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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제도 폐지 말고 대안은 없다

by 남재준

"로스쿨 4년제 도입하고 변시 선택과목 없애야"


황당한 주장이 많이 나왔다.


직접 최근 몇 년의 로스쿨 입시를 제대로 분석/검토해보기나 하고 이런 주장들이 나온 건지 의심스럽다.


법학전문대학원제도는 타당성ㆍ형평성ㆍ효율성이 모두 붕괴된 회생불가한 제도이다.

로스쿨제도폐지론자의 입장에서 몇 가지를 짚어 본다.


실질적으로 보면, 이미 로스쿨에 대한 수요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상태에서는 안 그래도 ‘서열을 매겨 자르기’가 본질일 수밖에 없는 입시가 더 정량 즉 LEET 중심으로 될 수밖에 없다. 또 난이도 조절에도 한계가 있다. 작년 시험 같은 경우에도 예상보다는 쉽게 출제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들을 보면, 타당성은 고사하고 일단 LEET는 그렇게 만만한 시험에 속하지 못한다. 어지간한 점수로는 어려우며 이제 사회인들보다 학부 고학년이나 막 졸업한 이들 즉 LEET에 온전히 시간을 퍼부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더 유리하게 된 시험이다.


그리고 LEET는 적성시험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기출 외에는 이렇다 할 자료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좋은 성적을 장담할 수도 없다. 약간 운도 작용한다. 정확히는 예컨대 그날의 컨디션이라던가. 김수영 변호사는 변호사시험 3회 출신이라고 되어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 이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 어지간한 점수로는 로스쿨 입학이 힘든 구조에 이미 처해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정성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로스쿨 입시는 대입으로 치면 정시와 수시를 모두 치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수능과 마찬가지 논리로 정량평가를 통해 온전히 선발하는 경우 상대적이긴 하지만 사회인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인의 입장에서는 LEET 수험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보다 자신의 사회에서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좀 더 수월하게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애초에 그게 로스쿨 제도의 취지에도 맞고. ‘조금만 노력해서 어지간한 점수를 받으면 로스쿨 입학 가능’이라는 조건이 성립이 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LEET 100% 전형은 사회인들에게 그렇게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론 LEET는 타당성이 매우 낮은 시험에 속한다. 학부 법학 성적이 높은 사람이 LEET를 잘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법학은 기본적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연결하여 논리를 구성하며 법학의 개념 체계 내지 ‘문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보면 모든 종류(e.g. 설명문, 논설문, ...)와 분야(e.g. 과학, 기술, ...)의 글이 항상 법학적성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 수준의 독해력을 측정하는 시험은 법학적성시험으로 두기에는 너무 포괄적이다. 게다가 그게 어지간한 점수라면 또 몰라도 격렬한 수준의 상대평가를 동반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추리논증의 경우에도, 그 정도로 고도의 형식논리나 논리퍼즐을 법학에서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법학에서 쓰는 논증의 방법은 법적 삼단논법이고, 그것만 제대로 알고 적용할 줄 알아도 상당 부분이 커버된다. 당초 LEET 관련 공청회에서 법조인들은 논술 시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하지만 현재 논술 시험은 입시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논술은 주어진 논거를 적절히 갖다 붙이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건 법학적성을 볼 수 있는 형태의 논술이라 보기 어렵다. 즉 논술의 상대평가 난망은 둘째 문제고 첫째로 우선 시험 자체의 타당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칙이나 구체적 상황을 함께 주고 그것을 적용하는 논증 능력을 보는 등의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로스쿨 제도 자체가 이미 기본적인 진입 장벽이다. 아무리 학자금 탕감이니 소득 연계형 특별 전형이니 하더라도 결국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을 소득 활동 없이 공부에만 매진해야 한다. 게다가 이 포럼에서는 아예 로스쿨을 4년제로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는데 그러면 말 다 한 것이다. 또 근본적으로 로스쿨은 대학원이므로 통상 4년제 대학 학사를 졸업한 경우를 전제한다. 