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의 어제와 오늘
하나의 철학적 결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사회변동과 시대 변화에 맞게 갱신하고 혁신하는 것이 모든 선진국 정치의 전통이다. 일례로, 90년대 말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New Labour' 기획을 선거공학용이자 신자유주의에 대한 항복으로 비판하는 점이 있지만, 동시에 서비스업 기반 경제와 세계화 및 경제통합 등으로 넘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갱신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블레어가 제시한 건 갱신 버전의 하나의 경우의 수일 뿐이니까. 한국정치의 문제는 갱신에 대한 논쟁은 고사하고 이런 갱신안 자체조차 나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사후 20년이 가까워 오고 86세대조차 이미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가피한 퇴장이 임박한 시점에서, 노무현이라는 개인에 대한 그리움이나 그의 표면적인 철학이나 정책만 계속 평가하며 답습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른 과거의 거물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YS에 대한 신원, DJ에 대한 향수 등에 기대 있을 것이 아니고 그들이 그 시대적 맥락과 상황에서 지니거나 보였던 가치나 행보가 현재에 어떻게 유의미하게 다시 주목을 받거나 갱신될 수 있을지를 제시해야 한다.
이미 종료된 세대적/거시적 시대 정신에 기초한 진영 정치, 팬덤 정치와 포퓰리즘, 양극화의 극단화, 중도적/국민적 감수성의 소멸,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의 위기, 신냉전과 대내외적 불확실성 및 불안정성, 우리나라의 모호한 '중진국적 마인드의 선진국'이라는 수준 등.. 여러 전환기적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로질러, 이제는 한국정치가 근본적으로 감정의 정치에서 대안의 정치로 넘어갈 시간이다. 어느 정당이건 자신들이 이제까지 지향하고 행해 온 정치를 좀 더 구체적이고 유의미하게 갱신하고 혁신할 시점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과거의 거인들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거나,
추상적 가치와 구체적 전략/정책을 긴밀하게 연결하지 못하거나,
최근의 역학 구도에서 상대방에 대한 격렬한 투지만 가지고 정치를 하거나,
당원이나 팬덤이 민심의 전부인 것처럼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상대방에게 작은 약점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집중적으로 두드려 여론전에서 추락시키려고 하는 것이 최근의 정치문화이다.
거기에 더하여 인물과 서사 중심 정치, 정치인들의 얕은 정견과 지지자들의 건강한 거리가 없는 감정적 기대 등 우리 정치의 고질적 폐단은 거의 아무것도 고쳐지지 못했다.
제도개혁이 아니라 문화변동으로만 궁극적으로 고칠 수 있는 사안이다. 아무리 제도를 고쳐도, 정치는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의 정서적 태도나 윤리 등 문화가 바뀌지 못하면 개헌이건 뭐건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정부형태를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도 현재의 정치문화가 계속되는 한 그냥 고착과 극한 대치가 지속될 뿐일 것이다. 합의가 유도되는 다당제와 같은 정당체계조차 어디까지나 '유도'일 뿐 그것을 실제로 정치인들이 하려고 하는 정치문화가 없는 한 결국 자동 기제일 수는 없다.
정치권에 새로운 오피니언 리더십이 요구된다. 차라리 지식인-관료가 사실상 하나로 묶여 있었던 고도화된 동아시아 관료제의 정신이 어느 정도 부활하는 편이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