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공공 영역에 있으면 안 되는 유형의 사람들

by 남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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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일론 머스크에 이제는 이자까지. 엘리트, 지능, 능력, 효율성 이런 것이 주가 된 정치와 사회가 될 때 얼마나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올 지를 보여준다. 이 사람들은 국회나 정부가 아니라 기업에만 있어야 한다. 사실 기업에 있어도 끔찍한 자들이지만. 이런 자들이 정치를 주도하면 결국 게임에나 등장하는 기괴한 Corporatocracy(기업통치)나 Technocracy(이공계 기술자의 통치)가 되고 말 것이다. 뭘 위한 효율이고 뭘 위한 능력인가? 무식하고 공허하며 엘리트ㆍ재계 등 끝난 게임의 승자에게만 좋은 자유를 부르짖는 미국화(Americanization)가 덮칠까 두렵다.

사람의 복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용으로 재단하고, 정치를 무슨 토론대회 쯤으로 생각하고, 말 같지 않은 기술적인 용어들을 남발하면서 전문가적 권위를 어필한다. 자기들이 이런 통치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좀 되어보고나 설쳤으면 좋겠다. 이공계나 상경계만 전공한 사람들은 예외가 아닌 한 그것만 가지고 정치를 시키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특히 저런 유의 자들은 더더욱. 이공계 출신 정치인은 꼭 사회에 대한 지식과 개념적 문법 등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정치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사회성(외향성이 아니다)조차 부족하거나 둘 다이다. 정치의 생활화와 기독교 윤리 등이 자리 잡은 유럽에서의 예외들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그렇다.

단순히 공감의 결여 수준이 아니라 도대체 교육제도라는 것이 뭘 길러내고 있는 건지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사회성(외향성과는 다름)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엘리트들이 차고 넘친다.

미국의 어떤 리버럴 엘리트들은 오늘날 반지성주의나 포퓰리즘 등의 기원 중 하나를 1952년 미국 대선에서 '보통 사람' 아이젠하워와 '지성인' 스티븐슨의 대결에서 전자가 압승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단다. 나는 전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아이젠하워의 편이다.

보통 사람의 감각과 고통, 그리고 그 아래에서의 현실적인 선택들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내가 볼 때, 정치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와 현명의 문제이다. 그리고 정치는 산업 혁신의 논리가 아니라 안정과 지지와 규범의 논리로 움직여야 한다.

저런 인간들도 그 잘난 경쟁과 능력 중심의 신자유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서무를 하는데 야근을 하더라도 피로가 심한데, 하물며 기본적인 업무 시간이 야간이면 수면 패턴이 뒤집히고 정상적인 생활이 더 힘들어진다는 건 멜라토닌이니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평소에는 주간인데 일시적으로 야간인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야간인 것은 차원이 다를 건데, 체험식으로 그걸 좀 해봤다고 누적적 효과의 여부까지 체감할 수 있다는 건가?

새벽배송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새벽배송 노동자 중 일부가 이걸 유지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해도, 객관적 해악과 주관적 수용은 다르다. 주어진 조건 하에서 수면보다 소득이 더 효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선택한다고 해서 그게 바로 공적 차원에서 전부 정당화되지는 못한다.

저 정도면 거의 고의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시비를 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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