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생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대선을 지켜보는 생각

by 남재준

어제 대선토론과 이제까지의 선거운동을 종합적으로 보면 이재명 후보가 입체적ㆍ구체적으로 말하거나 답을 하지 못하고 단순화해서 말하거나 뭉뚱그려서 답하는 바람에 수세에 몰린 것이고, 이준석 후보는 비약적이고 단순화한 주장 즉 극단적인 논리를 전제하고 공세를 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재명 후보의 진짜 문제는 구체적이고 논란을 회피할 수 있게 말하는 정치ㆍ정책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본인이 강조하는 구조개혁(e.g. 유통구조개혁)의 과정에서 필요한 조정과 소통의 어려움을 예견하는 것일 수 있다.


또 사람들이 이재명을 공격적 추진형 리더로 생각하지만, 최근 몇 년의 당대표직 재임 과정에서의 정책의제관리(e.g. 당대표 시절의 선거제도, 금융투자소득세와 대선후보로서 개헌) 과정을 보면 결단력 없거나 국민 대표성 없는 일부에 휘둘리거나 입장을 갑자기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고, 최근의 대선 과정을 보면 앞서 언급했듯 정교하고 교묘한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떨어지는 면모가 있었다.


이러한 비일관성 등은 ‘야당’이라는 방패 뒤로 가려졌고 지금은 ‘대안 없음’이라는 방패 뒤로 가려져 있다.


‘호텔 경제학’ 비유와 ‘커피 원가 120원’ 발언은 모두 이재명 후보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 크게 드러나 보이는 경우들이다.


요컨대 취지는 일리가 있으나 그 취지를 이재명 후보가 (정책적으로) 조리 있게, (정치적으로) 논란은 없게 전달하지 못했다.


호텔 경제학 비유는 케인지안적 승수효과의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취지는 비유 자체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일리가 있으나, 문제는 재정 여력의 한계와 견고한 재정 전략의 부재(역대급의 수요-공급 양 측면의 대대적 확대재정을 공약했으나 지출조정이나 세수 증가분에만 의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에 있다.


즉, 기본적으로 우리 재정이 (OECD, IMF, 세계은행이 권고하듯) 전략적 재정 투자와 재정준칙 및 건전재정의 지향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으나 이재명 후보는 막대한 투자 구상과 빈곤한 재원 확보 전략을 보였다.

커피 120원 비유는 유통구조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문제는 언뜻 들으면 마진을 두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되게 하여 일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까지 비윤리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것처럼 들리게 만들어 그들의 노여움을 샀고 정적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었다는 점이다. (이재명이라는 지도자가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정치적으로 과감하지도 능란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고 본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 감소를 수반하지 않고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다소 모호하게 답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재명 후보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다.


일자리라는 것이 여러 종류가 있고 또 미시와 거시 차원이 다르다.

예컨대 한 기업의 차원에서 보면 정년이 늘면 기존에 있던 사람이 더 오래 있게 되긴 하겠지만 그 반대가 된다고 해서 청년 신입을 더 뽑게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인사 채용이 일단 신입은 외부 채용하지만 일단 입사 후에 중견급은 업계 내부 채용하는 문화이므로 어떻게 보면 세대 기준으로는 정년 연장과 신입 채용은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정년 연장되면 비용 부담이 증가하니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 채용 규모 확대에 있어 마이너스 요인이 는다고 볼 수는 있겠는데, 이는 미스매칭 문제 해소 통한 수요 업계 인력 수급 개선이나 고용 확대 기업 지원 등 플러스 요인을 늘리는 정책수단을 동원해서 해결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이재명 후보 답변이 다소 모호하긴 해도 이준석 후보 공세를 그냥 눙친 것까지는 아니고 더 따져보면 일리가 있기도 하다.


주4일제 도입이 임금 감소를 수반하지 않고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4일제 도입을 하면서 가계와 기업의 다른 비용 부담(예컨대 세제 혜택, 생산성 향상 위한 AI 인프라 도입 지원 등)을 정책적으로 줄여주는 방향으로 임금 감소 효과를 완화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결국 임금 감소가 불가피할 수 있으나, 이는 과거 참여정부 때의 주5일제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피로사회 탈출이라는 대의를 전제하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는 방향이다.


노동조합법 개정에 관하여서는, 단결권 보장과 부당노동행위 규제를 강화하고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 등의 노동조합 결성을 용이하게 하는 방향이 맞다.


