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아가씨에 관한 Memo.

by 남재준

처절한 불행은 감정을 마비시키고 사랑이나 심지어 성욕 같은 욕구마저 형해화한다. 결국 연인도 친구도 부부도 그 무엇도 아니고 서로의 불행을 마주 볼 수 있는 유일한 관계로 남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한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처럼... 기대가 사람을 무참히 짓밞는 인생에선 욕구를 품는다는 건 또 다시 거대한 감정적 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예고이다. 욕구를 품는 것조차 사치인 것이다. 성적으로 공공연하게(?) 자유로운 호텔의 상류층 젊은이들과 달리 지저분하고 비천한 모텔에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바닥이라는 것만 새삼 깨닫게 되는 두 사람을 보며 느꼈다.


<우체국 아가씨 Rausch der Verwandlung(변신의 도취)>를 완독했다. 진실로 오랜만에 외국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서양 소설에는 번잡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장면이라던가 풍경이라던가 외모라던가 하는 것의 묘사가 많아서 그 묘사 자체를 즐기고 싶지 않다면 읽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끝까지 읽으면 인류사회의 상이한 문화와 인격을 가로질러 항존하는 씁쓸한 불행의 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라는 역량이 있다면.)


이 소설은 내 입장에선 2부에서 더 진면목을 드러냈고,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Une Vie> 이후 가장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인 외국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크리스티네가 보여주는 여성이 가진 (그것의 연원이 생물학적인 것이건 사회학적인 것이건) 의존성과, 한 인간으로서 그것에 대해 독립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페르디난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여자의 일생>에서 결국 끊임없이 갱신되는 인격적 모욕과 침해, 비극의 차원을 끝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잔느보다는 그래도 여성에게 주체성 - 한 인격/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요청한다는 차원에서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크리스티네에 대해선 양가 감정이 교차했다. 아무래도 20세기 초 전시 여성의 삶이라는 맥락은 내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일이니, 일면 이해할 수 없어도 그러한 맥락을 알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그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쾌락에 심취해 그것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전쟁의 참상 하에 있다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쾌락을 맞닥뜨리게 되면 인간의 심리에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단지 자기가 직면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가끔은 호텔 생활을 즐기느라 병약한 노모마저 잊는 식의 비인간성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음에 민감할 뿐이다.


페르디난트는 자신은 남을 보며 왜 나는 저렇게 행복하지 못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다른 사람이 따뜻할 때 자기는 차가워야 하는 점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사실 맥락은 다르지만 결국 느끼는 감정의 경계는 모호하다. 저 사람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꼭 저 자리, 저 입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불행의 체감이 큰 건 사실이다. 그러면 이건 비교가 아닌가? 이것도 비교이다. 다만 질투는 아니겠지. 내가 가끔 느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너희들은...... .’ 나도 안다. 그들에게도 고통이 있고 불행이 있다는 것을. 모든 행불행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실은 실존적 고통이라는 진실의 무게를 덜어내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인생은 간단하지 않다. ‘남과 너를 비교하지 마.’ 이 말은 상대적으로만 성숙한 말이다.


전쟁과 실업, 가족을 잃는 등의 경험은 너무나 인간성을 한계로 내모는 것이다. 그 정도 고통의 반동으로서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가 범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 정당화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이 내게 이랬으니 내가 이러는 건 ‘범죄가 아니’라는 말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자기파괴적 충동이 깊이 차오른 내적 상황에서 죄라는 새로운 생의 방향을 찾은 것이고 거기에 양심의 가책까지 더할 수는 없으니 그런 자기기만을 뿌리 깊이 박은 것이리라. 하지만 죄는 죄일 뿐이다. 가족이 살해를 당한 자가 복수로 살인을 한다고 해서 그게 죄가 아니게 되거나 의(義)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또 다른 살인귀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결론이 그러니 복수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런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고 해서 살인이 살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말한 것 뿐.. 문학은 이런 식으로 외면과 심리 그 모든 것들이 합쳐진 인생의 ‘보여주기’를 통해 인간이 실제로 구체적인 상황에서 직면하는 윤리적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줘 독자를 한계 상황으로 몰아간다.


