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by 남킹

하늘을 닮아 푸르게 상처 난 바다. 여인은 바다에 사진을 새기고 나는 사진에 바다를 간직한다.


프롤로그


예약된 택시는 오전 8시 정각,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했다. 나는 2층 내 방 창가에 서서, 잿빛 아스팔트 위로 미끄러져 들어와 멎는 검은 세단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 정적의 순간, 나는 부질없는 기대를 품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꿈이거나 혹은 뒤바뀔 수 있는 현실이라는 기별을 전해주기를. 하지만 운전사는 그저 운전석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마치 시간의 흐름을 관장하는 거대한 시계의 일부가 된 듯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희망의 마지막 불씨가 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묵직한 짐가방을 들고 삐걱이는 층계를 내려갔다.현관문을 열자, 차갑고 축축한 새벽 공기가 훅 끼쳐왔다. 운전사는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계기판 근처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트렁크가 소리 없이, 마치 거대한 조개의 입처럼 서서히 열렸다. 그는 세상 모든 귀찮음을 짊어진 사람처럼 느릿하게 차에서 내려, 나의 짐 일부를 건네받아 트렁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적어도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사내였다. 성글게 남은 머리카락, 은빛 서리가 내린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퀭하게 들어간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았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는 수십 년간 수많은 이별과 만남을 실어 날랐을 자의 체념과 전형적인 독일인의 무뚝뚝함이 견고한 성벽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거리감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저런 사내는 공항으로 가는 내내 불필요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을 부류의 인간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지금의 나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름 모를 타인이라면 더더욱. 두 딸과 짧은 포옹, 그리고 눈물 섞인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는 택시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하늘은 잔뜩 흐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택시가 5번 아우토반으로 진입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빗물은 유리 위에서 작은 실개천이 되어 사선으로 빠르게 흘러내렸고, 그 너머의 풍경을 아련하게 뭉갰다.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했고, 차창 양옆으로는 완만한 구릉 위로 끝없이 펼쳐진 노란 유채꽃의 바다가 눈이 시리도록 넘실거렸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그 압도적인 생명의 빛깔은 볼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감탄을 자아냈다.독일에 처음 둥지를 튼 그해 겨울, 나는 지겹도록 많은 눈을 맞았다. 어렵사리 구한 월세방 창밖은, 자고 나면 온통 순백의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밤이 깊어도 세상은 눈빛을 반사해 환했고, 나는 동화 속 산타 마을에 갇힌 이방인처럼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기나긴 겨울을 견뎠다. 그때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이 혹독한 백색의 세상이 녹아내린 자리에, 이토록 눈부신 금빛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그것도 바로 내 집 베란다 앞에서 말이다.적당히 외진 곳에 자리한 나의 보금자리 앞 땅은 변덕스러운 주인을 닮아, 처음엔 밀밭이었다가 어느 해엔 옥수수밭으로, 또 어떤 해에는 이렇게 유채밭으로 모습을 바꾸곤 했다. 그렇게 서른 번이 넘는 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피고 졌다.그 덧없는 세월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각자의 짝을 찾아 독립했고, 나는 재작년에 은퇴했다. 은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병세가 더는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 절망의 문턱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년 봄, 유채 향기가 세상의 모든 공기를 대체할 듯 절정을 이루던 어느 날, 아내는 결국 내 곁을 떠났다.아내는 마지막 순간에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한 이불을 덮고 살았던 남편을, 그녀는 그저 낯선 이를 대하듯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그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잔인한 위안을 삼켰다. 만약 아내가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면, 나는 그 고통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기억을 모두 잃고 순수한 어린아이가 되어, 마치 긴 잠에 빠져들 듯 더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1.


