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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라는 궤변

by 남재준

일국양제라는 개념은 완전한 궤변이다. 양안관계에서건 남북관계에서건 이런 개념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우리는 홍콩에서 명백히 확인했다.


국가와 체제는 이론적, 개념적으로만 구분되고 실제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체제가 국가를 단위로 하여 운영되거나, 국가의 기본 시스템으로서 체제가 의의를 지니거나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체제와 국가를 혼용하기도 한다(물론 체제가 세계/국제 차원에서도 활용이 되는 개념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체제가 좀 더 넓은 개념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은가 싶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라는 체제는 국가를 단위로 움직여 왔고, 또한 국가의 기본 시스템으로서의 체제에는 독재, 민주주의, 신정(神政), 왕정, 시장경제, 계획경제, 전통경제 등 매우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 국가와 체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국(One Country)이라는 것은 One Nation과는 약간 구분해서 볼 필요도 있다. 통상 Country, State, Nation은 상호 통용되는 개념이긴 하지만 Nation은 국가를 국민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본위로 하는 공동체로 보는 경우, Country나 State는 하나의 정부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영역과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로 보는 경우를 이르거나 아예 국가=정부로 보는 경우가 있다. One nation은 영국에서 등장하기도 하는데,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의 4개 왕국이 하나의 국민성을 가지고 연합왕국으로서 하나의 왕실과 정부를 지니게 된다. 사실 하나의 Nation은 결국 하나의 State가 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현대적 국가를 국민국가(Nation State)라고 부르게 된다.


Nation과 State는 결과적, 현실적으로는 동전의 양면과 비슷하다. Nation이라는 독자적 개념의 의의를 굳이 따져 본다면 92공식에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되, 그 인식을 각자 표현한다.'라고 할 때 그 해석을 실질적으로 State와 System은 두 개인데 중화민족이라는 공통의 국민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나의 Nation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Nation과 State는 본래 함께 가는 것이지만 양안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사실상 양자가 분리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사실 Nation인지도 모호하기는 하다. 국가를 떼어 두고 국민을 논하는 게 어불성설이고 - 즉 State를 빼놓고 Nation만 표현하는 것의 방법과 실익이 무엇인가? - 그렇다고 민족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결국 대만 국민들과 중국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중화민족과 같은 개념을 일상 속에서 많이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일국양제에서의 일국이 실현된 양태를 보면 홍콩은 중국 지배하의 특별행정구이고 본토와 홍콩은 모두 하나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정부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One Country라는 개념이 하나의 국가=정부로, 양제(Two Systems)라는 개념이 특별행정구를 통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 어느 쪽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러한 일국양제는 미묘하게 효과가 달라진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특별행정구가 고도의 자치를 보장받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입장에서 보면, 특별행정구는 고도의 자치를 보장받으며 이는 중국으로의 반환 이전과 같은 수준이어야 하므로 즉 ‘두 개의 체제’이므로 중앙정부는 홍콩 정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상위 차원에서 어느 한쪽의 해석을 강제할 힘이 없기 때문에 결국 강자의 해석이 규범이 된다. 그 결과가 바로 현재 중국 중앙정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홍콩 정부와 입법회이다.


국가는 체제와 불가분이기 때문에, 어떻든 간에 한 번 편입이 되면 결국 강자인 예속하는 주체의 의지가 약자인 예속되는 주체의 의지보다 강하게 되고 이때 예속하는 주체는 체제가 국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점을 명분으로 이용한다. 나아가 규범이 되기도 하고. 홍콩의 법체계와 중국의 법체계가 서로 연결된 특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이러한 검토가 대만에 주는 실천적 시사점은 하나다. 일국양제는 중국에게 실질적으로 강하게 예속되는 명분을 안겨줄 뿐이다. 결국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가 자체를 중국에 아예 넘겨서 강압적 체제에 예속되기를 자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귀결을 낳는 것이다. 이 점에서 대만 즉 중화민국은 결코 일국양제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별개의 국민국가로서 양국방안(Two State solution)으로 정리되는 것이 타당하다.


아무리 민족통일의 대의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광활한 중국 본토를 손에 넣었으면 그걸로 만족해야지, 대만까지 손에 넣으려는 것을 신념이랍시고 가지는 건 정말 과욕이고 과한 중국내셔널리즘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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