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이의'가 없는 민주당

by 남재준

https://www.munhwa.com/article/11559594?fbclid=IwY2xjawPRYtxleHRuA2FlbQIxMQBzcnRjBmFwcF9pZAwzNTA2ODU1MzE3MjgAAR6XEaxI4F6Qq553nrHAq_gC0EMe1bKPs7jOEYFgmAl9V4Y-PTdvOdZbvbm4Ow_aem_iwwReYLemGIachJSFBRYSg

민주당 정치인-당원-지지층의 핵심적인 문제는, 노무현 정신 중에 가장 중요한 성찰과 피드백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자율과 토론이 요구됨은 당연지사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종료 이후 투쟁 서사에 매몰되고 이재명에 대해 거의 광신적으로 옹위하느라, 정작 2017-2022 5년 동안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복합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없었다. 대선백서조차 제대로 주목 받지 못했으니.

원내대표 한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한병도 의원이 계파 색이 옅다고는 하지만, 지금 민주당에 있는 제22대 국회의원들 그리고 대개의 지역위원장들 등은 거의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공범, 종범 내지 방조범이다.

문재인을 포함해 친노-친문의 문제는, 너무 공동체 정신이나 자기들과 함께 하거나 하는 모든 이들을 선하게만 보거나 아니면 '동지' 의식이 과해서 공사 구분을 못 한다는 점에 있다. 금태섭에게 사과를 요구했던 황희 등이 과연 친문 전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홀로 나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부패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식의 정치문화 자체를 근절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그래도 거국적으로 보면 이들이 포퓰리즘과 선동이 핵심 정체성인 현 민주당의 '순도 100%' 주류인 친명보다는 낫다.

[그러면서 “돈을 주고 공천을 받는 것은 민주당 생활하면서 굉장히 낯선 일”이라며 “17대(국회) 이전에는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혁명적인 변화로 단절이 됐는데 논란이 돼 당혹스럽다”고 덧붙였다.]


******


모든 것에는 허와 실이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나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그냥 그렇다고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아주 흔한 말처럼,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본적으로 승자가 권력을 잡은 시점에서의 사료들은 어디까지나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 것이다.

여기서 ‘입장’이라 함은, 단지 가치판단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과 사실관계의 영역도 함께 놓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맹위를 떨친 승자들은 올라오면 항상 내려와야 한다.

보통 전근대에는 (어떤 형태로건) 대체로 죽음이 많았겠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여러 사유로 인한 퇴임이 될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역사는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오늘날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현재 민주당이 비교적 ‘조용’한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이에 대한 최소한 현재의 다수의견처럼 ‘보이는 것’의 이해는 다음과 같다.

이재명이 자신을 ‘악마화’하는 반대파를 ‘극복’하고 탄핵 정국을 주도하며 나아가서는 두 번째 도전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거기다 이재명은 구주류의 대부분을 무난하게 흡수하고, 직접 총선 승리와 계엄 해제를 주재하고, 나아가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실용적이고 정말 상식이 없지 않은 한 예찬할 수밖에 없는’ 국정운영 – 성과 중심의 국정, ‘어리석고 강경한’ 보수 세력에 대해서도 손을 내미는(이 부분에 대해선 의견이 약간 갈리지만, 유의미한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다) 정무 - 을 하고 있다.

헌정사상 최악의 지도자가 일찍부터 자기 자신을 ‘계엄’이라는 파탄으로 몰아갈 것을 예견까지 했다.

이재명은 또한 이전의 민주당 지도자들과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노동의 고됨을 알고 장애까지 입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인이 되고 사회에 헌신하기까지 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되어서는 추진력 있게 일을 밀어붙여 성과를 냈고 지방분권의 심화에 기여했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명’비어천가가 따로 없다.

대체로 실체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봐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민주당이 조용한 건 실제로 자율적 통합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박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박멸’은 단순히 반대파를 몰아냈다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그 후로도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아닌데 다른 목소리 비스무리한 것만 나와도 싹을 밟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의미이다.