나는 아내가 처음 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날 오후를, 마치 어제 찍은 사진처럼 또렷이 기억한다. 독일에 머문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단출하기 짝이 없는 회사의 영업과장으로 막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회사는 독일어와 불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통역할 수 있는 인재를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중이었다.나는 으레 금발에 파란 눈, 풍채 좋은 게르만계 통역사를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낡은 사무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전형적인 아시아인이었다. 자그마하고 깡마른 체구에, 마치 긴 휴가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나는 순간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급히 책상 위 그녀의 이력서를 다시 훑어봤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항목에서도 한국인 혹은 아시아계라는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독일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최근까지 영국에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완벽한 유럽인의 이력이었다.그녀는 이런 상황을 이미 수십 번 겪어본 사람처럼, 조금의 동요도 없이 유창한 독일어로 자신의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몇몇 단어를 놓치며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는 즉시 부드러운 영국식 영어로 전환하여 다시 한번 설명했다. 자신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되었으며, 성장한 곳이 독일과 국경을 맞댄 알자스-로렌 지역이라 자연스레 독일어에 능통하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한때 독일의 영토였기에 두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땅이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약 3년간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전역을 정처 없이 여행하듯 살아왔다고 덧붙였다.“출장이 잦을 겁니다. 한 달에 절반 이상은 길 위에서 보내야 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나의 첫 질문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래서 지원했습니다.”우리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듯, 그 후로 유럽 전역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절삭 공구를 유럽의 기업체에 파는 일이었다. 한 달에 스무 날 이상은 길 위에서 잠을 청했다. 가까운 곳은 차로, 먼 곳은 비행기로 움직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적지는 먼 곳이었다. 어느덧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딱딱한 의자와 소음이 내 집 소파보다 더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이 되어버렸다.처음 두 달간, 우리는 어색한 동료애를 유지하며 각자의 호텔 방을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차로 두 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한적한 시골길에서 우리는 차를 멈췄다. 울창한 숲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작은 팻말이 그곳이 국립공원의 입구임을 알리고 있었다. 막 까다로운 계약 하나를 성공시킨 뒤라, 우리의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우리는 이정표를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늘을 완벽하게 가릴 듯 솟아오른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기둥으로 늘어선 좁은 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치 신전으로 들어가는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호수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설명할 수 없는 충만함과 행복감이 심장을 가득 채웠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고, 내 곁의 이 여인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호숫가를 따라 걷는 길 위에는 온갖 모양의 버섯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작고 달콤한 산딸기,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베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행인을 유혹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듯, 망설임 없이 산딸기와 베리를 따서 한 움큼 내게 내밀었다.우리는 나란히 앉아 열매를 먹으며 서로의 입술과 이가 보랏빛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내 안에서 들끓는 욕망의 랩소디를 숨길 수 없었다. 이 여인을 향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끌림을 온몸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내의 손을 처음 잡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우리의 출장길에 호텔 방은 늘 하나면 충분했다.


2.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컥 눈물을 쏟았지만, 예상대로 운전사는 백미러로도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그 흔한 작별 인사, ‘당케(Danke)’라는 말 한마디 없이 헤어졌다. 덕분에 나는 팁을 아낄 수 있었고, 차 바닥에 흘린 눈물과 콧물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차에서 내리자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여행용 가방을 끌었다. 이마와 얼굴, 어깨 위로 쏟아지는 빗물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빗물에 흐려진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시멘트 빛 하늘 사이로, 항공기들이 짙은 연무의 꼬리를 달고 각자의 운명을 향해 흩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 땅에서의 나의 마지막 인연도 저 비행기들처럼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사정없이 뺨을 후려치고 달아났다. 나는 폐부 깊숙이 축축한 독일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치 이 마지막 공기를 병에 담아두기라도 하려는 듯.몸에 밴 익숙한 곳이지만, 실로 오랜만에 찾은 공항이었다. 하지만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여전히 안락하고 느긋한 기분마저 들었다. 지난 30년간 내 몸에 각인된 습관대로, 나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 맥도날드에서 가장 값싼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한 층 내려와 서점 앞 가판대에서 신문 한 부를 사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출국 절차를 밟았다. 모든 것이 기계처럼, 의식처럼 진행되었다.수속을 마친 나는, 독일에서의 마지막 문자를 딸들에게 보내고, 홍콩을 경유하여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지친 몸을 실었다. 내 나이 스물에 홀로 섬을 떠났고, 서른에 조국을 떠났으며, 이제 예순이 넘어 다시 혼자 텅 빈 채로 고향 섬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시간의 간극이 무색하게, 마치 며칠 휴가를 다녀오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수십 년 전, 어머니의 애틋한 배웅을 받으며 공항행 버스에 올라탔던 그날의 풍경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선명했다. 무수히 많은 초록색 나뭇잎들이 쌩쌩 소리를 내며 차창을 스쳤고, 시리도록 하얀 여름 햇살이 아스팔트 위에 가득했다.돌아보면, 사랑, 청춘, 미래, 희망 같은, 굳이 그 의미를 정의하지 않아도 가슴 설레는 단어들 속에 온몸이 감싸여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죽음, 불안, 노쇠, 그리움, 후회 같은 단어들과 함께 돌아간다. 빈뇨증과 강박신경증이라는 훈장까지 달고서. 내 앞에 길게 드리워진 어슴푸레한 삶의 황혼을 마주하는 것이다.비행기는 거대한 몸체를 천천히 움직이며 활주로 출발선으로 들어섰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구름 사이로 설핏 밝은 햇살이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짙은 안개가 유령처럼 몰려왔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독일의 날씨는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삽시간에 세상은 온통 짙은 회색으로 덧칠해졌다. 조금 전, 바람과 거친 빗방울이 세차게 창을 두드리던 공항 대기실에서의 불안한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은 오히려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 몽환적인 기분마저 들었다.활주로의 점멸등이 길쭉하게 세로로 반짝이며 흐린 시야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사라졌다. 공항 터미널 빌딩은 어른거리는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귀를 찢는 듯한 지독한 굉음이 시작되었다. 기체는 미친 듯이 빨라지고 동시에 격렬하게 흔들렸다. 나의 어깨는 등받이에 찰싹 달라붙었고, 몸은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긴장감이 혈관을 타고 솟구쳤다.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비행은 언제나 이 참을 수 없는 두려움으로 시작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모든 소음과 흔들림이 멎었다. 나는 구름의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그곳은 지상의 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없이 평온하고 고요했다. 조금 전의 혼돈이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3.


