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변화는 개악이 된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수 년 전부터 지식인들과 전문가들 그리고 정부나 기업 등을 막론하고 사회경제 지도층은 아주 추상적인 ‘융합’, ‘창의’ 등을 걸핏하면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근거해 통합형 교육과정이니, 자유전공/무전공이니, 적성시험제도니 하는 것들이 확산되는 경향이 한참 되었다. 미국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모든 목적은 어떻게 해석되고, 또 그것을 구현하는 시스템이나 제도가 현실적 토양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확히 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사자들인 수험생이나 학생에게는 더 큰 고통과 불합리를 안기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계층재생산과 비합리적인 인적 자원배분이라는 결과로 귀결된다.
'부당하지만 노력으로 비벼볼 수 있는' 정도조차 이제는 안 될 수 있다. 기준이 모호하고, 그러한 모호한 여러 가지 기준을 모두 맞추기 위해 더 무의미한 표준화된 노력들을 해 나가야 하는데, 심지어 언젠가는 수능까지 없앨 수 있다니... 적성시험 같은 것들은 운, 컨디션, 노하우 같은 것들이 이전보다 더 개입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고 타당성 차원에서도 이전의 지식시험보다 훨씬 부당하다. 우리 사회가 부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옛날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부당함을 은폐한다.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이 과거의 견고한 지식 암기와 응용 등에서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는 말은 맞다. 문제는 우리 교육의 시스템이나 문화, 이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은 산업화 시대의 서열화, 표준화, 경쟁, 체계적인 노동 양성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교육을 받거나 주어진 제도에서 을이 되는 학생, 수험생, 학부모, 사교육 등은 여기에 맞추어 최대한 합리적으로 더 이익을 얻기 위해 움직인다. 학벌과 입시 경쟁이 계속되는 한, 통합형 교육과정, 자유전공/무전공, 적성시험 이런 것들은 모조리 불합리한 인적 자원배분과 계층재생산 기제의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고교학점제는 이전의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가 그랬듯, 거대한 기제 안으로 흡수되고 변질되는 ‘이론적으로나 그럴듯한’ 제도이다.
한국교육이 애초에 ‘전공/진로 선택을 빨리하는 자가 능력자’라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는지 자체가 의문이다. 우리 교육환경에서 전공이나 진로 선택을 빨리하는 것 정확히 말해 그 전제에 진정으로 전공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있는 경우 오히려 독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은 그런 학생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예컨대 예나 지금이나 국어만 잘한다고 상위 국어국문학과를 갈 수는 없다. 반대로, 일단 중등교육이나 대학입시에서 요구하는 ‘추상적인 범용(?) 지능과 스펙’을 갖춘 사람은 당장 진로나 전공이 정해져 있지 않아도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한국교육의 문제는 진로 독촉이 아니라 학벌과 입시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진로나 전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학교의 ‘급’을 최대한 높일 수만 있다면. 교육문화나 구조가 좀 더 유연하고 학생에게 여유를 줄 수 있다면, 사실 학사 단계에서 전공을 정하고 그렇지 않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전제가 있을 경우, 설령 전공을 처음에 정하고 들어가도 자유롭게 옮기면 되기 때문이다. 선진국 중에선 무전공을 도입한 국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 학부 단계에서 전공을 정하는 건 진로를 강요하는 것과 직결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볼 때, 만약 현재와 같이 학벌과 입시 병목이 계속 이어진다고 가정할 때 자유전공이나 무전공 같은 것을 확대하는 경우 어떤 면에선 이전보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전공적합성을 보지 않고 총체적인 내신과 활동 사항 중심의 수시나 기초 과목 위주로 재편되는 정시로 재편되면, 그건 개악이다. 추상적인 창의적인 인재니 융합적인 인재니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이미 계층재생산의 충실한 기제가 되어 있는 고등교육과 대학의 현상을 더 악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물론 교육은 사회이동의 도구가 아니어야 하고, 교육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냉엄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그냥 추상적이거나 피상적인 대강의 부분만을 보고 탁상 정책을 내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쉽게 고급 취직이 가능하고, 대학을 뒤늦게 가도 상관이 없으며 무엇보다 입시가 대학을 도전할 때 전공적합성이 높은 자들을 뽑을 수 있고(측정의 타당성) 동시에 계층적 배경이 서로 달라도 그 영향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하는 등의 목표가 더 정책의 핵심이 될 필요가 있다. 개혁은 현실의 가장 아픈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고교학점제는 본래 공통교육과 제한적 선택교육으로 두던 것을 학생이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진로나 진학의 탐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 물론 진로나 진학의 문제는 당장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교육제도 전체의 차원에서는 그런 걸 과하게 감안하는 경우 제도 자체가 뒤틀린다. 예컨대, 자유전공학부나 무전공제가 확대되면 인문학과 비주류 사회과학은 고사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최근의 전반적인 경향을 볼 때, 학문 생태계의 다양성 보전과 제고는 고등교육과 학술 정책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이다.
고교학점제가 뒤틀리는 이유는, 고교학점제 자체가 아니라 이 제도가 놓인 구조적/문화적 맥락을 살필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이 약간 바뀐다고 해서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 – 특히나 정해진 목표(학벌)를 위해 달려가야 하는 – 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이 뇌관을 건드리지 않고 자유전공이나 무전공을 확대하는 건 그냥 현재 상황에서 진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어차피 이제는 정말로 전공제가 없으니 학벌 추구에만 정진하라고 하는 꼴로 귀결될 수 있다. 대입에서 진정으로 학생이 마주하는 현실은, 아마도 의대와 같이 구체적인 특정 목표가 아닌 한 ‘전공이나 진로는 일단 들어가서 생각해도 되는 거니까 최대한 좋은 대학으로 가고 생각해보자.’가 아닐까? 고교학점제만으로는 이러한 선택의 구조적/문화적 환경을 바꿀 수 없고, 자유전공제나 무전공제는 이 경향을 더 악화할 가능성이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