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주요한 이념적 원리 중에는 대화와 토론, 분권과 자율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시끄럽지 않으면 통합이 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회생활에서는 문제가 없는 상태는 불가능하며, 그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은폐되거나 아예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대화와 토론이 중요하다. 사회문제와 정책의제를 공적 차원에서 다루어 사회갈등과 교착으로만 이어지는 상황을 트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끄럽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국민주권은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도 존재한다. 시민성을 계발할 책임. 여기서 시민성은 어떤 완결된 가치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성과 성찰을 하고 자기가 가진 인식과 생각을 의심해보며 타인과 열린 대화와 토론을 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논의의 방향을 통제하고 새로운 의제나 시각을 제안하는 등의 오피니언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자의 의리를 뚜렷하게 밝혀 조화시키는 조선 정조의 준론탕평(峻論蕩平)을 닮아 있다는 것이 개인적 인상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위계적으로 통합해서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중시해 온 나라이다. 결과적으로는 보스정치, 정치인이 국민의 위에 있고 국민은 정치를 ‘높으신 분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게 되는 정치적 무관심의 팽배, 지역주의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면서 위에서 정부와 여당을 통합하는 식으로 통치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는 의원내각제와는 다르게 상향식이 아니라 하향식이었다. 신대통령제(대통령이 다른 국가기관보다 우월한 권력을 가지는 정부형태)의 흔적 비슷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노무현은 삼김시대 이후 등장한 첫 대통령이었다. 그가 내세운 코드의 반란의 정치 버전은 분권과 자율을 통해 이루어졌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던 것을 하지 않고 당정분리를 통해 정부와 여당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또한 종래에 대의원과 중진 즉 보스들 중심으로 움직이던 정치와 정당을 국민에게 개방하고자 하였다. 진정으로 국민주권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에 직접민주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과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건 다른 얘기다. 현실적으로 후자는 여러 측면에서 위험하다. 대중의 뜻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항상 옳은 것이 아닐뿐더러, 대중의 의지라는 것을 과연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도 모호하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제된 논의를 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결국 표결만 중시되고 그것으로 가는 절차와 과정은 무시된다. 하지만 노무현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현대적 관점의 민주주의, 즉 자유와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는 민주주의는 정치주체들이 서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판하고 동시에 계속 자기 성찰과 혁신을 하는 식으로 돌아간다.
분권과 자율은 쉬운 시스템 운영 원리가 아니다. 인간은 가변적이고 복잡한 존재이다. 항상 선한 선택만 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과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대응을 한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보면 강한 리더를 중심으로 통제하는 것이 조직과 개인이 모두 생존하는 길일 수 있다. 하지만 리더에게 의존하는 것이 심화되면 자연히 리더의 의지와 공동체의 목표가 상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내부 피드백과 학습 등이 없으면 결국 무너진다. 반대로 개인의 자발성을 인정하는 조직의 경우, 물론 단기적으로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계속 이겨내면서 피드백과 학습의 과정을 거치면 리더십만이 아니라 팔로워십도 성장하고 그렇게 의사결정이 내용적 질과 민주성을 함께 제고하면서 개선된다.
우리나라의 긴 권위주의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선진국이라도 성공하기 힘든 대통령/정부/정당과 국회/시민단체/일반시민 등이 균형적으로 협치해 나간다는 노무현의 실험은 결과를 기대하기 난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이전과 이후는 크게 달라졌다고 본다. 노무현은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지만 참여정부 5년은 최소한 엄청난 충격파를 주었다. 강물이 돌고 돌아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당장 민주당이 헤매다가 결국에는 오늘날 이렇게 강대한 정당이 된 것은 노무현의 덕분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바뀐다. 노무현의 원리는 남아도 환경은 바뀌는 것이다. 애초에 노무현의 철학 자체가 환경은 계속 변하므로,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혁신과 학습이 중요하다는 점을 요지 중 하나로 한다. 그러니까 민주당이 정말 노무현 정신을 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자기 스스로와 정책과 이 나라를 점검하고 개선점들을 찾아내고 국민과 폭넓게 숙의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어야 맞다. 하지만 과연 민주당은 그랬는가? 또 지지자들은 그랬는가?
이 지점에서 문재인의 책임도 매우 크다. 팬덤이 처음 문제가 되었을 때, 문재인은 ‘양념’ 발언 등으로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어차피 사회가 자유화될수록 갈등은 커지기 때문에 그 한가운데에 들어가 담론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이건 권위주의적 리더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그런데 문재인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팬덤이 민주당 전체를 집어삼키는 씨앗이 되어 발아하도록 그대로 방치했다.
대의원 중심 정당과 국민 중심 정당. 현재의 당원 중심 정당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본래 입당이라는 것은 참여의 하위 유형 중 하나일 뿐이다. 당원이라는 점이 특별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공산당원이 특권을 누리는 중국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실 당원이 되기가 쉬워지면서 당원들이 급속히 늘어났는데 이러한 양상은 참여민주주의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 외에도 언론 지형에서 진보 언론이 많이 성장했고 매체 자체의 측면에서도 뉴미디어가 부상한 지 오래이다. 민주당도 기성 정치 세력이 되면서 전문가나 관료나 학계에서도 이제는 민주당 쪽의 입장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다시 말해 민주당은 이제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지 않다. 그리고 국민들도 과거처럼 단순히 정치인들 밑에 있는 것 같은 존재들이 아니며 정치적 무관심도 과거에 비해서는 완화되었다.
