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제1부속실장 때문에 어느 정권에나 있었던 '실세' 논란이 다시 촉발되는 모양이다.
일단, 누가 실세인지는 약간 더 두고 볼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실세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권력 중심은 대통령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권력 누수가 발생한 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은 본래 말 그대로 대통령실의 인사나 재정을 관리하는 총무일 뿐이다.
그러나 조직상 지위와 그에 귀속된 권한을 넘어서는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 그 사람을 실세라고 부른다.
(Cf. '비선' 실세(또는 '그림자' 실세)는 한층 더 심각한데, 통상의 실세는 최소한의 명분 즉 조직상 직위/직책은 있을지 몰라도 비선 실세는 말 그대로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수된 권력을 행사하고 영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내가 권력자다'라고 말해야 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보통 진정한 의미의 권력자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소위 실세 논란을 수습하고자 내놓은 '실세 선언'은 하나의 코미디요 또한 이재명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본인들 생각만큼 그다지 정치공학에 능하지도 마키아벨리즘적이지도 못함을 보여준다.
차라리 '실세는 없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대통령 본인이 그러한 논란을 덮을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던지 하는 게 타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강훈식 비서실장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대통령실의 수장 즉 실제로 실세가 되어야 할(?) 조직상 직위에 있는 자신이 실세라는 원칙론을 선언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본인들의 선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간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있다.
본인들이 어떤 선언을 한다고 해도 세간에서 그것을 믿어줄 만한 근거가 있지 않는 한 '실세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국회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김현지 부속실장을 제대로 보호할 정치적 명분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맨 처음에 제14대 국회부터의 관례를 깬 이유를 대지 못하면서 '말 못할'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만 말했다.
하지만 그곳은 국회였고, 국가정보원 소속 등 국가 기밀 정도의 사안이 아니면 단지 '말 못 할' 이유란 그렇게 간단히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 이유라는 게 타당하다손 치더라도, 그 이유를 밝히지도 않고 그냥 이해하라는 건 사적으로 양해된 사이라도 공적으로는 부적절한 것인데 하물며 국회 전체의 차원이다.
이유가 타당하건 타당하지 않건 대통령비서실 소속 고위공무원의 사유 없는 국회 불출석은 위법은 아니더라도 정치적으로 심히 부적절하다.
이제껏 민주당이 엎어버린 수많은 정치적 관례와 같이 이후에 다수와 여당이 뒤집히는 경우 국민의힘이 같은 논리를 내세워도 민주당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다수 여당은 매우 큰 정치적 책임을 진다.
다수 여당이란 지위가 그 자체로는 매우 대단해 보이지만, 실은 그러한 정치적 지위가 기반한 정치적 자본은 그에 반비례해 소모되는 가속도가 매우 빠르다.
보다 쉽게 말하면, 이런 논란에서 민주당이 타당한 정치적 명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다수의 힘으로 그냥 눌러 놓겠다고 한다면 그만큼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신임은 빠르게 소멸한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에 매우 강력한 리더십을 선보였다.
대통령직에 올 때까지 한 편으로 윤석열 정권을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낼 때처럼, '당권과 정권의 전권을 모두 내게 맡기면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일본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나 현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처럼 강력하게 정책 드라이브를 걸면 또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이재명 대통령의 재임 반 년차가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뭘 하고 싶은 건지 또 존재감은 있는 건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된다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어떻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있다.
그것을 제대로 해명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금방 정치적 밑천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재임 내내 소수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달리 야당 뒤에 숨지도 못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민주당은 언젠가 무난하게 추락할 수밖에 없다.
상대편의 실책이라는 레버리지에 기댄 정치는 여당 그것도 압도적 다수 여당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오래 갈 수 없다.
곧 그 지난 몇 년 간의 대가를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뼈저리게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