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 갈등과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미래
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발언이 그 자체로 문제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언젠가는 어느 정치인이든 해야 할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한국, 일본, 대만은 중국의 팽창주의적 의도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며 장래에 동아시아 민주삼국연대를 형성함이 타당하다. 현재까지 한국과 일본은 대만 문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전략적 모호성 즉 양안관계의 평화적 유지가 중요하다는 정도의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는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 제일이지만, 시진핑 체제 이전의 중국은 적어도 노골적으로 대만을 구체적으로 편입하겠다는 등 팽창주의적 야욕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마음속으로나 겉으로 살짝씩 보여 왔지만).
대만의 관점에서 보면, 종래의 ‘중국과 대만은 모두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하나의 중국의 의미에 대해서는 각자 표현한다.’라는 92공식의 해석에 관하여 현재 중국이 정부에서 표명한 바와 같이 “‘하나의 중국’이란 일국양제를 의미하며, 이를 관철하기 위해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구체적인 행동을 하겠다.”라는 입장을 유지하는 한 92공식을 계속 지지할 실익이 없다. 대만의 입장에서는 ‘민족/문화는 중국, 체제는 실질적 독립 주권/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마지노선(양보 불가능한)의 실익이다. 중국이 속으로 언젠가는 일국양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언명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대만을 압박하지 않는 한, 대만 입장에서도 92공식을 유지하는 실익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92공식=일국양제로 본다면, 대만을 홍콩/마카오와 마찬가지로 보겠다는(또는 앞으로 그렇게 만들 거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92공식 유지는 무의미하다. 중국에선 대만을 홍콩과 같은 지위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말은 전혀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자유민주주의는 야금야금 갉아 먹혔고 오늘날에는 간판으로 전락했으니까. 무엇보다 중국은 강자이고 대만은 약자이므로 일단 일국양제를 받아들이고 나면 중국이 말을 달리 하지 않도록 막을 레버리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그리고 대만은 일본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대만의 유사시는 일본의 유사시와 직결된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실질적이고 완전한 재무장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 중 하나가 중국의 대만 위협이 된다. 중국이 체제에의 위협을 극도로 경계한다면 마찬가지로 일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의 최근 10여 년간의 고압적이고 강경한 태도로의 변화는 중국이 세계 정상으로 올라섰을 때 얼마나 끔찍한 권위주의적 국제사회가 될지를 예견한다. 중국은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권위적인 언사를 하고 수출 조이기 등 치사한 방법으로 상대방을 옥죈다. 그렇다면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국의 눈치를 봐주는 것이 과연 이익이 될지 나아가 유의미할지 의문이다. 중국이 한국과 일본을 만만하게 보고 이전의 종주국 중국 중심의 중화 질서를 회복하려고(‘신중화질서’?) 한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중국 국민들은 철저하게 강경한 내셔널리즘적인 정서로 정부를 추동하고 정부도 국민을 추동한다. 독재 체제 밖의 사람들이 보기엔 이제 중국은 단순히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그러한 체제 논리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으로 확연하게 느껴진다.
중국은 신용할 수 없는 국가이고, 날 것의 무례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주변국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는 것이라고 본다. 중국의 태도가 바뀐 이상, 한국과 일본도 더는 중국을 그냥 용인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은 그간 남북관계/통일문제와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구체적으로는 중국이 북한을 밀면서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이 더 심해질까봐 중국의 눈치를 봐준 것도 컸다. 그런데 이제 북한이 우리와 아예 근본적으로 갈라서자고 하면서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중국도 조공 질서를 회복하는 것 비슷한 식의 고압적 기조로 나아간다고 하면 우리가 중국의 눈치를 보아줄 근거가 중국의 구체적 군사 행동을 막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