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문과로 입학해 공대 졸업"…졸업전공 선택제 첫 실험 : 네이트 뉴스
전체적으로 융합전공이나 무(無)전공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문 생태계 보호’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현재 대입은 사실상 종합스펙평가(수시)와 지능검사(정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러한 흐름이 더 강화될 것이다(e.g. 탐구 영역의 통합사회-통합과학으로의 통합과 국어-수학 중심 강화).
이제까지 인문학이나 일부 사회과학 등은 학벌 때문에 버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전공 자체는 취업에 불리하니까 택하지 않을 것인데 학벌 때문에 해당 학과를 택하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의미이다. 실은 학벌을 보고 들어와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가는 학생이나, 이과가 ‘문과 침공’을 해서 들어오는 학생이 많았다.
인문사회 분야는 독자적 보호가 필요한데 무전공제는 종합스펙평가와 지능검사 등의 방향으로 더욱 입시를 추동한다. 결과적으로는 인문사회 분야를 ‘통로 학과’로 만들어 버리고 공학이나 경영학과 같은 인기 학과 쏠림 현상만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흐름은 고교학점제 도입과도 그다지 맞지 않다. 고교학점제의 큰 방향은 타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고교 교육과정에서는 입시가 최대 변수가 되므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반드시 입시 개혁이 수반돠지 않으면 안 된다.
실은 고교학점제도 문제가 있긴 하다. 정확히 말하면 2015 개정 교육과정 때부터 본격화된 ‘통합’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통’과 ‘통합’을 헷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고1 과목인 통합사회나 통합과학은 공통과목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내용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그렇다고 진정한 의미의 통합 과목이라고 보기에는 학생들이 아직 각 분야를 잘 모르고 이전의 공통사회/공통과학 교사도 별로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결국 합쳐져 있는 각 분과를 다시 쪼개서 가르칠 수밖에 없게 되는 현상도 생긴다.
또 설령 어떻게든 통합을 한다고 치더라도, 그걸 고1 과정에서 개설한다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중학교 수준의 각 분과 지식을 가진 학생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고등학교 수준의 각 분과 지식을 가진 학생들이 제대로 창의적/통합적 사고를 하기에 유리하다. 즉 통합 과목은 고3에 개설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공통이란 선택 교육과정에 들어가기 전 각 분과의 기초 소양을 다지는 것이고, 통합이란 이수한 선택 교육과정의 과목 내용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거나 탐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상 통합사회, 통합과학은 1학년에 개설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다가 2028년 개편 수능은 사회, 과학 각 탐구 영역을 하나로 합쳐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필수 과목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1학년 과목이다. 그러면 이 과목들의 성격을 당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해당 과목들은 종래의 객관식 시험용보다 탐구용으로 설계되었다. 이 과목들을 수능 과목으로 만들면 내용이 어정쩡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한국사 보다는 조금 더 유의미한 약간 쉬운 과목 정도로 전락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고등교육(대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현재의 입시는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식이 되어 있는데, 고교 수준의 제너럴리스트가 대학 정확히 학부 수준에서 바로 무슨 ‘통합형’ 사고를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또 학부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는 각 분야에서의 기본적인 전공 지식들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통합형이 더 강화되면 결국 이도저도 아닌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학벌-취업이 서로 연계된 시스템은 결국 대학을 망가뜨린다. 왜냐하면 대학은 여러 학문이 공존하는 생태계여야 하고 통합형 전공이라는 것도 그래야만 유의미하지만, 현재 대학은 취업을 위한 스펙이 되는 학벌/학위를 위한 곳에 가깝기 때문이다. 21세기로 들어와서 ‘지식정보사회, 세계화와 경쟁에 적응’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대학을 기업의 수요에 부응하도록 강제로 구조개혁을 해 버렸는데 실은 그건 오히려 그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자해에 가까운 행위였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First Mover가 되려면 소프트파워가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인, 인문사회 전공자, 경우에 따라 자연과학 전공자 등은 제대로 역량도 기도 펴고 살아가기 어렵다. 사회문화적 토양이 견실해야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우수한 연구자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되며, 이것이 결국에는 사회발전ㆍ경제혁신을 위한 기반도 된다. 창의력은 교육과정이나 전공 같은 제도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다. 어떤 생태계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느냐가 인재 양성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2028 대입은 적어도 인문사회 분야 등 ‘보호 대상’ 학과들에 대해서는 전공적합성을 보다 엄격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는 고교학점제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고교에서 비인기 과목이라 하더라도 입시에서 중요하게 보는 과목이면 개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설령 통합/융합전공제나 무전공제 등을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치더라도, 현행 시스템의 흐름은 과거나 현재나 전공 관심자이면서 다른 영역에서 불리한 이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예전에 정시 위주일 때 상위대학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수학이 결정적 변수가 되어 버린 경우들, 지금 학생부종합으로 같은 곳을 지망하려면 국어과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지금이라고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결국 ‘대학수학능력’이라는 모호한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더 범용이 되는 스펙 구성과 수능의 지능검사화로 치닫고 있다.
(차라리 수능 자체를 전공적합성을 보는 어려운 시험으로 바꾸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국어국문학과에 가려면 어려운 국어 시험을 통과하도록 하는 게 차라리 합리적이다.)
전공 관심자이면서 다른 영역에서 불리한 이들을 가려 뽑아야 한다. 실제 사회에 필요한 건 오히려 각 분야에 특화된 인재들이다. 시험제도가 전반적으로 통합/적성 등의 명분으로 그럴듯하게 전환되는 흐름에 있지만, 경쟁 현실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사실상 지능이나 범용 스펙이 강한 사람을 뽑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무전공으로 가는 흐름을 최소한 인문사회 일부 학과나 경우에 따라 자연과학 일부 학과 등에서는 배제해야 한다. 다시 말해 ‘보호 대상’ 학과로서 그 학과로 입학하는 경우 완전히 다른 과로 옮기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해당 학과들은 극약 처방으로 같은 보호 대상 학과를 복전하지 않는 한(e.g. 일어일문+역사), 복전을 제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이유는 다음 문단에서 후술한다.
내 견해를 두고 조기 진로 선택이 아니냐는 말도 있을 수 있는데, 어차피 어느 순간에는 방향을 정해야 맞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교육은 방향을 정하는 시기가 너무 늦다. 고등학교 때에는 최소한 진로에 대한 고민과 시도를 폭넓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 애초에 어느 시점에 정하건 진로 선택은 항상 고정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상대적으로 상위권의 경우 정작 대학 입학 전까지는 고도로 제약된 조건에서 사실상 특정 목표(e.g. 최대한 상위 대학)를 위해 경쟁하는 것에 모든 집중이 쏠려 있다. 그러니 학생이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진로를 제대로 고민해 볼 시간도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일단 학벌만 보고 무조건 들어간 뒤에 다시 취업 등에 유리한 전공으로 전과나 복수전공(사실 이 경우도 결국 주전공인 학과의 방향(십중팔구는 연구일 수밖에 없다)으로 진로 설정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므로 주전공을 유지해도 의미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보호 대상 학과들은 복전도 제한하는 극약 처방을 생각해야 한다.) 등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 N수/편입 등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교수들을 비롯한 학계에서는 양질의 연구자는커녕 최소한의 후진 양성조차 어렵다는 한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본인들이 방임하거나 심지어 기여한 탓도 크다. 후진 양성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사회 분야 등의 연구자로 크기를 원하는 ‘떡잎’들을 제대로 가려 뽑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문화, 인프라, 구조, 제도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을 위해서 학계 내부에서 서로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