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부끄러울 수 있는 시간들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치에 '어떤 식으로' 관심을 가지느냐가 더 중요하다. 현재의 중심적 프레이밍 - 청산과 투쟁의 논리 - 을 중심으로 한 정치에의 관심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미래를 열어 가기 위한 정치에의 관심은 필요하다. 더구나 그 시작점 중 하나가 정치문화의 일신과 정치혁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화=오염'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곧 (특히 그 피해자 가족을 대상으로) '정치화'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사실 이건 비난이 아니라 모욕에 가깝다. 대개 '정치화'되는 재난들은 사회 재난들이다. 세월호도, 이태원도, 미국에서 숱하게 발생하는 총기 사건들도.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연재해의 발생이 아니라 준비와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피해자와 그 가족과 지인들은 응당 사회와 국가에 책임을 추궁할 자격이 있다. 그게 정치건 아니건 간에. 순전히 정치적인 것도, 순전히 비정치적인 것도 이 세상엔 거의 없다.
'공적 공간에 정치적 게시물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주의 교통 규정에 어긋난다.' 플로리다 주 당국이 올란도 시에 사전통보도 없이 2016년 펄스 나이트클럽에서 49인이나 사망한 게이 혐오 총기 난사 사건을 기억하는 무지개 횡단보도를 철거하겠다고 하며 내세운 명분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였고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꼈다. 모든 탄압은 그럴듯한 명분을 간판으로 등장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때에도 '우리는 유해한 표현을 규제하려는 것 뿐이다.'라는 명분이 등장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 과방에도 정치사회적 표현을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 부분에 관해 토론할 때 선배와 동기는 '과 소유의 공용 공간에 정치적 표현은 적절치 않다.'라고 했다. 하지만 교육은 정치사회적 표현으로부터 진공 상태로 둔다고 해서 '건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등교육의 경우, 학생들이 모든 정치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진공 상태에 있다가 갑자기 사회에 나가면 불쑥 자율적 사고력이 생길 것 같은가? 학교 교육과정에서의 고도로 정제된 인문사회교육 정도를 가지고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더구나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은, 성인인 학생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을 정하는 것을 고도의 수준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페미니즘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대학이라는 공론장 안에서 표현하고 토론하면서 맞붙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반대로 그냥 무조건 거북하다, 싫다, 보지 않겠다 라는 식으로만 대응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현재의 2030조차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기성세대보다 더 자유주의적인 것이지, 내가 보기에는 무리 짓기나 공적인 명분으로부터의 억압이나 남의 일에 오지랖 부리기 등은 세대를 가로질러 한국인의 문화이다.
현대사회가 인권과 기본권 및 개인의 자유가 충실히 보장된다고 생각하는가? 최소한 불완전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은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달성 중'인 이념이다. 이미 '달성된' 이념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