이미 저소득층은 4년간의 대학 생활 자체가 엄청난 경제적 부담인데 여기에 더하여 또 3년 이상을 더 부담이 가중되니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게다가 입시도 고난이도가 되었기 때문에 의지를 갖는다 해도 구조적 장벽은 매우 크고 높다. 과장 좀 보태(?) 한 10년 정도 소득 활동 없이도 그냥 버틸 수 있는 가정환경을 가져야 현재 구조에서 그나마 변호사시험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앞서 언급했듯 의대나 약대를 참고해 로스쿨 교육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정말 로스쿨 제도가 의대나 약대를 참고해야 하는 부분은 오히려 학사냐 아니냐의 부분이다.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의대와 달리 석사다. 그리고 의사국시는 변호사시험만큼의 장벽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의대는 상당히 합리적으로 어렵게 운영을 하고 있다고 보지만 로스쿨은 비효율적인데 어렵기까지 하다. 왜 법학 공부를 위해 구태여 학사 4년씩이나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법학은 모든 직업 분야를 포괄하므로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학사 과정을 통해서 그런 지식을 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다. 그렇다고 사회인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의학이 법학보다 훨씬 양성 과정의 밀도도 높고 전문성도 고도화/세분화되어 있는데 굳이 법조인을 대학원씩이나 만들어서 키울 필요가 있는 것일까? 법학이 다른 분야들과의 복합이다 어떻다라는 말도 있는데, 그런 주장은 법학‘전문’대학원의 제도 논리와 상충한다. 사법시험제도는 차라리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었다. 고졸도 변호사가 될 수 있었고, 다른 것 필요 없이 그냥 ‘법학’을 보는 시험이었으니까. 실무의 영역은 연수나 경험을 통해 쌓는 것이지, 로스쿨 제도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더 실무 차원에 엄청난 개선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로스쿨 도입 취지 중 하나가 고시낭인을 방지한다는 것인데, 로스쿨 제도하에서는 결국 고시 낭인을 줄인 대신 엄청난 조건을 충족하는 극소수 엘리트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인서울 상위 대학 학사 출신으로, 최소 중산층 이상의 가정환경에, LEET 고득점의 노력과 운이 따라주는 등의 사람들이 로스쿨의 압도적 대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로스쿨 제도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선택과목 즉 전문법 분야가 사양화되는 것도 로스쿨 제도 자체의 구조에 근원이 있다. 법학이라고는 문외한인 사람들을 데리고 3년 안에 실무 가능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본 7법부터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이 점은 법학과 무관한 사회인이었어도 마찬가지이거나 오히려 더 심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전문법 분야까지 모두 충분히 이수하라는 것은 당사자들이 마주하는 구조적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꼭 이런 모델을 옹호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컨대 예과에서 기초법학, 기본7법을 다루고 본과에서 전문법을 다루는 등의 모델이라면 몰라도 현재 구조에서 로스쿨 자체에서 전문법을 더 확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변호사시험에서 전문법 분야를 줄이고 기본법 분야 중심으로만 남기자는 말도 있는데, 이미 그런 구조인데다 전문법 분야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애초에 로스쿨 제도의 취지 중 하나였던 전문법 분야 법조인 양성이라는 건 몰각되는 것이다. 변호사시험을 기본법 중심으로 재편하는 건 타당하지만, 그러면 로스쿨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하건 아니건 이 제도는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본다.


종합적으로 볼 때, ‘법조인 양성’이라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그냥 계층적 집중이 더 강화되고 법조계가 점점 더 사회 현실과 유리되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법조인은 대학원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험이라는 기본적인 관문을 넘은 후 실무 경험의 축적을 통해 전문화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모든 전문직에서 시험이란 기본 관문에 불과하다. 변호사 자격의 허들 자체를 실질적으로 대폭 낮추는 방향이 유일한 대안이며 현 제도는 고쳐 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법학 학부 회생, 사법시험 부활이나 그 과도기적 제도로서 변호사예비시험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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