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역사적 의의

by 남재준

https://www.youtube.com/watch?v=8wjMGm52YBI&si=6lkIkUhPiv0bHOh9&fbclid=IwY2xjawNf1A5leHRuA2FlbQIxMQABHotOdHo6bF7P3BmfTDvg8Otzj_ZCnBtm2VsjNT5A5txAfQ3a1UugKwb5U3-s_aem_WOUoki7gTu_0erw5mgY9SQ


故 무라야마 도미이치 (1924-2025) 전 총리는 일본정치 내적으로 보면 한 시대의 막차에 탄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당 출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총리였지만, 이때에는 이미 사회당이 하락세로 접어든 후였다.


55년 체제에서 사회당은 항상 야당으로서 맨 앞의 우위를 점했지만, 여당은 한 번도 되어보지 못했다.


1947-1948년 민주당(보수정당), 국민협동당과 연정했던 가타야마 데쓰 내각이 사회당의 최초 내각이었다.


그러나 사회당은 55년 체제 또는 '1.5 체제'에서 단지 0.5의 비중 밖엔 차지하지 못했다.


통상적인 유럽형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한 우파와 소위 '일본식' 사회민주주의(강한 평화주의와 대아시아주의 외교를 특징으로 한다) 간 내부 갈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에 우파사회당의 일부가 이탈해 독자적으로 민주사회당(민사당)을 창당했고 이후에 우파사회당의 세는 계속 약했다.


강한 투쟁과 사회운동의 정서로 뭉친 사회당은 호헌이라는 대의 하에 자신의 존재 의의를 지켰지만 수권 역량이 있는 정당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


1990년대에 리쿠르트 스캔들로 자민당이 근본적인 신뢰에 타격을 받자 자민당 개혁파-소장파들은 자민당을 이탈해 리버럴 신당들을 차렸다.


이때에 이르러 1차적으로 사회당은 많이 세를 잃었다.


그리고 1994년에 소선거구제 선거제도개혁이 있을 때, 자민당과 더불어 중선거구제의 구조적 수혜 하에 있었던 사회당은 이에 반발하며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연립 내각을 수립했는데 이 내각의 총리가 바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 당수였다.


하지만 40여 년 간 자민당과 대립각을 세워 왔으며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역설해 온 사회당이 자민당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소장파나 신세대 입장에선 사회당의 구식 사회주의 이념 중심 정치가 결국 자민당의 독주를 허용하게 된 한 이유라고 보기도 했다.


소선거구제로 인해 야당이 단결해야 자민당을 이길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당연하게도 사회당은 그 선택지로 고려되지 않았다.


지형이 넓어진 야권은 1994년~1997년에 보수리버럴 성향의 신진당과 중도진보리버럴 성향의 민주당으로 정치적 실험을 했다.


무라야마 치하 사회당은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민주리버럴, 사회시민 노선을 제시하는 등 90년대의 시대 변화에 발 맞추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몰락했다.


1998년에 신진당 해산 이후 보수리버럴 일부와 96년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간 나오토 등 신진 소장 중도진보리버럴 세력이 합쳐져 민주당이 창당되었고 이 당이 사회당의 대체재로서 확실히 정립되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이러한 90년대의 야권의 변동과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국면에서 사회당의 마지막 화양연화(?)와 몰락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야권이 평화주의와 폭력적 역사에 대한 반성 및 인권을 향한 옹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확고히 다지는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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