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 속 권신(權臣)들에 관심이 많다.
권신이란 직역하면 권력을 가진 신하를 의미하는데, 이때의 권력은 군주를 능가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군주의 총애로 권력을 누리는 총신(寵臣, Favorite)이라는 개념도 있는데 총신이 권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통상 총신은 군주의 총애에 의지해 권력을 얻으므로 다시 총애의 전제에는 군주권이 어느 정도 있음 즉 왕정이 그 메커니즘에서의 질서는 유지한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권신은 신하가 군주를 쥐고 흔드는 수준의 권력을 구사하므로 왕정의 기본원리를 뒤트는 셈이 되는데, 이 점이 권신 개념의 흥미로운 점이다.
왕정이 고착된 중국의 왕정에서 권신들은 문벌귀족이나 군벌로서 자주 등장한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은 아예 섭관이나 막부처럼 대놓고 섭정을 일반화ㆍ제도화했다.
그러나 종국에는 권신들은 어떤 식으로든 왕권을 찬탈하는 귀결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달리 왕조가 오래 자리잡은 정통성이 있는 등의 이유가 있어서인지 권신들이 왕을 폐위하고 살해해도 스스로 역성혁명을 한 경우는 조선 태조 이성계 뿐이었다.
연개소문이나 최충헌의 경우를 보면 찬탈에는 이르지 않는다.
사마씨 가문은 249년부터 265년까지 근 20여 년에 걸쳐 세대로는 3대, 집권자의 수로는 4대에 걸쳐 찬탈을 완료한다.
하지만 우봉 최씨 가문은 1196년부터 1258년까지 4대 62년을 집권하면서도 찬탈은 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구조적ㆍ맥락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흥미롭다.
서양의 경우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은 권신은 아니나 결국 국왕 찰스 1세와 의회파 내 찰스 1세의 처형 반대파(Rump parliament)를 모두 패배시키고 스스로 호국경(Lord Protector)에 올라 공화정을 수립하는데 인상적이다.
사실 크롬웰의 경우에도, 사후에 영국이 결국 왕정 복고로 돌아간 것을 보면 독재만 이루었을 뿐 공화정을 안착시키지 못했고 왕정의 DNA는 없애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국사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데 완전한 1인 숭배 체제 같은 건 아니고 통상 왕정이라는 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