 의의를 과도하게 무겁게 생각해서 결혼도 출산도 쉽게 결정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또한 가볍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저출산이 반드시 나쁜 일인가 하면, 내 생각으로는 그렇지도 않다.


출산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다 보면, 정작 출생하는 개인의 복리에 대해서는 반사적으로 가볍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개인의 생애과정을 통틀어 볼 때,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육 서비스의 충실이 이루어지지 않고, 초등교육까지 내려가는 입시 경쟁의 심화에, 나아가 취업난과 직장까지 이어지는 소속 조직의 서열화, 그리고 노후보장과 돌봄의 부족 등은 출산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게 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개인의 출산을 개인에게 요구하거나 단발적으로 유인하는 것보다, 현존하는 구성원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미래 전망을 밝히는 것이 훨씬 우선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개인의 선택이 진정으로 결혼과 출산을 축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구성되는 것이고, 나라가 개인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아이를 낳는 것이 절대로 개인의 의무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작가의 이전글준사법개혁 논의에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