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국회로 갑니다>를 읽고 2

2부 '정책, 정치의 중심을 걷다'를 읽은 후의 생각들

by 남재준

*2-2. 규칙을 만드는 일의 엄중함 에 관해서는 법적 검토가 좀 더 필요해서 추후로 미뤄두겠다.


2-1. 민과 관을 잇는 정치 를 읽고


이 영역은 순전히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만이 제대로 알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용의 상당 부분은 ‘국회의원 보좌진이 이렇게 고생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만들 때 배우의 메이크업부터 영상 편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고된 노동이 요구된다. 입법이나 정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입법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국회의원 보좌진이 많은 고뇌와 노력과 분투를 한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사실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이라는 직업 자체도 딜레마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입법, 국정감사, 예산안심사 등 여러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만 실은 가치관과 국가에 대한 비전, 이를 위한 장기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이 만약 기업가 더구나 ICT 기업가에 비견된다면 거시적인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리더들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글쓴이가 언급한 것처럼 선거 주기가 돌아오고 민심이 시시각각 출렁이며 지역구 관리를 해야 하는 등의 단기 차원의 제약들도 있다. 그 둘 사이를 오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사실 의원 개인의 입장보다는 소속 정당이라던가 하는 맥락 속에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정당은 사람이 구성하는 것이고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다. 좀 더 분명한 신념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국민의 입장에서 들었다.


한편 국회의원 보좌진의 역할은 사실 글쓴이가 끄트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편의에 따라 양극단으로 나눈 부분들을 합쳐야만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외부자의 시각에선 그렇다. 글에서 느껴지는 바로는, 국회의원 보좌진은 반은 공무원, 반은 정치인이다. 국회의원이 내는 아이디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구체화해야 한다는 측면은 공무원(정확히는 ‘늘공’)의 측면이 엿보인다. 하지만 보좌진도 실현 전략을 구성할 때 기계적 프로세스에 따라서만 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수단과 절차 등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회의원과 그 보좌진의 관계를 민주적 정당성이니 하는 차원까지 가져가는 건 약간 과장인 것 같다. 베버는 정치-행정 이원론을 주장한 듯하지만, 사실 그러한 정치와 행정에 대한 이해는 베버 본인이 제시한대로 ‘이념형(Ideal type)'이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는 정치와 행정의 경계는 모호하다. 더구나 현대사회가 고도로 복잡화되고 행정국가화 현상이 심화되면서는 더욱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보좌진이 국회의원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너무 경직된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조직의 특성상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글쓴이는 국회의원 보좌진을 ‘능동적’ 존재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 국회의원이 증가하는 것을 경계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로 올수록 정당인, 국회의원 보좌관, 지방의회 의원 등 정치권 자체에서 출발해 협의의 정치인(특히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정당인 등은 일반사회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정치 내부의 문법에 과도하게 익숙할 수도 있다. 만약 정치권이 좀 더 개방적이고 소통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면 괜찮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권 출신으로 정치인을 ‘모시다가’ 본인이 보스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 권위주의적이고 과도하게 마키아벨리주의적인 정치문화(권력 역학에서의 정치적 손익 계산에 의해서만 주로 움직이는)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직업이라는 지위에 따르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 업무에 감성을 개입시키지 않는 게 바람직하며, 따라서 냉정하다는 등의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외과의나 간호사나 소방관이나 경찰관 등은 국회의원 보좌진보다 훨씬 체력적/정신적으로 크게 소모되는 직무를 수행한다. 국회의원 보좌진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무관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공감과 연대만으로 충분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직업적으로 유관하게 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 자체가 결국에는 인간성도 보존하는 길이다. 물론 국회의원 보좌관은 비가시적인 관계와 감정 등이 크게 작용하는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므로, 글쓴이의 말대로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해보는 공감 능력이나 현실 감각이 중요할 것 같다.


2-3. 현실 왜곡에 맞서는 시민의 힘 을 읽고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운 소비쿠폰, 기본소득/기본사회, AI 주도 성장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이 없으며 전부 근본적이고 중대한 결함이 있는 방향들이다. 글쓴이는 AI 주도 성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확대재정과 자영업자 적극 지원 및 현금직접지원정책 등에 옹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이 이재명을 오해했든 말꼬리 잡기를 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다.


