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멸망에는 소행성도 세계대전도 필요없다

by 남재준

인류가 과학기술에 적응하지 못해서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만능주의라는 생각 자체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간다.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과학기술은 변수라기 보다는 조건에 가까웠다.

과학기술은 계속 발달했지만, 그로 인해 인류는 불행한 때도 있었고 발전한 때도 있었다.

객관적 '발달'이 주관적 '발전'을 장담하지는 않는다.

핵무기가 되느냐, 에너지 자원이 되느냐는 철학,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법 등 인문사회적 요인에 달렸다.

30여 년 전, IT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기대를 받기 시작했을 때 지식정보사회나 경제를 말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적응'의 논리가 확산되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근거 없는 희망도 많았는데, 30년 뒤 기술은 더 고도로 발달했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외면의 이면에 있는 인류의 삶이 근원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는 포퓰리즘과 음모론의 온상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근본적 도전과 위기로 바뀌었다.

과학기술을 천시하는 생각도, 반대로 과학기술을 숭배하는 생각도 모두 인간의 관념에게서 나온 것이다.

자동화라는 건 객관적 현실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인류의 낙원'을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하기 그지 없는 생각이다.

현재의 사회구조나 경제체제 등을 놓고 보건대, 만약 이대로라면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은 소득원이 끊길 것이고 금융인이나 빅 테크 기업가들 등 극소수만이 방대한 자원을 독차지할 것이다.

노동은 단순히 '힘든 일'이 아니라, 체제 안에서의 '소득원'이며 때로 인류가 자신의 삶을 채워가는 '의미'가 되어오기도 했다. ('소명설' 같은 것을 떠올려 보라.)

그러므로 사회경제적 요인으로서의 노동 또는 일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사회경제가 오는 것을 막연하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환상을 심는 건 극도로 부적절하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본인들이나 같은 계층에 속한 자들이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더 비용 부담을 한다는 조건이 달리지 않으면 낙원이 아니라 테크노디스토피아, 기술독재가 열리게 된다.

SF영화나 게임에서나 보던 세계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인류는 이미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우생학, 생화학무기, 인간 소외 등을 겪었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인류의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 기능 내지 작용을 대체할 수 있을 미래가 머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뒤에 인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발전은 언제나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로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옹호하는 데에는 인류애나 인류의 지구 지배이니 하는 거창한 담론도 필요 없다.

인류는 그냥 자연과 생명의 일부로서 발생한 것이고, 그 조건에 따라 계속 살아온 것이며 존재하는 한 계속 더 낫게 살아갈 길을 도모할 뿐이다.

이러한 가치적 차원의 사고가 없다면,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것이 없어도 문명이 없는 한 인류는 멸망한 것과 같게 된다.

그 양태는 기묘하게도, 문명에서 시작한 기술이 문명을 집어삼킨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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