민주당에서 소위 당원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점과 이재명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이재명이 매우 강경하고 관용이 전혀 없는 리더라는 점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이재명이 자신을 ‘악마화’하는 반대파를 ‘극복’하고 두 번째 도전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궤적을 놓고 보면, 이재명과 문재인은 닮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적 성향만 다른 게 아니라 처한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

문재인과 이재명은 각자 비문과 비명을 마주하고 있을 때의 상황이 확연히 달랐다.

비문과 비명이 각각 문과 명에 대한 비판이라는 입장 말고는 뚜렷하고 뭉치는 공통분모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계파적 결속력 같은 것의 차원에서 보면, 비명은 비문에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일단 친노-친문과 친명을 비교해보면, 실질적으로 친노-친문이 당권을 잡은 기간은 참여정부 이후 얼마 되지 않으며 패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은 문재인 정부 일부 기간에 한정된다.

패권이라는 것이 당내에서 함부로 주류 계파에 비판을 하지 못하고, 다른 계파나 대권주자가 존재감이 없으며, 총선 공천 등도 독식하디시피 하는 경우 등을 의미한다면 그렇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에 패배한 이후 안철수와 단일화하고 이정희가 사퇴했음에도 결국 박근혜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있었다.

또 문재인은 본래도 ‘권력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평이 있기도 했는데, 애초에 친문이라는 계파의 흐름이 독자적으로 언급되고 주목받기 시작한 건 그가 정치에 투신한 지 5년 정도는 지난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전에는 친노의 수장 정도로만 불렸으니 독자적 권위라는 것이 애매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친노라는 정치인, 지지층의 넓은 네트워크의 노드'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여러 이유로 문재인은 2015년에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가 될 때까지 몇 년간 그냥 평의원으로 있었다.

그리고 친노는 ‘폐족’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몇 년간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민주당(2008-2011)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참여한 흐름, 국민참여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참여한 흐름, 정당정치 밖의 시민사회에서 상황을 지켜보거나 비판하는 등의 흐름에 참여한 흐름 등으로 뿔뿔이 나뉘어 있었다.

‘박정희의 후계자’라는 점이 항상 후광 내지 정치자본으로 작용했던 박근혜와 달리, 비교적 최근의 그리고 반골 소수파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점은 저주이면서 동시에 축복이라는 정도의 평가만 가능했다.

노 대통령 재임기의 경우에도 고육지책이었던 대북송금특검이나 새천년민주당 분당 등의 이유로 이미 동교동계에선 원한을 품고 있었고 그 때에도 왕수석이니 부산 정권이니 하는 말들이 나왔었으며 견제를 받았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친노-친문은 존속기간 대부분을 견제를 받았다는 객관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에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이 합당하면서 친노가 좀 더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고 한명숙과 이해찬 등이 당대표로 문재인이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간은 매우 짧았고, 또 2012년 총선 공천은 친노가 장악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대체로 범친노라는 느슨한 네트워크가 2011년 이후로 민주당계 정당 안에서 86세대와 김근태계 등과 합쳐져서 제일 앞서는 이니셔티브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어떤 가시적 영향력이나 심지어 ‘패권’을 가졌느냐 하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이 전면에 나서 당대표로서 재임한 기간은 2015년 2월에서 2015년 12월 정도까지로 1년 남짓이었다.

그 기간에 나름대로 믿는 구석(지지 기반 등)이 있고 또 오래전 새천년민주당 분당 때부터 미묘한 앙심이 있었던 호남계와 문재인에게 양보해야 했고 민주당에 들어와서 김한길과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의 역할이 있었지만 별다른 가시적인 양상이 없었단 안철수가 힘을 합쳐 초장부터 파상공세를 펼쳤다.

재임기 동안 문재인은 재보궐선거 패배, 단지 내용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위험했던 조기 당 대표 경선 요구 등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재인은 재신임투표, 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 체제 등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분당 전까지 민주당계 정당은 기본적으로 여러 서로 다른 정파들이 족벌 비슷하게 나뉘어 각기 지분을 가지고 느슨한 이념과 보수 진영에의 반대라는 대의에 따라 합쳐진 정당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지금까지도 계속 부정적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정당의 본령인 선거 승리에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다.

사실 응집력이 강하면 파괴력이 있을 수는 있어도 내부의 구성원에 대한 압력이 강해지고 무엇보다 피드백이 약해져서 자정이나 변화의 추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극단적으로는 어떻게 추락하는지도 모르게 함께 추락한다.

