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을 한계까지 옹호하는 사람들은 공공재나 요금재의 영역에서 까지도 '선택의 자유'를 강조한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전기나 보건서비스 등의 필수재들은 그 자체로는 차별성이 없다.
무슨 브랜드나 그런 것의 차별성이 있다고도 보기 어려우므로 독점적 경쟁이라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그것들의 공급 주체가 증가하면, 소비자 입장에선 딱히 효용이 무차별한 재화나 서비스를 선택하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에는 복수의 공급 주체가 있으면 비용이 제일 낮은 쪽을 고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공공재나 요금재 중 상당수가 기본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들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독점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점 정도는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적 차원에서 볼 때, 그런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시장 원리로 운영하는 것의 실익이 정확히 무엇인가?
게다가 오히려 소비자에게 나쁜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처럼 민영 건강보험 시장을 위주로 하고 고령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잔여적 복지(Medicare, Medicaid) 시스템으로 한다고 하면 중하층과 저소득층 가계의 입장에선 보통 최대한 비용 부담이 덜한 것을 고르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건강보험 자체를 생각도 못 하게 된다.
호구지책이 더 급하거나 한 판국에, 당장 건강이 크게 이상이 없다면 건강보험까지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화당 온건파에서 제시한 안의 하나처럼 비과세 계좌 같은 것을 따로 만들어 의료용 저축을 하도록 하자고 해도, 그렇게 할만한 여유나 동기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또 건강보험이 만약 포괄적이지 않고 선택적이거나 저가 의료보험을 이용하거나 할 수 있다면 일단 비용 측면에선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국민의 건강권 보장 구현이라는 건강보장 개혁의 관점에서 볼 때, 보험료가 낮으면 보험금도 낮은 게 상식일 것이고 바로 그 점이 공적 건강보장 확대론의 문제 의식이다.
노동이나 보건 등의 영역에서의 규제나 보조 등은 결국 개인의 입장에서 합리적이지만 공적 차원에서는 부적절한 경우들을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자는 데에 취지가 있다.
오바마케어의 경우, 이미 그 설계가 보조를 본위로 해서 계층별로 다시 말해 민영 건강보험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사정에 따라 보조의 정도에 차등을 둔다.
그렇다면 거기서 다시 또 약화하는 경우 경계선에 모호하게 걸쳐 있는 사람들의 건강보장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현행의 잔여적 복지 체계와 거의 차이 없는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상당하다.
또 포괄적 건강보장을 하지 않는 경우, 질환별로 건강보험을 두면 그걸 일일이 따져야 하는 소비자들의 불편과 비용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보장성 확대가 매우 제한적일 것인데 그러면 역시 건강보장 개혁의 취지가 몰각된다.
물론 공적 건강보험은 필연적으로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된다.
재정 부담이 큰 건 기본이고, 의료계 입장에서는 이윤이 통제되므로 인력 공급 등의 차원에서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며 결국 Waiting list 같은 문제도 생길 수 있다.
특히 공적 건강보험을 넘어 의료 자체를 아예 국영화하는 경우에 이런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최악보다 차악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