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국회로 갑니다>를 읽고 3

3부 '그날의 위기를 만든 깊은 뿌리'를 읽고

by 남재준

7. 제도를 파괴한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 을 읽고


*함성득 교수의 '대통령이 실패하는 이유로 제안된 가설 분석'에 관한 생각


- 논리적으로 볼 때, 용산으로 대통령 관저를 옮겨서 실패했다는 점이 청와대가 흉지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고 볼 수는 없다. 청와대가 흉지라는 명제가 반증되려면 청와대에서 실패하지 않은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물론 이는 단지 청와대가 흉지라는 가정을 입증하느냐 반증하느냐 라는 차원을 전제하고 하는 얘기이다. 기본적으로 흉지니 길지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이런 건 현상 진술로서는 몰라도 분석으로서는 다룰 가치가 전무하다.


- 리더십 자체보다는 정치문화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오히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자기 권력의 한계를 느낀 경우들이 더 많았던 걸로 보인다. 여당이 다수여도 대통령 뜻대로만 온전히 밀어붙이기 어렵다는 점이라던가. 그리고 대통령 개인별로 보면 리더십이 나쁘다고 볼 만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문화는 대통령이 어떻게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은 리더십 측면에서는 모범적인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판단이 신중하고 경험도 풍부하고 아랫사람을 대할 때 존중하는 편이었고. 그런데 그가 제왕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삼김시대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보스정치와 지역주의, 수평적이기보다 수직적/집단주의적으로 흘러가는 한국의 조직문화 등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특히 김대중은 대체로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체제 지향 차원의 대결 구도 하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사실 리더 1인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통합되는 것이 화력을 키우는 유력한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특히나 민주화 진영은 자기의 신변을 걸고 활동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우 강한 단결을 요하고 지도자가 ‘선생님’으로까지 받들어지는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다. 어떤 시대적 상황과 정치문화 등에 영향을 받는 측면이 있다.


- 물론 박근혜나 윤석열과 같은 '개별적인' 대실패 사례를 분석한다면 결국 개인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돌아가는 게 맞긴 하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들이 공통적으로 좋은 결말을 맞지 못한 까닭을 개인의 리더십 같은 것에 돌리는 게 타당한 설명일까?


- 사실 제도나 개인은 오히려 괜찮은 편이었고. 제도는 남용하거나 왜곡하지만 않으면 문제 될 게 없는 거였고, 개인들의 리더십도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대통령직 수행에 근본적 자질이 없다고까지 말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본다.


*함성득 교수의 '성공하려는 대통령을 위한 조언'에 관한 생각


- 국정과제가 많다고 해서 그것을 대통령의 열정이 과해서 라고 생각하는 건 좀 오해가 있어 보인다. 어쨌든 국정은 가능한 한 모든 분야를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국정과제도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국정과제들 중에서도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는 핵심 과제들이 있고 그게 상당히 중요하게 돌아갈 것으로 추정한다.


-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라는 건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들에게만 주로 해당되는 말인 것 같고.. 대통령 일반에게 내릴 수 있는 평가는 아닐 듯 하다. 그리고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 중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은 딱히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모방했다고 보기도 어려워 보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관치/개발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추진했고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사회보장과 노동권 강화 등 사회정책 영역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 대통령들은 리더십 자체 측면에서도 박정희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다만 반대로 민주당계 출신 대통령 중에 이재명 대통령은 사실상 ‘진보판 박정희’가 되려고 하는 것 같다.


- 정치적 차별화와 정치 보복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진영이라고 하더라도 김대중 국정과 노무현 국정의 결이 달랐는데, 이는 필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을 종래 자신이 소속된 진영이 유지하고 있던 이념과 결합해 업데이트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정치 보복은 한 마디로 전임 정권에 대한 사정(司正)을 말하는 것인데, 그걸 한 대통령도 있고 아닌 대통령도 있다. 그런데 전임 정권에 대한 사정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정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치 불개입과 검찰권/경찰권의 절제된 행사가 중요하다.


