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는 왕정보다 훨씬 지독하다.
그 이유는 독재에는 권위(Authority)가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쉽게 개인 숭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권위에 대한 갈구가 권위에 대한 집착과 신념 즉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왕조에 대한 정당성 역설의 프로파간다도 있어 왔지만, 그 경우는 전통과 기원에 대한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다르다.
권위는 권력(Power)과는 다른 개념이다.
권위란 타인이 자기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힘을 말한다.
권력은 권위에서 올 수도 있지만 물리력(흔히 '폭력')에서 올 수도 있다.
권력은 타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힘을 말한다.
만약 물리력에서 비롯된 권력이라면 권력 행사자는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권력의 획득과 행사는 물리력으로부터 비롯할 수 있어도(e.g. 쿠데타), 종국적으로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
<왕좌의 게임>에서 바리스 경은 "권력은 인간이 있다고 믿는 곳에 있습니다. (Power resides where man believe it resides.)"라고 말하는데, 결국 권력자의 입장에서 관건은 '어떻게 이곳에 권력이 있다고 믿게 하느냐'이고, 이때 권위란 '권력이 어떤 곳/누군가에게 있다는 믿음의 근거ㆍ원천'이 된다.
흔히 알려져 있듯, 베버에 따르면 권위의 원천에는 전통/카리스마/규범이 있다.
합리성과 이성에 기초해 근대의 민주적 정치권력의 권위는 규범에서 비롯된다고 설명된다.
그리고 전근대의 왕정이나 귀족정 등의 권위는 전통에서 비롯된다.
독재정 등은 카리스마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독재정은 전통이나 규범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인기에서 연원하므로, 결국 지도자를 추종하는 것을 넘어 숭배함으로써 극단적으로 권위를 강화하고 고착화하게 되며 또한 그 권력도 자연히 더욱 강대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권리와 권한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태초에 '인민을 위하여 또는 대신하여' 주어진 권한은 어찌되었건 시원성을 띠는 인민의 주권 즉 권리와는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국가=당=인민=지도자로 일원화되면서, 대의자가 곧 주권자가 되며 이로써 권리와 권한의 구분은 흐릿해지고 대의자가 스스로 일인 주권자로서 통치권이 마치 권리처럼 된다.
이것은 재앙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명목상으로만 주권자일 뿐 사실상 주권을 빼앗긴 채 주체(Subject)가 아닌 객체(Object)로 전락하게 되며 그것은 또한 개인적 차원에서의 인격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왕정에서도 왕정에 반대하는 프로파간다를 탄압하긴 하지만 독재정만큼 강하게 탄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독재정은 노골적이고 체계적인 프로파간다와 세뇌 그리고 사회통제를 이어가며 그렇게 해야만 기댈 곳 없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긴 이론적 사고를 하게 되면, 어떤 면에서 우리 현대의 독재정권이 조선왕조보다 지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선의 왕은 비록 엄격히 성문화된 법치국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예(禮)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그의 권력은 그 자신이 아닌 기나긴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주어진 것이었으므로 왕권은 적절히 견제되어야 했다.
동아시아의 유교에 기초한 중앙집권적 관료제에서 국가(國家)란 군주의 국(國)과 신하의 가(家) 사이의 균형과 대립으로 유지되고 전개되었다.
즉 문벌가문과 사대부 등 황제와 국왕의 왕권은 신권에 의해 계속 도전과 견제를 받았다.
하지만 현대의 독재정은 어떠했나?
누가 감히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도전할 수 있었나?
그리고 노골적인 애국심의 강조와 관청마다 걸려 있던 지도자들의 초상화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애초에 물리력을 가지고 쿠데타로 집권해 헌법을 농단해서 스스로 창헌(創憲)을 한 것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전통과 역사에 기초한 왕권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고 결국 자신에 대한 더욱 강한 집권과 숭배를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독재자를 '제왕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어쩌면 실제 전근대의 제왕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도 있다.
독재자는 민주정부수반이나 전제군주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강력하고 유례없으며 극악한 존재이다.
결국 독재는 왕정보다 훨씬 지독한 체제였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