윤석열 정부 말기에 국민의힘에서 '노동약자'지원법안을 내 근로자이음센터 등 국가 차원에서 노동자 권익 보호와 분쟁 조정 등을 담당케 하겠다는 대안을 내기는 했었다.


문제는 그 정도로 실효적 지원이 되겠느냐 나아가 국가의 의지에 따라 지원 정도도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것이고, 또 노동자들을 국가의 시혜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의문도 든다는 점이다.


현장의 고통을 겪는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단결하여 상호 연대할 뿐만 아니라 제도권에까지 목소리를 내 제도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로의존성 때문에 한 번 단행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완전히 되돌리기 어려운데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등은 이미 노사관계에서 열세인 것도 모자라 노동시장 내부의 계층화로 이중으로 열세인 상태에 있다.


그런 마당에 서비스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감정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 등의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져 가고 있으며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가 사람보다 우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해야 정규직 노동자에게 약간의 실효적 도움을 덧대는 수준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와 권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성의도 실효성도 없는 대책이며 막연한 노조 혐오에 기초하고 있다.

생산자, 공급자들은 완전경쟁시장 하의 평등하고 동질한 존재들이 아니고 강약과 대소의 차이가 있으며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는데다 심지어 아웃소싱 관계까지 있는데 노동자들은 기초적인 노동조합 결성(단결)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중잣대이다.


최소한 자기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 나라 국민의 태반이 불안정노동자로서 생계를 영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권 보장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호주의 전 총리(2007-2010, 2013)이자 노동당 대표였던 케빈 러드는 2006년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시장 개혁에 관해서는, 우리(노동당)와 존 하워드(자유당)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 존 하워드는 노동을 단지 다른 경제적 상품과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실로 노동이 사람으로 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들은 내적 존엄성을 지닌 인간들입니다. 직장에 출근할 때, 그들은 단지 통나무 한 토막이나 석탄 한 조각이 아니라 인간들이고, 내재된 권리를 지닌 사람들로서 제대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교에 관하여서도, 이재명 후보가 별생각 없이 그냥 말한 것 같기는 하지만 말 자체로만 보면 ‘대만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가면 된다고도 하였는데 이는 대만을 사실상 패싱하고 중국과의 관계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덜 친중적’이라고 보일 여지도 없지 않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재명, 문재인을 막론하고 민주당의 지론은 ‘우리가 직결되지 않은 대외 문제에 깊이 관여해서 득 될 것이 없다.’, ‘우리에게 득이 된다면 체제의 차이 때문에 멀리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고, 애초에 ‘친기업-반기업’, ‘친북-반북’, ‘친중-반중’, ‘친일-반일’ 등 ‘친X-반X’의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특히나 외교에서 어떻게 ‘친’과 ‘반’이 무 자르듯 나누어지겠는가?


더구나 북방외교로 공산당 치하 중국과 수교한 것은 노태우 정부 때였고, 박근혜 정부 때에도 사드 배치 이전까지는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여해 서구의 눈총을 받는 일도 있었다.


북한에 대해서도, 물론 구체적 사안에서 북한에 대해 보수 정권이 더 강경한 건 사실이지만 박정희 정부 이래 모든 정권이 기본적으로 평화통일과 대북 대화 제의는 계속해 온 것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인터뷰에서 언급했둣, 모든 역대 정권의 정책들은 상당 부분 성향을 막론하고 계승-발전된 부분들이 있다.


이것을 주체가 민주당 정권이냐, 보수 정권이냐에 따라 당부를 가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중국은 우리와 사회문화적, 경제적 교류 관계가 깊고 또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상당수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신냉전 국면으로 들어갔다 하여 당장 우리가 중국에 대서기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AI와 관련하여서는, 이재명 후보의 ‘모두의 AI’ 공약이 있었는데 이것의 목표는 대개 2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데이터 주권의 구축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 진흥을 통한 경제에의 기여이다.


그런데 AI에 대한 접근성과 공적 활용을 늘리는 자체 AI를 지니고 싶다면 오픈소스 기반 LLM을 민관협력을 통해 튜닝(미세조정), 커스터마이징하거나 공동 플랫폼화하는 방식이 더 나을 것 같다.


