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민주주의만으로는 안 된다

by 남재준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정치와 사람들을 동원하고 자극하는 정치는 다르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의식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시민의 정치효능감이 증진되고 무엇보다 국민주권이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으니까. 나아가 사회통합과 포용사회를 형성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도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 국민이 제대로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확실히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이 직접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프레임을 내세우는 건 허상이다. 그런 프레이밍은 쉽게 사람들을 동원하고 자극하는 정치로 나아가게 되고 그러면 독재와는 다른 방향으로 민주주의가 퇴보한다.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불가피하게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곧 민심의 일반의지라는 것을 섣부르게 적극적으로 단정하고 국민의 직접적 의사를 반영하는 것처럼 정치를 하는 게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다원적인 목소리들을 복합적으로 듣지 않고 특정한 방향의 목소리들만 듣다 보면 결국 정치인이 그러한 단일한 목소리들을 동원하는 것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가 된다. 민주적 독재나, 중우정과 참주정의 결합 같은.


최근 몇 년 간 내가 계속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것이 바로 이러한 현상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체로 자유주의, 법치주의, 인권과 기본권 등을 당연히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에는 사실상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만 남고 원리로서의 자유주의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보수건 진보건 무관하게, 개성과 다양성 및 개인의 자유와 다원적인 목소리들을 존중하며 (인치 人治가 아닌) 법치주의를 준수하는 것은 국민과 정치인 전체가 항상 되돌아보며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다. 왜냐하면 해당 원리는 사법 등의 제도로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고 결국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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