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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제도가 가져올 한국 법치주의의 위기

by 남재준

1. 시험의 미국화 : 인적성과 스펙


미국 본위로 수입한 현재의 로스쿨 제도는 우리나라 법체계가 토대를 두고 있는 대륙법계가 지향하는 법문화와는 부정합적이다. 나아가 로스쿨 제도를 계속 이대로 운영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법치주의는 시나브로 위기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정책에서 미국을 본받은 것이 상당히 많다. 미국의 인적성이나 스펙 중심 정성평가 등은 우리나라의 수능, LEET, PSAT, 대입 수시 중 학생부종합전형 등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경우 적어도 우리보다는 상향 평준화가 덜하므로, 다시 말해 경쟁이 우리보다는 덜하므로(아이비리그 같은 최상위권의 치열한 경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적성이 말 그대로 기초적인 적성을 평가하는 정도의 본래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시나 입시 등에서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의 경우, 결과적으로 인적성이 고시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비합리하고 부당한 양상이 나타난다.


인적성이라는 것은 그냥 기초적인 적성을 평가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직무/학업 역량에 가까운 분야를 시험하는 것이 아닌데, 고시에서 정량평가 요소로서 점점 인적성이 본래 기능보다 과대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의 시험은 일반적인 시험의 의미로서의 ‘내용’ 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지능 검사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참고로 앞으로 수능에서 탐구 영역을 통합사회-통합과학으로 일원화해 약화시키면 국어, 수학 중심으로 더 철저히 재편될 수능도 거의 인적성 수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고교 국어, 수학의 내용 상당 부분이 도구적 성질을 띠는 것(e.g. 독서(비문학))이기 때문이다.


2. 로스쿨 제도는 왜 우리나라 법체계와 부정합하는가


다시 법학교육으로 돌아오면, 본래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성문법계 국가는 법문과 그것의 해석/적용이 중심이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법의 구성 개념과 체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를 문리적/합리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는 역량 등이다. 그리고 판례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크기는 하더라도 이는 일관성이나 법적 안정성 등을 위한 것이지 원칙적으로는 여전히 법문을 구체적이고 명확/타당하게 서술/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법률유보의 원칙(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작용은 반드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원칙), 포괄위임입법금지의 원칙(법률이 하위법령에 위임하는 사항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행정에 입법을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 등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법적 논증은 논리학과 같은 것을 이용하는 일반 논증과 크게 연관이 없다.


한편 영미권과 같은 영미법계/불문법계 국가에서는 법문 자체보다도 판례와 변론이 그 자체로 더 중요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영미법계에서는 좀 더 유연하고 재량적인 법조인들의 변론이나 판례 그 자체의 논리와 전략이 독자적으로 중요해지고 그러다 보니 수사학이나 변론술, 논리학 같은 일반 논증의 차원이 법적 논증의 차원과 거의 직결된다.


보통 ‘변호사는 언변이 좋다.’라는 인상은 거의 영미법계의 변호사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대륙법계의 변호사는 굳이 따지자면 영미법계에서 Barrister(법정 변론 중심 변호사)보다는 Solicitor(법률 서무 중심 변호사)의 직무 스타일/이미지와 많이 겹친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차이인데, 특히 변호사들이 정치인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어느 법계 국가에서건 마찬가지라는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영미법계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인 버락 오바마, 토니 블레어, 피에르 트뤼도 같은 인물들을 보면 현란하고 언변이 좋으며 외향적인, 앞서 언급한 언변 좋은 변호사의 이미지를 지닌다. 하지만 대륙법계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인 문재인, 올라프 숄츠, 가타야마 데쓰 같은 인물들을 보면 신념이 강하고 무게감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내향적인 변호사들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굳이 논지에 맞춰 찾아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면, 미국산 로스쿨 제도는 사실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일반 논증 역량이 법적 논증 역량과 직결되는 법체계를 가진 것이 아니고, 언변이나 수사를 잘 쓰는 전략적 변호사들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전자를 전제한 LSAT을 모방한 LEET나 후자를 그대로 수입한 자기소개서-면접이라는 정성평가는 모두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다.


