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머니와 대화할 때 종교와 인생이 화제가 되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종교를 가질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이 진실한 믿음이라기보다 단순한 도피처의 탐색이 아닐까 싶다는 대강 그런 이야기였다.
불교사상에 많이 마음이 가면서도 신앙생활 자체는 가톨릭이 더 와닿는 면이 있었다.
나는 대개 연기 緣起, 자비 등을 믿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사람 자체가 그렇게 모진 편은 못 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내게 깊은 잘못을 했고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그냥 내 인생에서 지우는 편이다.
그 사람에 대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보다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니까.
최근에도 어머니와 대화할 때 대강 이러한 이야기들을 했는데, 지난번의 종교 관련 이야기 때에 이어서 두 번이나 비슷한 평가를 들었다.
‘절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게 아니냐’하는 우스갯소리와 ‘그러다 용서라도 하겠다?’라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신이 있다고 믿는 입장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천벌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천벌의 기다림 같은 것이 삶에의 의지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저 인간이 벌을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봐야만 한이 풀리겠다.’와 같은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평가할 생각 자체가 내겐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심리적, 관계적 문제들을 풀어가는 방법이 있을 테니까.
어머니에겐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 내겐 나의 삶이 방식이 있을 뿐이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있고 개별적인 사람에게 여러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가치판단을 할 때에도 복합적으로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덜 지치고 덜 피곤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타인에 대한 분노는 나 자신에게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런 것에 매여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끊고 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비록 내 발밑에 탁한 진창이 있고 내가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하늘을 보고 살고 싶다.
다른 면에선 종전에 언급한 어머니의 말들에서 미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내 어머니는 섬세하면서도 그것을 잘 표현하지 않고 또 오래 참지만 한 번 아니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내 어머니의 일면에는 약간의 모진 면도 있다고 나는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은 보통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기보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게 되는 말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전부터 내가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했던 건 아니다.
그때에도 모질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직시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모질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고 인생은 기니 앞으로도 변화의 여지가 많겠으나 적어도 현재의 나는 모질기보다는 이해하거나 잊으려고 하는 편에 속하는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