나는 오래전부터 내 삶의 에필로그는 반드시 고향 섬에서 쓰겠노라, 수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비릿한 바람결에 나지막한 언덕 하나만 넘어도, 눈이 부시도록 짙푸른 바다가 아낌없이 펼쳐지는 곳. 그 광활한 바다 위에 점처럼 박혀 한가로이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들. 바람과 갈매기의 노래. 굳이 애써 설레려 하지 않아도, 그저 고개만 들면 언제나 내 앞에 투명한 하늘이 놓여 있는 곳. 그리고 그 하늘과 맞닿아 경계 없이 이어진 똑같은 빛깔의 바다.나는 창밖 수평선 위아래로 엷게 퍼져나가는 구름의 그라데이션을 본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코끝에 와 닿는 바닷냄새. 그 독특한 냄새는 세월이 흐를수록 잊히기는커녕, 더욱 두텁고 단단한 결정체가 되어 내 그리움의 생채기 위에 소금처럼 더해졌다.그리고 그 바다가 온전히 푸름과 붉음, 두 가지 색으로만 대비를 이루던 동터오는 여명. 그 새벽의 스산한 바람이 손바닥만 한 작은 창문을 토닥토닥 두드리면, 나는 잠결에 어른거리던 꿈의 자락을 뒤로한 채, 터질 듯한 오줌보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꿀렁거리는 비닐장판 위에 놓인 낡은 요강을 더듬어 찾았다.그때쯤이면, 아버지는 이미 어둠을 헤치고 바다로 나간 뒤였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마른 나뭇가지 타는 냄새로 또 하루를 시작하고 계셨다. 타닥타닥, 정겹게 타들어가는 장작 소리. 그르렁, 무거운 가마솥 뚜껑이 여닫히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구수한 밥 냄새. 나는 이불 속에 누운 채, 가려운 엉덩이를 손으로 긁적이면서도 입맛을 다셨다.학교가 파하면, 남루한 옷차림의 친구들과 함께 마을 안길을 걸어 포구에 닿았다.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생선 비린내에 취하고, 일렁이는 푸른 물결과 그 위에서 흔들거리는 돛단배에 어지러움을 더하면서도, 우리는 검은 갯돌을 들춰내 황급히 달아나는 엄지손톱만 한 게나 보말을 잡아 빈 도시락 통에 한가득 채웠다. 애당초 이 세상에 슬픔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까불고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바람은 차가워지고 따갑기만 하던 햇살도 힘을 잃고 비실거렸다. 그때서야 우리는 아쉬운 듯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나의 유년 시절이 세포 하나하나에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곳으로, 길고 긴 우회 끝에 나는 마침내 돌아가고 있다. 팽팽했던 청년의 피부는 이제 목덜미에 깊은 주름살이 팬 중년의 그것으로 변했다. 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볼록하게 솟았다. 눈은 흐려지고, 콧등에는 굵은 돋보기안경이 무겁게 걸쳐졌다. 이마에는 따가운 햇볕이 수십 년에 걸쳐 그려 놓은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다. 혈기 왕성했던 청년의 얼굴은 이제 빛바랜 사진 속에만 존재한다.그리고 변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고향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옛 동네는 더 이상 내 기억의 편린들을 확인시켜 줄 만큼 순수한 모습을 남겨두지 않았다. 사실, 애틋하고 느꺼운 감정에 앞서 낯선 이질감이 먼저 마음을 휘감았다. 나는 고향 땅을 밟기도 전에, 구글 맵의 위성 사진을 통해 내 유년의 마을을 이미 샅샅이 뒤져보았던 것이다.내가 살던 초가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회색과 갈색으로 세련되게 치장한 부티크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사실 이곳이 내 옛집 터라는 것조차, 위성 사진과 주변 지형을 수십 번 대조하고 확인한 끝에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내 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던 고즈넉한 솔숲은 절반이 싹둑 잘려나가 인공적인 잔디밭이 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호텔을 수식하는 조명을 주렁주렁 매단 채 장식품으로 전락해 있었다.호텔 입구 테라스에 목재 원형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파라솔이 열을 맞춰 늘어선 풍경이나, 단아한 색을 덧입힌 발코니의 모습은, 내가 수십 년간 떠돌았던 이국땅의 어느 휴양지와 똑 닮아 있었다. 주변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바다와 산의 능선을 제외하고, 변하지 않은 모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그런데도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이 낯선 곳에, 낯선 얼굴의 내가 서게 될 때 맞닥뜨릴 기대와 우려를 훌쩍 뛰어넘는,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 끌림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끌림의 정체를 알 것도 같았다. 내 마음 한구석을 회한 섞인 그리움으로 항상 무겁게 짓누르던,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향했던 여인.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녀는 사진 속에서 여전히 눈부시게 활짝 웃고 있었다.