반대로 빅 텐트로 여러 주체들이 함께 있으면 병존에서 공존으로 가면서 동시에 이를 유지하는 난이도가 상당하지만 그래도 백가쟁명은 가능하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패배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여러 의견이 병존하는 게 그 당이 정국 및 사회변동이나 시대 변화 등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문 중에서도 국민의당(2016-2018)을 보면, 최소한 독자 세력으로 상당 기간 버틸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안철수라는 대권주자, 박지원/정동영/천정배/주승용 등 호남의 맹주가 되는 중진들,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 등.

국민의당이나 진보정당의 경우를 보면, 정당이 살아남는 건 꼭 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조건을 갖추는 경우 작지만 파괴력이나 존재감이 강한 캐스팅 보터나 주류 정당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명은 어떠했는가?

이미 안희정, 박원순 등이 대안 주자가 사라졌고, 대개 친노-친문이면서 비명이었던 사람들은 동교동계/호남계와 달리 기본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체성이었던 지역주의 극복을 핵심으로 하고 상당수의 지역구가 수도권에 있었다.

조직적 기반이라고 할 만한 게 애매했고, 실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친문/비문을 가르는 실익도 없었기 때문에 조직화의 수준도 그렇게 높기 어려웠다.

게다가 문재인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터 중진들을 중심으로 흔들어 댔던 것과 달리, 비이재명계는 이재명이 검찰 수사를 조건 없이 받겠다는 자기 말의 금반언 원칙을 깨기까지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연찮은 비대위 구성 및 이재명의 비대위와 지선에의 영향, 그리고 지선에서의 참패에도 유의미한 책임 제기는 없었다.

지선 패배는 대선 패배와 더불어 은근슬쩍 적당히 문재인 정부에게로 책임이 떠넘겨졌다.

이낙연 개인은 비명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웠고, 홍영표나 김종민 등 제20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필연캠프에 있었던 이들이 딱히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이재명을 흔든 것도 아니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이들의 상당수는 비문계에 비하면 거의 간지럼 수준으로 이재명에게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친명에서 제기하는 음모론과 달리, 비주류로서 비이재명계는 구심점도 모호하고 인적 차원에서건 비전/정책 차원에서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핵심 정치인들의 조직화도 엉성했고 지역 기반은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이재명이 체포동의안 가결 정국 당시에 비명계에게 ‘협상 카드’로 ‘공천 보장’을 말했는데 이는 대단한 모욕이었다.

유시민 등이 말한 것처럼, 그들이 당권이나 공천을 얻기 위해 이재명에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것 말고는 이재명에 반대할 이유는 객관적으로 찾을 수 없다’라는 착각도 유분수인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당권이나 공천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당시 상황에서는 이재명에 대적하지 않고 몸을 낮추는 게 맞았다.

더구나 그때 나섰던 원칙과 상식에 속한 몇 명 되지도 않는 의원들은 대부분 안정권에 의석을 두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 캠프에 있었기 때문에 정말 공천을 원한다면 가능한 한 몸을 사리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이재명을 도와야 맞았다.

자기 공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당권은 어불성설이고.

비명계가 검찰과 통모했다는 말도 나왔는데, 만약 그 ‘동지 의식’을 발휘한다고 하면 이낙연이 남평오에게 ‘대외적으로 말하지 말라’라고 말했어야 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낙연이 지시해서 남평오가 대장동 사건을 파헤쳤고 이를 보고해서 세상에 알리도록 한 것이면 몰라도, 그냥 남평오 자신이 와서 알리는 것을 사전에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더 구체적으로, 조응천 정도를 제외하면 비명계 의원 중에 검사 출신은 고사하고 변호사 출신을 찾기도 어렵고 오히려 검사 출신 의원들은 친명계 의원 중에 많다.

그리고 조응천이 검찰을 떠난 데다 무엇보다 보수 청와대에 있다가 고도의 불상사를 만나 민주당으로 오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검찰과 통모할 것인가?

대의원제 지지도 달리 생각해볼 수 있다.

대의원제는 물론 과거에는 보스정치의 기제로 작동했다.

