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보다 더 중요한 것

by 남재준


‘상대적으로 더 낫다’라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교사들의 문제가 그러하다.


학교라는 사회제도를 놓고 본다면 그 안에서의 위계적 사제 관계라는 핵심은 변화된 것이 없다.


교권이라는 것이 제도적 권한이고 사회적 권위이기도 한데, 학생권의 향상으로 인하여 후자가 부수적으로 감소한 면이 있다.


또 애초에 자녀교육의 문화가 과거와는 달리 수직적 훈육보다 자율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교육제도가 학생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그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부적절한 행동이나 문화를 네거티브 규제의 차원에서 잘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다소 과도기적 측면이 있다.


우리 교육의 문화나 제도가 아직 수월성과 경쟁 중심의 표준화 교육이라던가 아이들을 훈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수직적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당장 체벌을 정당화하는 징계권이 민법에서 그 근거가 삭제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최근의 문제들을 과연 과거의 훈육 중심,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내 세대가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다소 중간적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사가 권위를 세우지만 그렇다고 체벌 등 극단적 수단은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갔을 때는 이미 없어져 있기는 했다.


하지만 학생에게 쉽게 이것저것을 시키는 등의 문화는 여전했다.


그리고 또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학교폭력을 제도적으로나 사회문화적 차원으로나 훨씬 더 엄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과거와 같이 하드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일은 감소하기도 했다.


만약 교권과 학생권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이 사안은 제로섬 게임처럼 비치는 측면이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


교육이 본질적으로 어른-아이, 스승-제자의 위계적 수직 관계로 되어 있음의 본질은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뉴스에서 교사에 대한 학부모나 학생의 부당한 대우 등이 주목을 받았지만, 여전히 수많은 학생들은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화적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이렇듯 세간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여러 양상과 차원을 놓고 우리 교육의 방향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교사들의 고통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부당 처우로서 인식되어야 하고, 또한 교사의 행정 업무 경감은 지속되어야 한다.


게다가 같은 교사라도 이미 기간제 교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권의 문제가 전부가 아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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