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는 그의 정치적 가치들을 경제와 정부 효율성 그리고 빈자에 대한 온정을 중시하는 20세기 초의 남부 진보주의(Southern Progressivism)에서 찾았다. 그는 재정보수주의자(Fiscal Conservative)를 자처했으나 민권, 환경, 그리고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에 있어서는 리버럴(미국적 견지에서)이었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구성은 그를 프랭클린 D. 루스벨트보다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상속자처럼 보이게 했다.
_ Iwan Morgan, "Jimmy Carter, Bill Clinton, and the new Democratic economics." Historical Journal 47.4 (2004): 1015–1039 quoting pp 1017–18.]
나는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이 FDR-트루먼-LBJ의 계보나 레이건-부시 부자의 계보보다는 카터-클린턴의 계보(또는 +아이젠하워)라고 본다.
난기류가 만성화된 거시 환경 속에, 가계와 정부의 금융 여력은 녹록지 않다.
우리는 지금 소비가 부진하고 전쟁 중 파괴로 인해 인프라와 공급 부족 등이 문제인 상황이라기 보다는, 자동화와 더불어 노동의 소멸 위기나 환경위기 등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재정만능주의보다는 전략적 재정지출과 세수 확보 및 적자/부채 감축, 시장의 복잡성을 감안한 적정한 개입과 완화 간 균형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시장에 불확실성을 최대한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고, 안정적인 노동조건과 고용 제공을 통해 가계의 장기적 자산 형성이 가능한 조건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말하자면 뉴딜식 케인지안 모델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80-90년대의 적극적인 긴축과 노동시장 유연화 중심의 신자유주의 모델도 거부하는 셈이다.
이념은 그 자체로 강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해주지만, 실용이라는 것은 결국 구체적인 내용에서 강점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모델(?)은 다소 비현실적이다.
세수 기반의 확보 없이 적자재정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구조개혁 미비로 원점으로 회귀되거나 악화될 뿐이다.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좁아지는 소위 주력 산업의 고용에만 기대기 보다는, 사회서비스와 같이 아직 소비-생산의 연결고리가 남아 있는 지점들을 찾아내 활성화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물론 AI 등 신산업에 필요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육혁신을 통한 토양 조성이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신중한 재정 운용 및 전략 마련 / 대내외 시장에의 안정성과 신뢰성 제공 / 산업, 복지, 교육 등에서의 전면적인 구조개혁 등의 축들에 있다.
사회와 경제, 소비와 생산, 수요와 공급 등이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이음새를 세심하게 설계해 나가는 것이 정부 정책의 요체가 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실제로 개입하거나 기획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음에도 대내외적으로 정부 역할을 과도하게 강조하다가도, 동시에 시장 친화적인 정책 구사 역시도 강조하면서 또 구체적인 정책과정에서는 Flip-Flop을 반복하는 식은 민간 주체들에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하고 거시 환경을 악화시킨다.
결국 주류성을 강조하면서도 하는 행동은 아마추어적임이 그대로 드러날 따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