대의원제 축소에 반대했다고 알려진 이 중 홍영표의 경우는 본래 상당 부분 보스정치 정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나 새천년민주당이 아니라 개혁국민정당에서 시작해 열린우리당으로 간 사람이다.

현재 비명계가 유의미한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당원들은 인식부터 한 방향으로 쏠려 있고 이러한 경우 마지막 방파제는 대의원 이외에는 없다.

한 제도를 맥락을 떼어놓거나 과거의 맥락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의원제는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 당원의 기세가 과도하게 나아가는 것을 막는 균형 기제, 방파제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 등 공적 영향력을 가진 화자들은 대외적으로 말하려면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말해야 한다.

정황만 가지고 그렇다고 단정하고 이를 다시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층이 퍼 나르며, 이재명의 흐름에 대해 약간의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꽤 많겠지만 어차피 구심이 없으니 그냥 흩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일단 본인이 너무 관대한 편이라 사람을 묘하게 가리지 못하고(그 주변과 친문에 양아치들이 생각보다 많다), 본인이 친노패권주의로 몰아붙여지던 것에 억울함을 느꼈었는데 이재명도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겠구나 싶은 공감이 들어서였을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맥락과 사실 등을 놓고 보면, 그런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친명은 적어도 2022년에는 이미 당내에 아무런 견제가 없게 되었고 소수의 저항만 남았다.

이재명을 지지할지 말지를 결정하려면, 그의 언행에 대한 좀 더 거리를 둔 분석이 필요했다.

통상적으로 어떤 정치인이 전면에 부상하면, 그에 관한 다각도의 면밀한 분석과 논의가 요구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사실관계 측면에서 맞다고 볼 것이고, 무엇보다 어떤 부분이 가치판단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지.

그러나 우리 정치문화의 미숙함은 언론이건 정치권이건 시민사회건 일단 프레이밍과 감정 동원부터 시작해왔다.

예전에는 진영 논리에 기초해서, 지금은 팬덤 정서에 기초해서.

서로를 근본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속에만 두고 실제로는 일이 되게 하고 안정적으로 시스템이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냥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만 생각하고 그것이 극단화된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러나 선진국 중에서도 독재 잔존 세력과 일반 보수 세력이 힘을 합쳐서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대립하게 된 경우는 있다.

특히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후반에 민주화된 국가들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이렇게 근본적 차원에서 심하지는 않았다.

어떤 구도에서건, 자유민주주의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상대방에 대한 ‘존재의 인정’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싫지만, 그래도 서로를 제거하지 못해 안달이 되거나 또는 그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사회적 린치가 가해지는 것은 안 된다.’라는 점을 실질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균형 감각을 중시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고, 마찬가지로 지키기는 어렵긴 해도 정치인들은 자기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것이지 단순히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통제하고 또 때로는 지지자들이 원치 않는 말도 해야 한다.

반골을 관용하는 것, 자율적 통합을 지향하는 것, 무엇보다 대화와 토론을 통한 성찰과 피드백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2015년 분당 때부터 위험 요소가 있었다.

민주당계 지지자들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되어 십수 년을 끈 분열에 대해 학을 뗐다.

그러한 분열이 정권을 넘겨서는 안 될 이들에게 넘겨주게 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간 측면도 있다고 보았다.

분열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테니 라고.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구도보다는 정치문화에 가깝다.

말하자면,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길은 자율과 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어려운 길이었는데 여기에 실패했다.

문재인은 지지층이 듣기 싫은 말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고 포용을 명목으로 너무 과도하게 관대했다.

오늘날의 이 상황에 대해서는 문재인의 책임도 크다.

명비어천가의 나머지 부분에도 달리 생각할 지점이 많다.

고생이나 자수성가의 정도에 따라 정치인의 자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라고 해서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왕국이 되는 우리나라의 단일제 하 지방자치 그리고 성남이라는 여유 있는 기반에서 그 힘을 유감 없이 발휘해 성공했다.

분권적 지도자였는가의 질문에 의문 부호가 달린다.

여론이나 정치사회적 담론이 모든 것을 항상 그리고 전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이재명에 대해서는 비판적 여론이라는 게 내부에서는 적었고 외부에서는 힘이 없었다.

언젠가 이런 모든 부분들에 대해서 반드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형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