지금의 문제는 참여의 양보다는 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뉴미디어를 통해 여과 없이 음모론이나 부적절한 표현 등을 포괄해 정치가 ‘소비’되고 있다. 또 급속도로 불어난 당원들은 처음 등장한 정치인 팬덤이었던 노사모와는 달리 정치인/정당과 거리를 두기는커녕 아예 적극적으로 동원된다. 단순한 팬덤이 아니라 노무현이 당선된 후에는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던 노사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과거와 같이 당원을 국민으로 치환하는 것이 맞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민주당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은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정치주체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은 2010년대까지의 정치사회를 이해하던 틀을 아직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종국에는 노무현 정신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노무현과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걷는다.
이재명이 당대표였을 때, 기본적으로 당원들은 주체적으로 참여한다기보다는 동원된다는 인상이 많았다. 이재명은 당원주권, 국민주권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걸 명분 삼아 역대 어느 민주당계 수장보다도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 당헌/당규의 개정이나 정책/입법에 관한 결정에서 대화나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이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환기하는 것이 노무현 정신의 핵심임에도. 기본사회를 삽입할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 때, 금융투자소득세 관련 결정을 할 때, 연금개혁을 제안할 때, 공천 파동이 발생했을 때,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었을 때 등 수많은 과정들에서 이재명은 그냥 침묵했다. 이런 게 노무현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나?
당원민주주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보스/대의원 중심 정당에서 당원 중심 정당으로, 다시 당원 중심 정당에서 국민에게 열린 정당으로의 진화가 있을 뿐이다. 2010년대에 활성화되었던 국민참여경선제,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논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구와 같이 생활정치가 이루어져 당원과 일반국민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면 몰라도, 우리나라는 지금 그런 환경이라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 지지자 전체의 여론 구조와 민주당 정치인들이 대의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일부 당원들의 여론 구조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과거 지도자의 권위에 의한 비민주주의였던 보수정당의 조직논리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새로운 비민주주의이다. 민주당은 진정한 의미의 민심에 관심이 없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당원과 국민의 관계란 정확히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2015년 혁신 이후로 10여 년간 전체적으로 변화한 참여의 양상과 질(e.g. 팬덤이나 뉴미디어가 당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당의 문재인 정부 시절 주요 정책(e.g. 부동산정책)과 정무적 결정(e.g. 서울시장 무공천 번복)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참여정부 말년에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평가 포럼을 열심히 열었다. 아무도 인기 없는 말년 대통령의 그런 노력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건 중요했다.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야당이지는 않을 테니까. 또 정부혁신은 노무현의 주요한 국정 어젠다 중 하나였다. 민주당은 그런 부분 중 계승한 것이 전혀 없었다. 2022년 대선백서는 그냥 어영부영 넘어갔다. 최근 10년 안에 겪은 유일한 유의미한 패배인 2022년 대선과 지선도 일부는 문재인에게, 일부는 윤석열에게 적당히 책임을 떠넘기고 그냥 뭉갰다.
문재인 정부 때 조국 사태, 검찰개혁, 미투 파동 등 당의 근본적인 이미지나 문화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구주류인 친문이나 현주류인 친명이나 아무도 이런 문제에 대해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난 10년간 아무런 변화도 개선도 없이 그냥 노무현이 만들어 놓은 모델을 그대로 답습했다. 심지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마저도 더 퇴행해 아예 보수 진영의 개발국가 모델과 유사한 것을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공수처법 가결 때에도 금태섭 의원 징계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당내 민주주의나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그랬고, 국회의원으로서의 소신과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경우 어떤 것이 우선하느냐의 문제였으며, 또 정당이 국가기관이 아님에도 현대 정치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재명의 표현대로) 강한 쪽을 누르고 약한 쪽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단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
현재의 민주당은 변화에 맞추어 기형화되었다. 대의원 대 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일대일로 맞추는 문제에서 투표는 요식행위였고 그마저도 투표율이 매우 낮았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은 혼자 90%를 득표했다. 김대중 이래로는 누구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정상인지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기본사회와 AI 주도 성장 등은 민주당이 고민해야 하는 새로운 어젠다였다. 하지만 기본사회는 별 논의 없이 그냥 당헌에 들어갔고 정작 이재명 정부에선 크게 부각되는 이니셔티브가 되지 못했다.
당심은 민심이 아니다. 특히 특정 방향으로 강하게 쏠려 있는 당원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더더욱. 수권정당이 그런 소수당원들에게만 얻은 동의를 당심이고 민심이라고 핑계 대면서 지배 계파(주류가 아니다. 지배다.)가 자기의 영향력을 더 견고히 하고 그 안에서 주요 정치인이 다시 권력을 얻기 위해 무의미한 쟁투를 벌인다(무의미하다. 유의미한 견해 차이라는 게 없으니까.). 설령 당원 중심 의사결정이 맞다손 치더라도 공론화나 대화와 토론이 전무하다. 당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이재명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자들도 전혀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론 그냥 간판만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걸어놓고 실제로는 그냥 ‘극우 청산’ 네 글자 말고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괴물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국민의힘에게는 수없이 많은 혁신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뼈를 깎는 변화의 계기로 삼지 못했고 되레 점점 더 퇴행하고 극단화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불행하게도 민주당은 승리하거나 반사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만 너무 많았고 변화의 필요성 자체를 인식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비민주주의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오늘날의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볼모로 국민을 협박한다. 자기들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저런 수준의 사람들이 다수가 되고 집권을 한다. 과연 국민들이 그것을 언제까지 견뎌줄까? 국민들은 적어도 이 지점에서 만큼은 공평하다. 윤석열을 치기 위해 이재명을 이용했던 것처럼, 이재명을 치기 위해 국민의힘이나 다른 누군가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이러한 위기를 인식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