4.


비행기는 이른 아침의 눅눅한 공기 속에 홍콩에 도착했다. 둥근 창밖으로 무거운 잿빛 하늘이 보였다. 산 정상은 온통 짙은 구름에 덮인 채, 거대한 짐승처럼 게으르게 몸을 뒤채고 있었다. 언제든 우르릉거리며 폭우를 쏟아낼 기세였다. 산 아래에는 성냥갑 같은 흰색 아파트들이 마치 하늘을 향한 경쟁이라도 하듯 우후죽순 솟아 있었다. 높은 산과 빽빽한 아파트. 서울의 풍경과 많이 닮아 있었다. 완만한 구릉과 낮은 집들이 대부분이었던 유럽을 떠났다는 사실이 이제야 확연히 실감 났다.트랩을 내려서자, 매캐한 경유 냄새가 습하고 무더운 공기에 뒤섞여 훅 하고 덮쳐왔다. 홍콩은 처음이었다. 유럽 대륙 구석구석은 물론, 아메리카, 심지어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까지 방문했지만 정작 내 나라와 이웃한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고작 환승을 위해 서너 시간 머무는 것이니, 엄밀히 방문이라 하기도 민망했다.홍콩, 아니 중국은 늘 한 번쯤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다. 내가 유난히 중국 음식을 좋아했던 것도 한몫했을 터이다. 유년 시절,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아주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었던 짜장면. 그 오묘한 단짠의 맛을 지닌 검은 소스의 음식. 어린 나는 잠자리에 들 때면, 짜장면을 매일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큰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짜장면에 대한 열망은 간짜장으로, 다시 삼선짜장으로, 그리고 급기야는 탕수육으로 진화했지만, 중화요리에 대한 식탐만큼은 세월이 흘러도 식을 줄을 몰랐다.어쩌면 그 탓이었을까? 어느 날 극심한 복통으로 찾은 병원에서 쓸개염 진단을 받고 결국 쓸개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름진 음식에 대한 나의 탐욕은 변하지 않았다. 독일에 처음 도착했던 그날 저녁, 내가 찾은 곳도 한국 식당이었고, 주문한 메뉴 역시 짜장면이었으니 말이다. 무려 10유로나 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하지만 정작 나를 중국으로 이끌었던 더 큰 힘은, 중국 화폐 20위안 뒷면에 그려진 계림(桂林)의 풍경 때문이었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뒤늦게 두바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주말을 끼어 겨우 닷새의 여유가 있었기에, 아직 가보지 않은 곳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 사흘째 되던 날, 작열하는 태양 아래 펼쳐진 사막 투어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본능적으로 기름지고 풍요로운 음식을 찾았다.우리는 아랍 전통 복장을 한 호텔리어의 안내를 받으며, 격자무늬가 선명한 대리석 바닥을 따라 걸었다. 아내의 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또각또각, 명랑한 소리가 드높은 천장 아래 울려 퍼졌다. 거대한 통유리 창 너머로는 이곳이 사막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성한 열대 덤불이 우거져 있었다. 이 도시는 마치 사치라는 꿀 속에 푹 잠겨 있는 듯했다. 천장은 온통 반짝이는 유리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눈부신 광채 속에 얼빠진 표정으로 헤벌쭉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 비쳤다.호텔과 연결된 중국 식당은 그 크기와 화려함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마치 거대한 중국 박물관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했다. 화려함과 사치, 그리고 원초적인 향락의 기운이 나의 주변 모든 공간을 지배했다. 수려한 봉황 문양이 수놓인 붉은색 치파오로 멋을 낸 안내원이 우리를 창가 쪽 식탁으로 이끌었다. 주문을 마친 아내는 나의 손을 꼭 잡고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초록색 입욕제를 푼 목욕물에서 나던 상쾌한 향기가 흘렀다.이윽고 반짝이는 연녹색 식기들과 그 속을 가득 채운 탐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졌다. 공간을 지배하는 음식 냄새는 꿈처럼 몽롱하고 달콤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기억이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바람에 부서져, 땀으로 끈적거리는 피부에 사정없이 달라붙던 그 불쾌한 감각. 