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은 고립의 반대가 아니다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위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by 남재준

인류 종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협력과 조직적 행동을 통한 사회적 관계 형성으로 든다.

최근 새로운 사회문제, 그리고 사악한 문제(실존적ㆍ복합적 문제이므로 까다롭다)인 '외로움'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다 보니 오늘날의 사회적 고립에 대해 사회성을 언급하며 '아이러니하다'라고 했는데, 약간 의문점이 있다.

사회성을 아주 협의로 생각한다면 즉 무리 짓기와 협업으로 본다면 그러한 특성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존재한다.

생물들이 사회적 행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상호 호혜적이기 때문인 것이 크다.

인간의 경우 신뢰는 상호호혜적 행위들이 반복되면서 형성된다.

인간 자체로서는 별로 신체적 이점이 없고, 홀로 된 상황에서는 지능이 높은 생물이라도 개체의 생존과 종의 번성에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수단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요컨대 사회성은 이타적이거나 관계적이라는 등의 '따뜻하고 본질적인' 것을 의미할 이유가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가 국가를 구성하고 지속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서로 면식이 있고 친밀하기 때문인가?

사회가 고도화ㆍ복잡화되고 특히 근대사회가 개막하면서 견고하고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하며 위계적인 관료제 조직이 등장하였다.

또 체계적인 생산요소의 집약을 통한 대량생산체제의 수립과 이를 위한 도시화는 이른바 '유기적 연대'를 형성한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듯이 수없이 많은 이들이 도시와 같은 밀집된 공간에 병존하면서 익명성을 띠고 서로에 대한 기능적 상호의존을 하고 있을 뿐이다.

관료제나 유기적 연대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그러나 근대사회의 경우 체계성과 합리성이 인간을 옥죄었다면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소위 포스트모던(탈근대) 내지 현대사회는 그러한 것들이 완화되고 개인화가 고립으로 심화되면서 이미 끊어진 가족ㆍ친구 등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인 관계들은 약화된다.

인류사회의 사회성은 고도로 합리적 구조화가 이루어졌으나, 사회성이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성은 비관적으로 보면 최소한의 병존을 보장하는 것이고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유의미한 관계의 '씨앗'이 될 뿐이다.

씨앗은 씨앗일 뿐 그것이 발아하려면 노력이 요구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인간의 사회성은 기본적 병존과 물질적 풍요 등을 보장했으나 그것이 사회적 고립을 유발한 것도 사실이며 이것은 그다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다.

고도로 발전한 미국의 사회자본이 점점 감소해가는 현상을 연구한 로버트 퍼트넘의 <Bowling Alone>을 떠올려 보라.

외로움의 문제는 문화변동을 요구하지 제도개혁으로 해결되기는 난망하다.

하나 둘씩 분위기를 일신하고 공론장이나 여러 오프라인 모임 등을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과 팬데믹으로 인한 강제적 고립은 아날로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규범 약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물론 그 시대의 규범을 그대로 부활시키는 건 적절치 않겠지만, 단순한 병존에서 유의미한 공존으로 나아가려면 개인의 노력이나 제도의 개혁만으론 안 되고 소위 '공기' 즉 분위기 나아가 문화가 자발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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