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방향이 아닌 차원이 달라진 것 같다
새로 테스트를 해봤다. 예전과는 여러 가지가 참 달라졌다. 일본 본위의 관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진보적 리버럴에서 보수리버럴로 옮겨 왔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여기에는 예전에 수차 언급했듯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1. 진보 성향 지식인들은 인본주의적 감수성을 보이는 것같은 측면이 있지만, 실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함. 예를 들어, 당장 고시에 의미를 두고 준비하고 있는 학생에게 인생에서 고시만 유의미한 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생각? 그 학생은 그걸 몰라서 고시를 준비하는 게 아닐 가능성도 높음. 고시건 취업이건 대학원이건 간에, 어디건 녹록지 않은 상황. 뭘 하려고 하더라도 어디건 쉽지 않음. 물론 아예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면서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아예 다른 길을 찾아라? 청년들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급기야는 사회적 은둔으로 몰아가는 그러한 시대에 있음. 청년 세대에서 사회적 관용이나 공공적 감각이 떨어져 가는 이유는 실은 기성 세대 진보가 바꾸지 못한 구조와 문화의 탓이 큼. 정체성 다툼은 먹고 살 만 하니까 그런 것이고, 청년들은 경제생활은 물론이고 정신건강까지도 위태로운 지경에 놓은 이들이 많음.
2. 협력적 거버넌스나 참여민주주의는 처음에는 좋게 들렸지만 시간이 자니면 지날수록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듦. 물론 민주주의 자체를 포기할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팬덤정치-뉴미디어와 가짜 뉴스 등이 문제가 되고 있음. 민주주의는 체제 즉 의사결정체제로서의 다수결 기제에 불과하고 그에 내재되었다고 여겨진 개인의 자유나 인권 등은 자유주의적 원리. 이제는 자유주의적 원리의 독자적 중요성이 더 중요. 민주주의를 국민주권의 실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반의지 등 국민의 총체적 의지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 의문이며(여론과는 다른 문제), 있다손 치더라도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님. 차라리 인간이 어리석고 나약하며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냥 인정하는 편이 덜 가식적으로 느껴짐. 또 근본적으로 사회운동과 제도정치나 행정은 서로 마인드셋이 너무 달라서 이상적인 사회적 대화와 협력적 의사결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 대화는 하되 결정은 정부가 하는 식으로 하는 게 최선일 수 있음.
3. 민주당이나 진보진영은 구체적인 정책설계와 현실 감각보다는 자신들의 이념적 문제의식이 강함.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인 예. 집은 상품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라는 철학과 문제의식은 타당. 그러나 실수요자와 주거 약자를 위한 주거복지는 전체 시장을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음. 괜히 시장을 자극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경향이 큼. 로스쿨 제도나 검찰개혁의 경우에는 유능한 법조인재를 위한 관문이나 형사사법절차의 합리적 진행 등의 본질적 목표가 아니라 고시낭인이나 검찰의 정치적 개입 등 본질적으로 그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문화의 문제에 가까운 것을 제도로 해결하려 드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측면이 상당함.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도 마찬가지. 중등교육을 건드리지 않고서 고등교육만 대폭 건드리는 정책은 이미 지난 20여 년 간 실시되어 왔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음. 그러나 정작 검찰개혁 등 자신들이 욕 먹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고 욕 먹기 때문에 못하겠다는 권리 의제나 중등교육개혁 같은 중요 의제들이 있음. 이중잣대 내지는 편의적 잣대.
4. 애초에 개인의 영역과 자유를 인정하는 감수성이 표내지는 않더라도 민주당계 정당의 바이브와 감성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많은 것 같음(특히 세대가 내려올수록). 그리고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의 심각한 일탈행위들을 너무 방임하거나 심지어는 끝까지 껴안는 무능도 보이는 경우들이 상당함. 나아가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론이 굳어져서 자기 진영 안에서의 ‘동지들’은 ‘일단’ 지켜줘야 한다는 부적절한 문화가 팽배해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큼.
5. 시대 변화에 적절히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상실함. 선배들의 큰 틀에서의 철학은 이어 받되 구체적인 선택들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시정하는 식으로 가야 함.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의 대화와 타협 중심 정치는 여전히 중요한데 구체적 맥락에서 보수정당에의 대연정 제안 등은 타당치 않았음. 그러나 실제의 민주당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왜곡하고 잘못된 부분들은 답습.
