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mt.co.kr/opinion/2026/01/19/2026011616060450767
1988년에 보수당 여성 컨퍼런스에서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보수당 대표, 총리 1979-1990)는 이렇게 말했다.
“주부 출신으로 가정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여성이 이끄는 정부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재정 균형을 이루고,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조금 남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재정의 운용을 가계나 기업의 재무관리와 정확히 동일한 원리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수한 경제주체로서, 재정을 논할 때 단순히 일반적인 미시경제에서의 소비자(가계)와 생산자(기업)처럼 예산선이나 그 외 제약조건 하에서의 최적화만 놓고 보기는 어렵다. 양출제입이라는 것도 이러한 데에서 나오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정부는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물적/제도적 인프라나 공공재 등을 제공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원칙적으로는 정부가 직접 생산하는 것은 멀리 가더라도 요금재, 공유재, 공공재 정도에 그치는 것이고 또한 조세는 이윤이나 임금 등과 달리 생산요소시장에서의 생산요소 공급의 대가로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재정을 운용해야 하는데, 정부의 수입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부담인 조세에서 비롯되고 조세개혁 특히 증세로 귀결되는 세제개혁은 정치적 부담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정부는 세대 간 혜택과 부담의 균형이 최대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매해 재정적자에 과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계나 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부도 항상 자원에 한도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미래에 경기가 활성화되리라는 보장, 그리고 그로 인해 세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또 적자가 축적되면 부채가 되는데, 그 부채가 과도하면 일정 조건 하에서는 국가의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미치고 외국인 투자 심리가 위축되거나 하는 등의 위협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국채 발행을 극도로 자제하고, 조세 수입을 그때그때 국채 매입에 사용할 것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 재정보수주의자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런 주장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담보 기능 등으로 인해 국채는 나름의 효용이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의 상승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구축효과가 발생하는 경우 민간투자가 잠식된다.
국채 발행 자체를 무조건 터부시할 일은 아니다. 상황이 급하면 국채 발행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예컨대 팬데믹 시기의 대봉쇄 때와 같이 대대적인 지출이 필요한데 국민에게 당장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러한 상황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 어느 정도 상한이나 제약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최근 20여 년간의 경제문제의 뇌관은 ’고용 없는 성장‘과 ’워킹푸어‘가 핵심이 아닐까 싶다. 성장이 두루 파급을 미치는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속화되는 자동화는 이러한 경향을 부추길 수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목의 시장 이원화로 인해 고용의 질적 하락이 이루어졌다. 학력 인플레이션과 미스매칭 그리고 대학에의 무리한 노동의 질 보장 압력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 내부의 분야별 과다-과소 경쟁과 비합리적 인적 자원배분이 나타난다. 생산가능인구의 관점에서 볼 때, 갈수록 부담이 커지는 유소년부양비나 노년부양비 사이에 끼어 있는데 하물며 노력해도 중산층으로 올라가거나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나 고용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재정지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단순히 전체적으로 소비만 증가시키려고 재정지출을 하는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장기화되는 경우 결국 우리도 노골적인 긴축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성장과 인플레이션은 계속되는데 정작 임금이나 고용은 그에 부합하지 못하니 서민 가계의 체감 경기는 좋을 수 없다.
보육과 요양 등 사회서비스, 의료 그 외 삶의 질을 제고하는데 이바지하는 다양한 직업들에 대한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직업교육 출신자에 대한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대학에 대한 과다한 노동시장과의 연계 요구를 끊을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인적자원이 각자의 재능과 역량 등에 맞게 적절히 배분될 수 있도록 선발이나 시험 등의 평가 제도를 주축으로 적성시험제도 폐지, 수능의 혁신을 전제로 한 정시 확대와 대학의 입학이 아닌 졸업의 난이도 제고 등 교육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교육열에 대한 성찰 없는 예찬이나 반대로 비판에서 벗어나 타당한 경쟁, 적정한 경쟁으로 가야 한다. 여성 인력의 양육 부담을 완화하고 젠더 간 가사+육아와 직업생활 간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도모하면서, 동시에 구조적으로 영유아/청소년/청년 세대가 교육이나 취업 등에서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게 하기 위한 지출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와 구조의 개혁 등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확대재정이냐 긴축재정이냐 그 자체는 논쟁의 가치가 그다지 없다. 재정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보다는, 쓴다면 어떻게 쓸 것이냐가 더 쟁점이 된다. 단순한 소비 진작을 위한 복지 지출 제고나 반대로 토건이라던가 공업에만 의지해 성장 신화의 향수에 빠져 있는 식은 어렵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산업들의 부침은 시장에 맡기고, 정부로서는 서민 가계의 생활 향상을 위한 구조적 조건의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도 국채도 종국에는 유의미할 수 있다고 본다. 거시 중심 재정론에서 과정 중심 재정론으로 패러다임이나 논의의 초점이 이동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