-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어느 조직에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원론적인 얘기고, 실제로는 대통령 주위에는 굉장히 거대한 네트워크 및 이해관계가 둘러싸고 있고 대통령 1인이 제대로 신뢰할 유능한 사람을 찾는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어 보인다. 그리고 국무총리와 행정각부, 대통령비서실 등을 자기 나름의 구상으로 적절히 배치한다 해도 항상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진보 정권이었음에도 균형을 고려해 고건을 국무총리로 임명했지만 세간의 평가와 별도로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한 인사’라고 생각했다. 탕평인사는 맞는 말이긴 한데, 근본적으로 경험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조화시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 대통령은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 국정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하는 입장에 있으므로 국회의장과 같은 조정자의 역할에 머무를 수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제대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려면 입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효율적 입법이 쉽지 않고, 그래서 대통령들이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았던 듯 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대통령제는 행정과 입법이 분리되어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양자 간의 긴밀한 협의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니까 당정협의나 대통령비서실의 정책조정 같은 것을 두는 거겠지.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여당만 가지고 되지 않는 여소야대 같은 경우에는 또 그게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내의 이견도 있을 수 있고...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인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뭐 원론적으로는 여야 대표들을 불러 회담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입법부에서 이루어지는 법안 처리의 진행 상황에 대해 개입하는 건 모양새도 이상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태도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일 수도 있다. '분위기 조성' 같은 거랄까.


- 사실 윤석열 대통령이 2000년대 이후의 유일한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상당히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했기 때문에 – 특히 여당에. 그리고 개인이 아닌 구도상으로만 보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더 위험한 제왕적 대통령들이었다. 왜냐하면 대체로 보수가 우세거나 약우세인 상황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재임 내내 여당이 압도적 열세였고 장외에서 지지율 등도 받쳐주지 않았다(자기 책임이지만). 물론 대통령의 힘은 막강하기 때문에 여당에 대한 지배력과 그 외 소위 ‘영치(시행령을 통한 통치)’ 등을 하는 모습들을 보였지만. 그러니 제왕적 대통령을 하려고 했는데 실제 위상과 효과는 한계가 컸던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였고.. 결과적으로 민주화 이후 최초로 계엄을 선포하는 초대형 폭탄을 윤석열 대통령이 터뜨리면서 기록을 경신한 거지.


- 실은 그 구도 자체는 대통령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구도가 맞긴 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은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민주적 절제는커녕 거의 음모론에 가까운 인식에 기초해 헌정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기로 몰아넣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 이태원 참사는 정치적으로 보면, 유감스럽게도 정치/행정의 문화와 윤리의 변질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이러한 참사가 나면 객관적/과학적인 인과관계가 어떻든 간에 관계 부처 장관은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또 대통령은 이에 관하여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것이 야당에 공격 빌미가 될 수 있긴 했지만, 야당도 비교적 그런 사태에선 자제하는 편이었다.


- 하지만 이태원 참사 때 국가의 책임을 묻는 점에 관하여 대통령과 정부, 국민의힘은 ‘좌파 세력이 사건을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우리를 프레이밍한다. 인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건 미성숙하고 퇴행적인 반응이다.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집권 세력은 이유야 어찌 되었건 사건이 발생하면 최대한 몸을 낮추고 사태의 합당한 수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 윤석열 재임기의 모습들은 전반적으로 보수 진영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와 인식 등의 맥락을 검토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 정권에서는 민간인 사찰이나 부당 기소 등의 문제들이 이어졌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주류였음에도 불구하고 ‘좌파들이 암약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 보수가 주류였을 때 기본적으로 민주당을 비롯한 상대/반대 주체들을 대하는 태도는 대개 ‘존재의 자격이 없다. 내지는 최소 잠재적으로 없다.’로 귀결된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바람직한 요소 중 하나가 공존이고 이를 위한 조건 중 하나가 대화, 토론, 소통이라는 행위들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되려면 서로에 대한 관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하지만 보수 진영이 주류였을 때 상대에 대한 인식은 관용은커녕 최소한의 병존조차 마음속으로는 인정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 이러한 인식은 바뀌지 않았고, 2016년 탄핵 이후로 민주당이 주류화되면서 ‘좌파(=위험 분자)들이 대한민국을 장악했다.’로 옮겨갔다. 그러한 인식이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그의 모든 음모론적 인식과 세계관의 기초에 깔려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민주적 DNA(?)라는 게 없었던 셈이다.