[노인은 지팡이 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이나 국가에 대한 장군의 기대는 전쟁을 치르면서 이미 무너져 버렸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일 뿐 아니라, 타인에게 안겨준 고통에 무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그가 존 스튜어트 밀과 그 추종자들의 강의에서 듣고 배워서 품었던 이상주의, 즉 인간의 도덕적 의무와 백인의 계몽 정신에 대한 믿음은 이프르 전투가 벌어졌던 지옥 같은 피의 수렁과 그의 아들이 전사한 수아송 전투의 현장이 되었던 석회석 채석장에 영원히 묻어버렸다. 그는 정치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냉랭한 분위기의 클럽 모임이나 사치스러운 공식 연회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죽은 이후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도 피했다. 진실은 인정하는데 혐오스러울 정도로 미온적이고, 전후 시대에 순응할 능력도 없는 동시대 사람들의 행태에 화가 치밀었다. 똑똑한 척만 하고 아무 생각 없는 젊은 세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가공의 자신을 밀쳐내고 본래의 자신을 되찾으려고 했다. 어머니를 생각했다. 많이 편찮으시거나 어쩌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생히 느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자극해도 격렬한 고통이나 불안에 몰입할 수 없었다. 오직 한 가지 느낌이 다른 모든 느낌을 밀쳐냈다. 그것은 분노였다. 분출구도 없이 몸 안에 갇혀 부글부글 끓는 무력한 분노, 끝없이 솟구치는 분노였다. 그러나 여자는 그 분노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모인지, 어머니인지, 혹은 자신의 운명인지. 그것은 불공평한 처사로 억울하게 고통을 받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분노였다. 여자의 상처받은 영혼은 온전했던 자신에게서 어느 한구석이 떨어져 나갔음을 느끼고 있었다. 축복받은 날개를 떼어버리고 이제는 땅바닥을 기는 눈먼 구더기가 되어야 했다. 무엇인가가 영영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견딜 수 없는 증오심이 일어나자, 베개를 입에 물고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억눌렀다.

‘인간이 싫다. 세상이 싫어. 나도 밉고, 부자든 가난뱅이든 모두 꼴도 보기 싫다.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 정말 지긋지긋한 삶이야.’]


[여자는 자신을 극복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릴 수도 없었다. 여전히 흥분한 채 침대에 누워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숨을 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화창한 날씨에 언니 가족과 함께 있으니 기분은 유쾌했다. 형부는 동물원 울타리 앞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동물들을 구경하면서 마냥 즐거워했다. 크리스티네는 그들이 은근히 부러웠다.

‘허황된 꿈에 연연하지 말고, 이런 소박한 삶에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맙소사! 자네처럼 성실하고, 똑똑하고, 용기 있는 친구가 뼈 빠지게 잡일이나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내가 장담하지만, 자네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그리고 자네 문제는 틀림없이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야.”

“틀림없이? 그래. 나도 지난 5년 동안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틀림없이’라는 것이 몹시 까다로운 열매 같은 놈이더군. 아무리 세게 흔들어도 나무에서 떨어지지를 않아. 세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르지. ‘항상 성실하라, 정직하라!’라고 배웠지만, 그런 세상이 단 한 번이라도 실현된 적이 있던가? 사람은 꼬리가 잘려 나가도 다시 자라는 도마뱀이 아니야. 자네가 말했듯이 내가 운이 좋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열여덟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황금 같은 6년이 살아 있는 육체에서 잘려 나가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불구가 되지. 일자리를 찾아다닐 때 나 자신이 이제 더는 성실한 수련생도, 뺀들거리는 김나지움 학생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지.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모습이 마흔 살은 된 사람 같았어. 그래,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어. 어떤 의사도 6년간의 젊음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어. 누가 내 젊음을 보상해 주지? 국가가? 그 고위층 사기꾼들이? 그 고위층 도둑놈들이? 40명이나 되는 장관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대봐. 법무부 장관? 복지부 장관? 산자부 장관? 공정하게, 사리사욕 없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고급 공무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름을 대봐. 그들은 우리를 전쟁에 몰아넣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고, ‘황제 만세!’를 외쳤어. 물론, 지금은 다른 걸 들려주고 있지. 진흙탕에서 보니, 세상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군.”]


[“혁명이라고? 담배 한 대 더 피워도 괜찮겠지? 그 혁명을 위해 연기 좀 뿜어내야겠어. 너희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변변치 못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의 간판을 뒤로 돌려놓고 새로 페인트칠을 하긴 했지. 하지만 무력하고 순종적이게도 정작 그 낡은 물건은 손도 대지 못했어. 천장이나 바닥 하나 변한 게 없지. 근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흔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거야. 그것은 네스트로이의 연극이지, 혁명이 아니야.”

(중략)

“내전을 치러야만 영원한 정의를 얻는다면, 그리고 그 정의의 대가로 살아 있는 인간을 죽여야 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런 정의를 위해 싸우지는 않을 거야. 나는 이제 어떤 일에도 신경 쓰지 않아. 관심도 없어. 나는 볼셰비키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아. 나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자본주의자도 아냐. 나는 아무래도 좋아. 나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어. 내가 봉사하고 싶은 단 하나의 정부는 바로 나 자신이야. 다음 세대가 행복해지든지 말든지, 공산주의 국가가 되든지 파시스트 국가가 되든지 아무 관심 없어. 내 관심은 오로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냐는 것뿐이야. 그리고 갈기갈기 찢긴 내 인생을 언젠가는 다시 주워 모아서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성취하고 싶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숨쉴 여유가 생긴다면, 그리고 내 인생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는다면, 그때는 한 번쯤 저녁식사 후에 세상의 질서를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문제를 한가하게 생각해 볼 거야. 하지만 당장은 내 처지만 생각해야겠어. 너희는 다른 일들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있겠지만, 나는 나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거든.”