맨바닥부터 AI 모델을 스스로 개발하겠다는 것은 ‘국산’에 집착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구태여 그럴 이유는 최초의 목표를 튜닝 등의 대안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는 한 없다고 본다.

더 거시적 맥락에서 AI 공약은 이재명 후보의 1순위 공약이며 핵심 정책 이니셔티브인데, 나는 이것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이재명주의’, ‘이재명노믹스’에 도전하고 싶다.


AI 산업과 인프라가 확대되면 그것을 ‘사용’하는 재교육은 필요할 것이고 거기에는 쉽게 적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AI 인프라 그 자체가 자동화로 인해 고용을 축소할 것이고, AI 산업 자체의 인력은 재교육 정도로는 쉽게 공급되는 것이 아닐 것 같다.


또한 AI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수지를 생각할 때 결국에는 고용이 위축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이 만성화되는 상황에서 아예 ‘자동화’와 ‘노동의 장기적 소멸’이 우리를 덮칠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가계의 입장에서 ‘노동-분배-소비’의 연쇄 고리가 절단될 것임을 의미한다.


성장이 노동수요를 자극하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분배가 이루어지고 소비와 소득이 진작되는 모델이 성립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가 대대적으로 변동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치권의 식견은 ‘경제 살리기 = 산업 지원하기 = 고용 증가’ 등의 산업화 시대의 선형적 단순 도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노골적인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이준석 후보가 적어도 ‘국가 주도 산업 기획’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만큼은 옳았다.


결국 성장과 고용과 분배가 서로 선순환하는 것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과 성장에 안 그래도 한정된 재원을 퍼붓는다고 해서 민생 개선에 직결될 확률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실은 지금 필요한 공공정책은 AI 투자보다는 '사람에 대한 투자'이다.


전공-산업 미스매칭 문제 해소, 각자의 역량과 재능의 계발과 발휘 등을 통해 ‘혁신을 주도할 인적자본 양성을 위한 토양 만들기’를 하기 위해 교육과정과 교육평가 등의 근본적 구조개혁 등 청년ㆍ미래 세대의 대비 위한 교육혁신이 중요하다고 본다.


또 수요가 절실하나 대우가 박하고 공급이 적은 돌봄 등 사회서비스 노동자 등 처우와 다방면으로 이외에도 노동이 요구되는 분야들의 고용 여건을 균형적으로 개선하고 사회보장을 강화하며 증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한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산업은 민간이 스스로 답을 찾고 만들며 위기 때마다 관치에 의존하려 들지 않는 자생력을 키워야 할 것이고 공공은 민생-지속가능성-안정성을 우선해야 한다. (말하자면 기능적 차원의 정경의 건강한 거리 유지)


산업의 흐름과 그에 따른 노동수요의 총량이나 부문별 수급 등을 종합적으로 봐 가면서 공급이 부족하지만 사회적 수요나 국가적 필요 등은 있는 부문 지원이나 전체적인 사회보장을 강화해야지 국가가 선제적ㆍ기획적으로 뭘 하겠다는 건 재정 여건상으로나 볼륨이 높아진 복잡한 사회ㆍ경제의 현실에 비추어서나 부적절하다.


큰 정부도 작은 정부도 아닌 최적ㆍ적정(Optimal)정부가 대안인 이유이다.


결국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와 '구조개혁'이 핵심 국정과제가 되어야 한다.


포퓰리즘적이고 진영 다툼에 함몰된 정치문화와 필요한 중장기적 구조개혁을 도외시한 채 감정적인 아노미에 싸여있는 사회ㆍ경제를 일신해야 한다고 본다.


뚜렷한 국가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은 현실과 괴리된 이념ㆍ프레임ㆍ진영 전쟁이 크고, 이는 정책실행력ㆍ국정운영능력 등의 차원에서 대체로 정책적 식견이 남다른 일본 자민당 정치인 등과 매우 크게 차이가 난다.


정치가, 행정가라는 말은 있어도 ‘정책가’라는 말은 없는데, 이젠 이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정책통’ 대통령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탄핵심판 결정 선고 이후 60% 이상의 직장인들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개선되겠지만 일터의 민주주의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민생과 정책에 집중하여 중장기적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참여에서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는 성숙한 숙의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와 정치는 삶을 지키는 힘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미래와 희망이 있다.

경제 재생이 ‘사람’에게서 시작된다고 한 2016년 일본 민진당의 표어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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