- 본래는 사실 민주당의 상당수도 ‘독재 타도’라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보수 진영을 존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국가 전체를 보수 진영이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민주당도 보수정당이 주류였을 때와 반대의 의미로 ‘극우(=위험 분자)’들을 몰아붙이는 상황에 있고 그걸 실현할 힘도 있다. 물론 보수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민간인 사찰 같은 일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어떻게든 ‘궤멸’시키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표출한다.


-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의 중심이 대통령에서 국회로 넘어왔다는 시대의 변화를 윤석열은 불인정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시대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엄청난 피해 의식 같은 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그냥 여소야대도 아니고 제1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통령-국회 차원의 관계는 다소 거시적인, 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회가 국가권력의 중심이 되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 많다. 행정국가화 현상이 시작된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더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정부가 항상 국회보다 우위에 있어 온 신대통령제-개발국가 체제를 오래 유지해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과 국회가 충돌했다기보다도 그 국회를 정치적 맥락에서 실질적으로 장악한 교섭단체들 즉 정당 간 역학 구도의 문제에 가깝다. 이것이 상시적으로 변해 왔다.


- 심지어 제1야당이 자기와 직전까지 가장 심하게 갈등해서 원수가 된 입장이다. 거기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앞서 언급한) 음모론적인 ‘좌파 장악’의 세계관도 있었을 것 같다. 말하자면 민주당 측은 글쓴이와 같이 ‘권위주의적/제왕적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생각했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측은 반대로 ‘사실상 좌파 독재 체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은 둘 다 약간 맞고 압도적 대부분은 틀린 이해였다.


- 결국 현재 우리 헌정과 민주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단순히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태나 서로에 대한 이해 내지 관용의 부족 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간 충돌/대립의 저변에 있었던 ‘서로의 존재에 대한 불인정’이라는 인식이 극단화되고 폭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에 대한 반대/적대(Opposition)가 아니라 배제(Exclusion)에 이른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힘과 민주당 각자의 방식에 따라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정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8. 총구 앞에 선 12월 3일의 국회


- 문재인 정부 중반부터 정치적인 대립과 스캔들 등의 밀도과 강도가 커지고, 10년 주기가 깨지고 ‘심판’이 이전보다 더 빨리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초 지지율 급락 사태 등을 맞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제22대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만으로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였지만 체감상 마치 반환점에 거의 다왔거나 그 전후에 치르는 선거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정말로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반에 치른 선거는 2022년 지선이었는데, 2022년 대선으로부터 몇 개월 후에 치러진 이 선거는 국민의힘의 압승이었다.


- 대체로 대통령 임기 중의 총선은 ‘여당의 무덤’이었다. 다음을 살펴보면 ;


1. 1992년(제14대) 총선 ; 노태우 대통령 재임 만 4년을 갓 넘긴 상태에서 치러졌다. 거대 보수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과 김대중-이기택 주도 민주당, 정주영 주도 통일국민당이 경합했는데 200석 가까이 되었던 민자당의 의석은 149석이 되어 과반을 1석 차이로 상실했다. 보수가 주류였던 시대였으므로 1당은 넉넉한 격차로(민자 149, 민주 97) 유지하긴 했지만 사실상 패배였고 ‘한국판 일본 자민당’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2. 1996년(제15대) 총선 ; 김영삼 대통령 재임 만 3년을 넘긴 상태에서 치러졌다. 김영삼 대통령 주도로 민자당에서 재편된 신한국당은 139석으로 과반(150석)에 한참 미달하는 성적표를 받았다. 정계에 막 복귀한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가 제1야당(79석)이 되었다.


3. 2000년(제16대) 총선 ; 김대중 대통령 재임 만 2년을 넘긴 상태에서 치러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불리했던 구도를 넘기 위해 김종필 주도 자유민주연합과 손을 잡았는데, 총선 국면에서 재편된 여당 새천년민주당은 의석을 늘리긴 했지만 과반에 미달하는 2당이 되었다(115석). 이회창 주도 한나라당은 1당(133석)이 되었지만 과반에는 미달했다. 참고로 이때에는 국회 총 의석이 299석에서 273석으로 줄었다.


