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인은 퇴장한다

by 남재준

Prime Minister Wilson Tells the Queen He Has Alzheimer’s | The Crown (Jason Watkins, Olivia Colman)


The Iron Lady breakdown, The Crown S04xE010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마거릿 대처에 이어 존 메이저가 이끌어 4연속(대처가 1979, 1983, 1987, 메이저가 1992)으로 승리하며 18년 간 이어진 보수당 내각이 붕괴했다.


보수당은 1832년 이후 최저 득표율을 기록했다.


버킹엄 궁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사임을 보고하는 면담을 하러 가면서 메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막이 내리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고 이것이 제가 지금 하려는 일입니다.'


모든 민주정치체제의 정치인은 올라갔으므로 필연적으로 내려온다.


문제는 그 '내려옴의 드라마'가 어떤 흐름인가 하는 것이다.


해럴드 윌슨은 1974년 소수여당으로 간신히 재집권한 그 해에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해럴드 윌슨은 노동당 대표로서 1964년에 1951년 윈스턴 처칠의 재집권에서 시작되어 13년 간 지속(처칠-이든-맥밀런(-더글라스흄))된 보수당 내각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했다. 그러나 근소한 과반이어서 1966년에 다시 총선을 치러 압승하고, 1970년에 에드워드 히스의 보수당에 예상치 못하게 패배할 때까지 집권했다. 1974년 2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노동당은 제1당이 되었으나 어느 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고(Hung parliament), 결국 노동당이 소수여당으로 재집권했다가 그해 10월 총선에서 과반에서 정확히 1석을 더 얻었다. 윌슨은 전후 영국정치에서 유일하게 연임이 아닌 중임을 했다.)


'그간 이 경주로를 너무나 많이 돌아와서 이제는 단 하나의 허들을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조차 더는 열정이 없다.'


그는 2년 뒤인 1976년에 사임했다.


제프리 하우 경의 사임 연설로 인해 촉발된 보수당 당수 경선과 뒤이은 마거릿 대처의 사임을 두고, 후일 대처의 측근이었던 버나드 잉햄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끝난(대처의 사임) 후에 어땠느냐는 질문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죠. 그러나 토니 블레어의 사임은 대처의 그것과는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브라운이 블레어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라크 전쟁이 있었지만요. 하지만 대처 여사는 뒤에서 칼을 맞았습니다(Stabbed in the back). 자신의 당에 의해서요. 그녀 스스로가 언급했듯, 하원이나 국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게 한으로 남았습니다.'


전후 영국 총리 중 10년 이상 재임한 총리는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만 11년)와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만 10년) 단 둘이다.


블레어는 대처를 흥미로워하고 일정 부분 닮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기본적인 사회관이 매우 달랐다.


대처는 '사회 같은 것은 없고 개인만 존재한다'라고 주장한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였지만, 블레어는 '개인은 관계 속에서만 정의된다'라고 주장한 공동체주의자(Communitarian)였다.


다만 그는 대처가 단행한 80년대의 대대적인 공급 측면 경제구조개혁은 필요한 것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수요 측면의 일방적 복지국가 축소에는 반대했고, 생산적 복지라는 조건부긴 했어도 블레어 시기 수요 측면 사회보장 팽창은 결국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이 보수주의에 포용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했다.


블레어는 대처를 일정 부분 따라했고, 다시 캐머런이 블레어를 일정 부분 따라했다.


그러니까 보수당이 노동당에, 다시 노동당이 보수당에 영향을 준 셈이다.


사적으로 블레어는 대처를 두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Unhinged)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대처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굉장히 강박적인 면이 있었던 건 맞아 보인다.


그녀는 감정의 연약한 부분을 숨기기 위해서 온 힘을 다했다.


대처에게 온정적이건 적대적이건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이 평가에 동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블레어도 이라크 전쟁 등에서 보인 '정치인 신드롬(Statesman syndrome, 강박에 가까운 정치인으로서의 신념이나 사명감)'을 보면 대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대처와 달리 블레어 내각은 시작부터 사실상 블레어-브라운의 공동 내각이었고, 블레어는 고든 브라운의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상당히 음주에 의존했다.


결혼과 비슷했다고 주위인들은 말한다.


말하자면 '서로 죽일 듯이 밉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관계를 끝낼 수도 없는 관계' 같은 것이었다.


부모가 이혼하면 자식이 보호막을 잃는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 나면 노동당은 끝이었다. (실제로 2007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2010년에 그렇게 되었다)


대강 재임 5년 차 즈음이었던 2003년에 블레어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느끼고 병원에 내원했고, 발작성 심실상성 빈맥(Supraventricular tachycardia)으로 진단을 받았다.


이 질환의 원인에는 스트레스, 정신적 긴장, 과음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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