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국 외교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의 문제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중견국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우리가 소속된 동아시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치 동맹국들과 함께 연대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세계가 이제는 나치즘/파시즘(2차대전기), 현실 공산주의(냉전기)에 이어 푸틴주의나 시진핑 사상 등 새로운 차원의 신권위주의(신냉전)의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을 제어할 수 있는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날뛰고 있는 상황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우리가 입장을 좀 더 명확히 하기를 바란다.
북한이 사실상 우리와 대화를 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넘어 아예 두 국가로 가자고 하고 있고, 우리가 그것을 강제로 돌려 놓을 레버리지 같은 것도 없는 상황이어서 딱히 북한을 신경 쓸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미중 간 조정자와 같은 논리는 한국의 위상에 대한 과대평가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애초에 중간자니 조정자니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과 중국이 우리에게 그러한 역할을 맡길 생각도 이유도 없다.
그리고 그 두 패권국이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조정자 역할을 수용하도록 할 레버리지와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우리보다 국제적 위상이 약간 더 높은 축에 속하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미국의 기대와 요청은 (일본의 재무장까지 염두에 두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이자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고, 중국의 입장은 문화/경제 교류는 하겠지만 자신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우리는 제1 안보 위협으로서 북한을 머리 맡에 두고 있기 때문에, 미중 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는 건 한가한 말에 가깝다.
미국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일단 북한을 저지하는 용도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과 더불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도 하고, 또 체제 원리를 공유하는 같은 진영의 일원으로서 기대하는 바가 된다.
물론 과한 오버도 곤란하다.
예를 들어, 대만의 유사시에 우리가 쉽게 군대를 동원하거나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고 또 이러한 맥락에서 무조건 중국을 들이 받기만 하는 것도 곤란하다.
다만 우리의 입장과 위치를 명확히 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비용은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