4. 2012년(제19대) 총선 ; 이명박 대통령 재임 만 4년을 조금 넘긴, 제18대 대선(12월)이 있던 해에 치러진 선거이다. 이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주도로 새누리당으로 재편되면서 보수정당이 ‘내부 정권교체’를 했고, 이 ‘리뉴얼’ 덕분에 보수여당은 과반을 지켰다(152석). 진보 진영 -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단일화 등 노력을 하면서 기대를 했음에도 결국 ‘선거의 여왕’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 선거는 여당이 이겼다고는 하지만 이미 제18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심하게 반목했던 박근혜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


5. 2016년(제20대) 총선 : 박근혜 대통령 재임 3년을 조금 넘긴 상태에서 치러졌다. 야당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분당되었고 문재인 대표 시절에 내분이 심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개헌선을 확보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부에서 친박계가 패권을 휘두르면서 내분이 심해졌고 결국 보수여당은 8년 만에 1당과 과반을 모두 상실하는 참패(122석)를 당했다.


6. 2024년(제22대) 총선 : 윤석열 대통령 재임 만 2년을 1개월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 치러졌지만, 워낙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많았어서 체감상으로는 시간이 꽤 지났다고 느낄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양당은 서로의 약점(윤석열의 대실패와 부패 vs 이재명과 조국의 부패)을 쥐고 물고 늘어졌지만 어찌 되었거나 국민은 국정의 난맥상과 사실상 실패를 보여준 국민의힘에 2020년에 이어 다시 한번 대참패를 안겼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의 꽤 많은 인사들은 이 현실을 ‘그럴 리 없어. 선거가 잘못된 거야.’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그해 말에 민주화 이후 어느 역대 대통령도 하지 않은 파멸적인 선택을 한다.


- 다음 경우는 매우 특수한 변수(체제 전환 후 심판, 대통령 탄핵소추 역풍, 정권교체 후 임기 초, 팬데믹 대응 성공)가 작용한 예외들이었다. :


1. 1988년(제13대) 총선 ; 이 총선도 2008년 총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2개월여만에 치러진, 새(현행) 헌법 하의 첫 총선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변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대통령이 직전의 제5공화국의 수립을 가져온 군사 정변의 주동자였고 그 정권의 2인자였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1987년 12월에 치러진 새 헌법 하의 첫 대선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사실상 김영삼-김대중 두 야권 후보가 분열되었던 탓이었고 노태우 대통령 본인의 득표율은 36.64%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 총선은 제5공화국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공작과 탄압을 동원했던 1980년대의 ‘버프’를 어쩔 수 없이 벗은 민정당(민주정의당)은 1당은 지켰지만 과반에서 한참 미달하는 125석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이는 결국 노태우 대통령의 과반수 확보 전략으로서 1990년의 삼당합당으로 이어진다.


2. 2004년(제17대) 총선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여파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3월 12일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고 5월 14일에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의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했는데 이 총선은 탄핵심판 중에 치러졌다. 재임 초긴 했지만(총선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만 1년을 갓 넘긴 상태였는데 심지어 직무정지 상태였다) 소수파로 출발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인기 있는 대통령이 못 되었고, 새천년민주당에서 분당해 나온 열린우리당은 고작 47석짜리 미니 여당이었다. 그러나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은 대대적인 역풍을 맞았고 민주화 이후 여당이 최초로 대통령 임기 중간선거에서 다수가 되었다(정확히 152석으로 간신히 과반을 넘겼지만). 또 민주노동당 즉 진보정당이 제3당(10석)으로서 최초로 원내에 입성했다.


3. 2008년(제18대) 총선 : 이 선거도 딱히 중간선거라고는 볼 수 없다. 2008년 4월 9일에 치러진 이 선거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승하고 취임한지 불과 1개월여 만에 치러진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허니문의 효과를 톡톡히 누려 153석을 획득했다. 그 외에도 이회창 주도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 등 미니 보수정당들도 의석을 획득하여 범보수/여권 의석수가 총 185석으로서 개헌선에 육박했다. 이때가 보수정당의 화양연화였다. 이후로 현재까지 보수정당은 단 한 번도 이 정도의 의석을 가져본 적이 없다.


4. 2020년(제21대) 총선 ; 문재인 대통령 재임 만 3년을 얼마 안 남긴 상태에서 치러진 총선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있었다. 사후적으로는 논란이 있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 주도 방역정책이 유효하다는 평이 대세였고 무엇보다 황교안 대표 주도 미래통합당의 상태가 심각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강을 건너는 중에 말을 갈아타지 않고 오히려 민주당에게 단일 정당이 총선에서 얻은 의석으로서는 민주화 이후 유례없는 의석(180석)을 주었다. 사실 1년 전이었던 2019년에 조국 사태 그리고 하노이 회담의 실패와 남북관계의 재경색 등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많이 하락한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팬데믹 상태에서 무난하게 대처하는데 성공하고 정치적 수혜를 받았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팬데믹이 아니라면 어쩌면 민주당이 최소한 다시 보수야당에 1당을 빼앗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았을까 싶다.