프란츠가 몸을 움직였다.

“아니야, 프란츠. 내가 자네를 비난하는 게 아니야. 자네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잘 알고 있어. 자네는 할 수만 있다면 국립은행을 털어서라도 나를 장관으로 만들어 주고 싶겠지. 자네가 선량한 친구라는 것을 잘 알아.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잘못된 점이자 어리석었던 점이야. 우리는 너무 착하고, 의심할 줄도 몰랐어. 그래서 이용만 당했지. 하지만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에는 앞으로 절대 안 속을 거야. 내가 아직 사지가 멀쩡하고 목발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는 따위의 이야기에는 설득당하지도 않을 거야. 숨 쉴 수 있고 먹을거리 있으면 충분하지 않냐는 이야기, 그 정도면 만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설득당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 신도, 국가도, 삶의 의미라는 것도 믿지 않아. 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런 권리를 찾지 못하는 한, 세상이 내 인생을 빼앗아 갔고 나를 속였다고 생각할 거야. (후략)”]


[“이해할 수 있어요!”

(중략)

“너는 왜 끼어들어? 네가 뭘 이해하니? 마치 전쟁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실내에 돌연 활기가 넘쳤다. 크리스티네 역시 억눌렀던 분노를 분출하면서 열기를 띠었다.

“아무 관계 없지! 아무 관계 없어! 전쟁이 우리 인생을 망쳐놓은 것 말고는 아무 관계 없어. 전쟁 때문에 오빠를 잃은 것을 벌써 잊었어?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기억 안 나? 전쟁이 모든 걸 망쳐놓았어, 모든 걸.”

“하지만 너는 아니잖니? 네게 뭐가 부족한데? 너는 좋은 일자리도 있잖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너는 행복한 거야.”

“그래, 행복하지. 그 촌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행복으로 알아야겠지. 언니는 기억력이 나쁜가 봐. 하기야, 공휴일 빼고는 어머니를 찾아온 적도 없었지. 나는 파르너 씨 이야기가 모두 맞다고 생각해. 전쟁이 우리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지만, 남겨준 것은 불행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한순간의 평화도, 기쁨도, 휴가도 주지 않았지.”

“휴가를 못 갔다고? 스위스의 초호화판 호텔에서 실컷 놀다 와서 왜 여기서 불평을 해?”

“나는 누구한테도 불평하지 않았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쉬지 않고 불평했던 사람은 언니였어. 그리고 스위스는.....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내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내게도 할 이야기가 있는 거야. 나는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를 이제야 알았어. 내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전쟁이 내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조차 모르고...... .”]


[“어쩌면 실제로 제 마음속에 큰 분노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 저는 아무도 부럽지 않아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잘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은 저보다 못 되어야 한다는 식의 질투심은 없습니다. 저는 남의 행복을 시샘하지 않아요.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남이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면, 자신은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자책하듯 스스로에게 묻곤 하죠.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과 저의 행복을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단지, 왜 저는 행복하지 않은지를 생각할 뿐이죠.”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 크리스티네는 깜짝 놀랐다. 그는 그녀가 줄곧 생각해오던 것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막연하게 느끼던 것들을 남자는 아주 명료하게 설명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고 싶지는 않다고, 단지 내 권리를 찾고 내 인생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다른 이들이 따뜻한 방 안에 있는 동안 추운 바깥에서 눈 속에 발을 파묻고 서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남자는 말했다.]


[“(전략) 당신에게 내가 답을 줄 수는 없어. 용기를 낼 수 있는지는 당신 자신의 문제니까.”

크리스티네는 생각에 잠겼다. 느닷없이 생긴 일을 고민하자니 쉽지 않았다.

“나 혼자서는 용기를 가질 수 없어. 난 여자야.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다른 사람과 같이해야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둘을 위한, 당신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당신이 원한다면....... .”

남자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바로 그것이 문제야. 나도 이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인지를 모르겠어. 너는 둘이 함께하면 쉬울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혼자서 하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아. 나는 내가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는지 잘 알아. 실패한 인생, 부서진 내 인생을 만회하고 싶어. 그런데 당신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두려워. 당신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잖아. 내 생각일 뿐이지. 당신을 설득해서 어떤 일에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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