3. 법치주의적 관점에서 로스쿨 제도가 ‘위험’한 이유


어떤 사람들은 그건 그냥 문화일 따름이고 최근엔 변호사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자기PR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것도 많아지는 등의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학은 기본적으로 규범 중심 분야이다. 규범은 시대가 흐르더라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들을 가진다. 법은 사람이 운용하는 것이고 특히나 어떤 법조인들을 수혈하느냐는 법의 운용 나아가 법치주의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대륙법계가 지향하는 법문화에 비추어 볼 때 로스쿨 제도는 위험하다. 대륙법계는 법의 독자성/무게감 무엇보다 이성/문리주의 같은 것을 강조하는데, 외향적 언변/논리에 탁월하며 법학을 다른 분야 위에 얹힌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는 변호사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자의적이고 실험적이며 문리적으로 볼 때 얕은 법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상당하다. 게다가 로스쿨의 발달은 학부법학의 폐지 등으로 일반대학원을 더 위축시키고 로스쿨 출신 실무자들이 학계에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이러한 점들을 학계에서 독립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영미법계에선 다소 법을 정치의 하위로, 또 사법(司法)을 입법의 하위호환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의회 우위가 매우 고도화되고 대법원의 독자적 발달이 늦은 영국의 경우가 그렇고, 법해석을 그냥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한 시간이 길었던 미국의 경우도 그렇다. 물론 이 양국은 오랜 세월 선진국으로서 경험이 축적되면서 제도적 자제가 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독일과 같이 헌정의 단절이 매우 여러 번 있었으며, 이에 따라 엄정한 성문법 체계와 사법의 독자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최근의 계엄은 법치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에 있는지 즉 법치주의가 힘이 우위냐 법이 우위냐의 중요한 시험대에 아직도 올라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더구나 2020년대부터 나타나고 있는, 인권이나 기본권 등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민주주의와 사실상 분리하고 당원이나 대중의 뜻을 다른 무엇보다 앞세우는 경향은 법치주의의 새로운 위기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유주의와 법치주의 원리를 수호해야 할 법조인이나 법조인 출신 정치인 중 상당수가 이러한 비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의 폭주에 동참하고 있는 실정이다.


탄핵 정국에서 우리는 양당이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과 경우의 수를 전부 동원해 정치가 법치가 스스로 자제하면서 비워 준 공간을 폭력적으로 남용/침범하고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모두 목격했다. 결국 성문법과 사법 독립이 훨씬 중요해진 역사적 맥락 속에 있게 된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를 거치면서 점점 더 변호사들은 중상층 엘리트에서만 충원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대륙법계가 요구하는 법적 역량보다는 일반적 논리/지능을 본위로 측정한다고 볼 여지가 매우 크다. 물론 당연히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근본적으로 법조인으로서 결격이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재의 제도와 구조가 우리의 법체계와 법문화의 규범적 방향성 등에 비추어 부정합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4. 시대의 미래와 법학/법조/사법의 역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갈등이 최고도에 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중대한 위헌 여부와 이에 따른 파면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통합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탄핵심판 절차 진행 중과 달리 탄핵심판 결정 선고 후에는 70% 이상의 국민들이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다음 국면(Phase)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사회 안정과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데에 있어 사법의 사회자본이 많이 하락했다는 것도 느꼈다.


앞으로의 법조의 역할은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사회통합, 인권과 기본권이 보장되며 합리적으로 사회와 경제가 운영될 수 있도록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등이 주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상층 이상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시장에 최적화되거나 운동/정치의 논리에 쉽게 동참하는 이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은 로스쿨 제도보다는, 본래의 사법시험과 같은 제도로 회귀하는 편이 합당하다.


시대 변화에 발맞추는 변호사는 로스쿨이 아니라 실무 차원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변호사자격은 말 그대로 자격이 되어야 하며 그래야 국민의 법률 서비스에의 접근성도 제고되고, 국민에게 열린 법조/사법이 될 것이며, 나아가 시대적 위기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로서 법치주의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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