우선 대봉쇄 시절에 선진국들까지 현금직접지원정책을 시행한 것은 맞다. 이는 응급 상황에 CPR을 행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당시 현금직접지원은 사회보장 차원 대응의 약 30%를 차지했고 200여 개 국가가 시행했다. 속도전이 중요했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지속하고 제도화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이며, 그것은 비효율적인 재정 전략이다. 당장 2020년 1차 재난지원금의 승수효과도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0.2~0.3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즉 10조 원을 풀면 GDP에 미치는 효과는 2~3조 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특히 고소득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낮으며 저축이나 채무상환 등에 사용한다. 그 이하 소득계층의 경우에도 저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상당했다.


사회와 경제는 매우 복잡한데 정책 타깃이 불명확하고 광범위하니 비효율이 가중된다. 재난의 피해는 계층이나 산업에 따라 비대칭적(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장인은 소득 유지 BUT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등은 소득 급감)이었는데 전 국민 동일 지급은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지 못했다.


게다가 팬데믹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재난지원금을 푼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일시적 소득/소비 보조 효과는 소폭 있었겠으나 정부가 그걸 지속할 순 없었다. 한 번 정도라면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선별적이고 목적/수혜자/국민경제 지지에의 효율+효과 등이 보다 분명한 방향으로 지출 전략을 세우는 것이 그때에나 지금이나 합리적이다. 고용유지보조금이나 임대료 지원, 사회안전망 강화 등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해법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의 최선에 가까웠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점을 인정했다. 그는 전국민재난지원금이 초기 대응으로는 타당했다고 보았지만, 이후 한정된 재원으로 최대한 효과를 내기 위해 피해가 가장 큰 업종과 계층에 우선 집중해야 할 때라고 2020년 9월 대통령비서실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언급했다. 전국민재난지원금은 명백히 ‘비상 구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투자나 고용 등 경제의 기초체력(Fundamental)이 견조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꾸 일시적 가계소득 인상만 하게 되면 종국에는 실제로 구매력보다 인플레이션율의 상승 속도가 더 빠르게 될 수 있다. 그렇게 고물가가 되면 이번에는 결국 다시 소비를 눌러야 한다. 경제는 작용-반작용과 같다. 풍선 효과처럼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커지는 식으로. 결국 전체를 수리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장기 차원에서는 투자, 고용, 생산성이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나 그 이전의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의 케인지안 정책은 단기 경기부양책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고물가-저성장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총수요 관리 정책이 더 이상 듣지 않고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었기에 전면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지금 상황도 그때와 유사한 측면이 상항히 많다. 2021~2022년에는 확대재정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지연(Inflationary Lag,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발생할 때까지의 정책시차)이 관측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에 소득 주도 성장으로 논란을 빚었지만 2019년부터는 혁신성장-공정경제-포용성장의 3축 체계로 전략을 전환했다. 규제샌드박스 도입으로 정보통신/산업융합/금융혁신 등 신기술/신산업 실험의 장벽을 완화하고 사회적 수요는 있으나 경제적 유인이 없는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강화했으며 기획재정부는 이미 2020년부터 준칙재정으로의 이행과 재정건전성의 제고를 추진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운 독자적인 장기 생산/성장 차원 전략이 AI 주도 성장인데 여기에도 문제가 많다. 과도한 기술 낙관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AI 산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 자본집약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산업이어서 오히려 노동소득분배율을 하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글쓴이는 자영업자의 고통을 언급했다. 하지만 글쓴이가 제시한 통계와 경향이야말로 오히려 적극 지원 정책을 위한 논증을 약화시킨다. 우리나라가 팬데믹 당시 선진국 대비 성장률에의 타격이 적었던 건 사실인데, 이는 단지 '자영업자의 희생' 때문이라기 보다는, 수출 회복력/제조업 기반/디지털 인프라/상대적으로 짧았던 봉쇄 기간 등 여러 요인이 복합된 결과이다. 또한 실제로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데 내수시장이 그만하지 못하므로 포화 상태와 중복 투자 등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자영업은 원칙적으로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자기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꾸 자영업을 위해 융자를 쓰는 상황은 별로 좋지 못하다. 막말로 망할 때마다 국가가 나서서 보전해주면 건전하지 못한 부채들이 쌓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미 가계 차원에서 영끌이니 뭐니 하면서 팬데믹 당시에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고 그 후과로 가계부채가 폭증했다. 현재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으로 기조를 선회한 중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이 과중하다면, 결국 그 사람들이 노동시장으로 옮기던가 해서 합리적으로 재편되든지(Restructuring) 하는 방식으로 비효율성이 해소되는 길 밖에는 없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영업자를 지원하면 이미 포화 상태인 폐단을 더 악화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자영업 비율 감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감당할 수 있도록 고용 창출이나 투자 지원, 산업 다변화 등에 재정지출을 하는 게 합당하다. 공공 차원에서 민간의 고통을 몰라서 더 강한 지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개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봐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다.