- 지금 생각해보면,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처음부터 민주당을 인정할 생각이 없긴 했다. 숨길 생각도 하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그건 매우 감정적이고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국정파트너’나 ‘협치’라는 도덕적 내지 규범적인 뉘앙스가 어느 정도 내재된 표현을 쓰지 않아도, 다 떠나서 국민의힘은 다수당은커녕 제1당조차 아니었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여당이었기 때문에 좋건 싫건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면 민주당과의 대화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마치 최종적인 역사의 승자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몸을 낮추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국회를 다그치고 압박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과반을 잃은 후 몸을 낮추는 모습이라도 보이고 다른 대통령들도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 대체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다.


- 그리고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대개의 경우 합의에 이르진 못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나름 여야 대표들과 많이 회담을 가졌다. 기본적인 태도도 지금의 회담 분위기보다는 점잖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건 그건 자유지만, 어쨌건 대통령으로서 무언가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국회를 움직여야 했고 국회를 움직이려면 민주당을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신념인지 감정인지가 그것을 철저하게 막은 것 같다.


-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국정의 책임자로서 당시 정국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져야 했던 건 맞다. 하지만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야당으로서 그다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 내내 민주당은 모든 책임을 오직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만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설령 이재명에 대한 공격이 정치적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해도 원칙을 지켜야 국민들이 민주당을 다시 본다. 하지만 이제 민주당은 국민이 아니라 당원과 강력한 지지자들을 본다.


-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하는 모든 행동들을 예외 없이 일괄적으로 어떤 악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처럼 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더라도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서 교착 상태로 오래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입법 절차와 협상 등은 이전과 같이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태도와 정치문화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인상을 202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받고 있다. 정치권은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정치의 영역을 잘 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법을 도구로 삼아서 극단적인 경우의 수까지 동원해 가면서 서로를 공격했다. 탄핵 정국 때가 그 정점이었다.


-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래 맨 처음에 계엄이 선포되었을 그 시점에는 그런 선택을 할 때까지 대통령을 통제하기는커녕 더 고개를 깊이 숙이고 허리를 굽히기만 한 간접적 책임은 있을지언정 직접적 책임까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국회가 아닌 당사로 갔던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후 탄핵 논의와 지금까지도 국민의힘은 근본적으로 헌정/국민의 안녕과 정당/진영의 이익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 모든 게임에는 한계가, 넘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다. 판을 깨려고 드는 것은 대표적인 넘을 수 없는 선이다. 계엄의 밤이 그랬다. 정치의 경우에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울 수 있다 쳐도, 정치 활동이 이루어지는 헌정 질서 자체에 위기가 온 건 객관적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걸 유발한 사람은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엄을 선포했건,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정치적으로 40년 가까이 간신히 쌓아 온 민주주의 질서를 정면으로 훼손하려고 한 시도였다. 그 정도가 되면 보수정당이 정말 지키려고 하는 게 정확히 뭔지를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측근 중에서도 계엄은 말도 안 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같이 물러서면 이번에야말로 다시는 회생할 수 없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정서가 탄핵 정국 당시 국민의힘 안에 팽배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계엄 이전에도 윤석열의 심각한 국정 무능과 실패에 대해 국민들은 이미 총선에서 심판을 내렸다. 그렇다면 위헌계엄을 정당화하기에 이른 정당은 어떻겠는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어느 한 편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 그건 정말 많이 심각한 것이다. 이건 과거의 독재 정권들을 옹호하고 긍정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윤상현 의원 말대로 언젠가 국민들이 ‘잊거나’ 아니면 최소한 민주당을 쳐내기 위해 국민의힘을 다시 쓰겠다고 한다 하더라도,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전체가 이 사안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가지 않고 또다시 윤석열 정권 때처럼 집권한다면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건 국민의힘에도, 국민에도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법적 판단은 이제 최소한 실익이 없다. 이 점만큼은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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