또 참여민주주의는 과거 보스정치-지역주의-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할 때 필요했던 것이고, 팬덤정치-극한 대결-포퓰리즘이 팽배한 현 상황에선 개인의 자유와 숙의적 문제해결을 중시해야 함.
지방분권에 집중해 왔고 기본적으로는 일리가 있으나, 지방행정 및 지방재정과 제반 인프라가 부실하고 수도권-비수도권이 불평등한 상황에서 분권이라는 방향이 타당한지 의문. 되려 분권을 했다가 행정과 재정의 자립이 부실한 상태에서 토호들이 더욱 활개치는 상황만 만들 수 있음. 재정자립도나 중요한 경제적 입지 등의 지역에 대해서는 자율(e.g. 특례시 제도)을 보장할 순 있지만 전체 국토 차원에선 중앙조정이 더 중요할 수 있음.
경제정책의 기본 기조의 경우에도 ‘시장은 시장, 복지는 복지’ - ‘시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라는 과거의 기본 기조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시장의 복지 윤리에 기초한 비판과 규제, 복지를 통한 소득보장 자체가 경제성장 동력이라는 비약’이라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정확히는 경제와 사회를 비합리적으로 연계하거나 섞는 기조로 변한 측면이 있음.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과도한 이기심은 구분하기 어려운데 후자를 잡자고 전자까지 포괄적으로 규제하게 되는 측면을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통해 볼 수 있음. 겉으로는 시장 원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정책의 실질은 결국 시장 원리와 충돌하는 경우들이 생김. 문재인 정부의 공공 일자리 확대나 이재명 정부의 국가 주도 AI 성장도 대표적. 재정이나 국가가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는 현대 경제는 이미 너무 거대화-복잡화된 상황. 여러 메커니즘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정부가 건드릴 수 있거나 건드려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하고 사회, 경제 등에서 통합적으로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필요. 그러나 민주당은 확대재정과 국가 주도를 점점 더 강하게 말하면서 30~40년대의 뉴딜을 2020년대 중반에 말하고 있음.
6. 시민성과 시민 정신에 대한 완전한 왜곡. 열린 사회와 깨어 있는 시민이란 ‘계몽되고’ ‘완결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 그보다는 삶과 세상은 계속 변화한다는 것을 유연하게 인정하고, 자기와 타인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스스로의 언행과 사고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음. 본래 민주당이 주장한 민주주의에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정신이 내포되어 있었음. 정부 운영 자체에서도 정부혁신이라던가 민주적 행정운영을 통해 피드백과 개선, 시민과의 대화와 공론화 활성화를 도모함으로써 해당 원리를 실현. 하지만 오늘날의 민주당은 내용적으로 볼 때 이미 현실이 아닌 현실인식(학계, 언론, 관계, 법조계 등 제반 사회경제 영역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아직도 전적으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나아가 그러한 일종의 완결되고 폐쇄된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을 ‘깨어 있지 못한’ 것으로 공격. 이는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에 대한 왜곡, 모욕과 다름없음. 반대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함. 민주당의 정치에는 정반합에서 반만 있고 합이 없음. 예컨대 보수 세력을 궤멸시키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정당해산심판으로? 국민의힘은 통합진보당이 아님. 어차피 보수-반(反)민주 민심이 존재하는 한 그러한 정당은 얼마든지 다시 생겨날 수 있음. 그러면 그들을 봉건 시대처럼 다 죽이거나 탄압할 것인가? 그리고 설령 보수정당을 궤멸시킬 수 있다 치자. 민주당은 선거제도개혁도 미적거리거나 심지어 퇴보시키려고 했고 진보정당도 원외로 밀어내 버렸는데 보수정당이 없어지면 갑자기 저절로 ‘새 세상’이 열리는가? 향후 정국과 정치구조에 대한 거대한 변동을 생각한다면 그 귀결에 관한 청사진이 필요한데 민주당은 그런 게 전무. 스스로 대체불가능한 대안이 되어 선거 승리를 장기화하고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구조화하여 상대를 '도태'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