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LEET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by 남재준

일반적으로 교육평가나 측정 지표의 질을 판단하는 데에는 타당도(Validity)와 신뢰도(Reliability)가 적용된다고 한다. 타당도는 측정 대상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지, 신뢰도는 측정 대상을 일관성 있게 측정하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시험 구성에서 1차적으로 중요한 건 타당도일 것이고 2차적으로 신뢰도가 중요할 것이다. 신뢰도가 있다고 해도 타당도가 크게 떨어지면, 즉 시험이 정작 그것이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면 시험 자체의 정당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LEET(법학적성시험)는 이러한 맥락에서 주객이 전도가 된 시험으로서 근본적으로 폐지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LEET를 구성하는 세 영역인 언어이해-추리논증-논술 모두 근본적으로 치유 불가한 문제가 있다. 우선 언어이해의 경우, ‘일반적인 비문학 지문 독해력이 판례나 자료 등의 독해력과 연결된다.’라는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학 지문(e.g. 판결, 논문 등)은 법학을 구성하는 개별 원리와 개념 등을 이해하여 그것을 서로 연결하고 적용한 내용을 풀어 놓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일반적인 지문 독해력이 들어가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법학수학능력을 판단하겠다는 것은 너무 포괄적이다. 중등국어교육의 독서 영역에서도 다양한 목적과 전개 방식, 주제를 취한 글들을 단원별로 서로 구분해 지도한다. 법학지문은 주제, 전개, 목적 등에서 모두 고도의 특수성을 가진 글이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무슨 지문이건 된다는 건 조금 이상하다. 더 중요한 것은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결과적으로는 법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보다 시험용 비문학독해 스킬이 높은 사람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또 법학 지문이 1/3도 되지 않는데 이는 종래의 ‘법학 지식을 묻거나 출제하지 않음.’이라는 출제자 측의 말과는 일단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앞서 밝혔듯 단순 비문학독해력을 법학수학능력의 중요 일부분으로 바로 치환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자 일반화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학 지문을 더 내는 경우 이는 당초 제시한 입장과도 상치되고 설령 직접 기술적 법 지식을 묻지 않고 법철학이나 법사회학 위주로 낸다고 하더라도 사전에 법학 과목을 이수하거나 법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약간이라도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문제는 법학 지문을 내거나 내지 않거나와 무관하게 언어이해 시험 자체의 타당성이 문제된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추리논증에서의 비법학 형식논리나 논리퍼즐 등은 실제 법학 논증에선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실제 법조인들이 이러한 형식적 논증 기법을 가지고 법적 논증을 전개한 사례도 거의 보지 못했다. 따라서 형식논리-논리퍼즐 중심의 추리논증 시험도 그 자체의 타당성에 이미 문제가 상당히 크다. 내가 가장 해 보고 싶은 실험 중의 하나가 현직 헌법재판관, 대법관, 검찰총장, 변협회장, 법학 교수 등을 모두 모아서 정확히 리트의 현재 형식과 구성대로 시험을 보게 했을 때 나올 결과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법조계 안에서도 독보적인 역량으로 그 자리까지 갔을테니 ‘법학수학능력’을 묻는 것은 실례일 것이며 누워서 떡 먹기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마지막으로 논술의 경우 신뢰도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애초에 리트 논술 성적은 로스쿨 입시에 거의 사용되지 않으므로 논쟁의 실익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논술이 로스쿨 입시에서 활용되지 않는 것은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 리트 개발 과정에서 사전 공청회 때 법조인들은 논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변론이나 판결 등 법조인의 직무에서 논증을 구성하고 전개하는 능력이 중요하니까 이는 매우 당연한 것이다. 거의 유일하게 비(非)법학 차원의 법학수학능력이라 할 것이다. 사실 논술도 기본적으로는 대입논술과 유사하게 자유로운 논증보다 신뢰도를 중시한 틀 안에서의 논증 구성을 하도록 강제한다. 왜냐하면 논제와 논거를 주고 그냥 그걸 알아서 붙이라는 식(재배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나마 가장 법학수학능력을 볼 수 있을 법한 비법학 논술 시험은 예컨대 철학 원리나 생활 속 규칙(e.g. 교칙)을 삼단논법을 통해 적용하여 논증을 구성 및 전개하는 역량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논술은 이미 타당도 측면에서도 의문이 있다.


어쨌든 현재 논술의 활용도를 놓고 보면 사실상 정작 당초에 법조계에서 제시한 역량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리트 개발 주체인 교육과정평가원은 중등교육과정의 연구ㆍ개발과 평가를 주관하는 곳이지 학사 수준 이상의 전문적인 법학수학역량을 측정할 시험을 개발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 이는 법전원법상 ‘대학원’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어서인지 교육부에 기본적인 제도 운영을 맡겼기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이 역시도 로스쿨 제도의 구체적 설계가 매우 부실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재에는 리트의 출제와 운영이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로 옮겨 왔지만 이 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적 의문 제기와 대체 논의는 전무했다. 또 평가원은 기본적으로 타당도보다는 신뢰도를 중점적으로 시험을 개발했는데, 신뢰도가 높아도 타당도가 낮은 시험은 매우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사실상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라는 원리가 침해되는 셈이고, 법학에 능하지만 리트가 모자란 법학 과목 이수자들이나 법학사들 입장에서는 극도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 된다.


보론) LEET가 법학‘수학’능력을 보는 것이지 그 자체로 법조인의 ‘직무능력’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어떤 면에선 로스쿨 입시와 과정 자체가 변호사시험보다도 큰 벽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경쟁의 양과 질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수학’ 능력과 ‘직무’ 능력을 구분하는 건 그렇게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법고시는 비법학전공자도 응시 가능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법문서작성 같은 부분은 부수적인 영역이고, 법학 자체를 놓고 보면 수학과 직무는 엄청난 갭이 있지 않으며 이 점은 내가 현직 변호사를 인터뷰하면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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