게다가 자영업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 지원을 한다고 치더라도, 자영업자마다 사정이 다른데 얼마나 손실 보상을 해야 실효성이 있는 것이고 그걸 어느 정도 지속해야 하는가? 실제 팬데믹 당시 우리 정부는 업종별 매출감소율+고정비 기준 보상 모델을 검토했지만 실측/입증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소상공인지원금이라는 보조금 형태로 전환했다.


추가로, 애초에 자영업자의 소득이 준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단선적 가정에도 문제가 있다. 세트리스 파리부스를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현실 설명력이 너무 떨어지면 무의미하다. 소비 감소가 부정적 요인이라 하더라도 동시에 시장 조정 과정에서 비효율 공급이 정리되어 생산성이 올라가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이재명의 ‘호텔경제학’ 비유의 진정한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재명의 옹호자들은 비판자들이 이재명의 진정한 취지를 오해했다고 하지만, 실은 그 취지가 바로 문제가 된다. 경제의 메커니즘을 정태적 수요부족 상태로만 본다는 점이 말이다. 경제는 폐쇄체계가 아니라 노동참여/생산성/투입/생산/투자/기술혁신 등 공급 역량과 효율이 계속 변동하는 개방체계이다.


순환이니 하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 땜질식 재정 처방으로 계속 버티기만 하는 건 잘못된 방향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단지 단기 경기불황이니까 재정지출로 소비 진작을 해야 한다는 정도의 인식과 처방으로는 회생이 불가하다. 생산성 둔화, 인구 감소, 산업구조 정체,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총공급 요인을 개선하기 위해 근본적인 경제의 재구조화와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며 재정도 여기에 사용되어야 한다. 고성장에 집착하기 보다 차라리 관치의 근절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교육/복지 혁신 등을 강화해 펀더멘털을 키워야 한다. 양적 성장이 알아서 전체 국민의 소득 수준을 개선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은 국가 내지 정부가 독자적인 경제주체로서 의의를 갖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재명 본인이 말했듯이 국가의 세금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정부는 원칙적으로는 부가가치 창출의 주체가 아니다. 그러니 결국 지금 쓰는 재정을 증세 없이 국채로 충당하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마음 놓고 증가시키면 나중에 그 비용 청구서는 전부 국민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염려를 단지 경제지 등의 퍼주기 프레임이라고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주장이다.


국민의힘의 감세와 민주당의 확대재정은 둘 다 문제가 있다. 전자는 조세지출이고 후자는 예산지출인데 둘 모두 구조개혁과 증세 등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부재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재정을 낭비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 국민의힘 자신도 건전성에 손상이 가는 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때 추진한 감세가 재정건전성을 해친다는 글쓴이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앞서 언급했듯 감세정책은 조세지출이기 때문에 결국 건전재정에 도움이 안 된다. 서민감세라는 말도 있는데, 사실 그건 기만적인 표현이다. 누진세 구조에서는 당연히 과세표준이 작아질수록 조세 부담도 적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감세가 시행되면 제일 큰 이익을 보는 건 고소득자나 자산가 등이다. 증세야말로 싫더라도 한 번은 정치적/사회적 차원에서 정면돌파해야 하는 지점이다. 어차피 더 가진 사람이 더 부담하는 건 결국 불가피하다. 단순히 복지를 더 하려고만 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세수 확충과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서, 그리고 상층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 차원에서라도. 올해 8월 뉴스필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국민들이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인상에 찬성했다.


글쓴이의 말대로, 재정/예산을 어떻게 쓸 것이냐가 쓸 것이냐 말 것이냐 보다 중요하다. 실은 '퍼주기' 프레임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그렇게 많이 확산되었다는 근거도 별로 없다. 그게 사실이었으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때 국민들도 보수 야당 등을 따라 난리를 쳤어야 맞지만 그런 현상은 없었다. 정말 중요한 건 앞서 언급했듯 균형재정/재정건전성과 사회투자/생산성 제고를 위한 지출 간 균형과 이를 위한 구조개혁 등의 비전과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면, 주류 경제학의 논리를 냉혈한처럼 몰고 가는 건 부적절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이해한 주류 경제학의 취지는 '단적으로는 의도가 선해 보이고 이상적이어 보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대가를 치르거나 차악 대신 최악을 선택한 것으로 귀결되는 정책결정들이 너무 많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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