새로움에 대한 탄성은 금세 유쾌하지 않은 생소함에 자리를 내주었다. 차를 타고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온통 모래뿐인 곳. 그곳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끝없이 펼쳐져, 무(無)와 유(有), 가능성과 의아함, 비밀과 모순이 혼재된 기묘한 공간처럼 느껴졌다.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식탁 오른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수묵화풍의 사진에 정신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병풍처럼 장엄하게 펼쳐진 바위 절벽과 기괴한 형태로 솟아 있는 수많은 봉우리들. 그 앞을 굽이굽이 흐르는 듯 멈춘 듯 고요한 강에는, 물안개가 낮게 피어올라 한없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길고 좁은 쪽배 위에서 넓은 창의 밀짚모자를 쓴 어부가 외로이 노를 젓고 있는 모습. 온전히 대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정작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것은, 그 황홀한 사진 옆에 먹으로 새겨진 두 글자의 한자였다. 계림(桂林). 아주 오래전부터, 내 기억의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지명이었다.“어머, 정말 멋진 곳이네요. 우리 다음엔 저기 한번 가볼까요?” 아내가 나의 시선이 멈춘 곳을 훔쳐보며 말했다.“그러게. 어릴 때부터 멋있는 곳이라는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아, 그 옆집에 살았다던 중국 식당 아저씨?”“응. 자기가 계림 출신이라고, 입버릇처럼 자랑하곤 했거든.”“자랑할 만했네요, 정말.” 아내가 사진 속 풍경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5.


두 시간의 지루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홍콩발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의 자리는 늘 그렇듯 일반석 맨 앞줄 복도 쪽이었다. 한때는 하늘과 구름을 보는 것이 좋아 창가 쪽을 고집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전립선이 비대해지면서 생긴 잦은 빈뇨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화장실과 가까우면서, 옆 승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리가 절실해진 것이다.굳이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관찰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흐르는 인파 속에 섞여들어 낯선 이들의 혼잡함을 즐기듯 바라보거나, 카페나 식당의 테라스에 앉아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행인들을 쳐다보곤 했다. 항공기 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분주히 움직이는 승무원들과 그들이 상대하는 각양각색의 승객들, 그들의 행동과 표정, 주고받는 말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경청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 가족이 하나둘씩 곁을 떠나가면서부터 이 관찰의 버릇은 점점 더 늘어났고 집요해졌으며, 이제는 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나는 내 시야 속으로 들어온 그들을 보며, 그들의 인생을 멋대로 상상한다. 그들의 웃음을 보며 사랑의 형태를 추측하고, 무심한 표정에서 삶의 고단함을 엿보며, 오가는 말들의 뉘앙스에서 관계의 밀도를 짐작하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추측한 그들의 인생 조각들을 내 기억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채워 넣으며, 나만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나는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날, 내가 평생 동안 상상해온 그 수많은 인생 이야기에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기내는 빈자리 하나 없이 승객들로 가득했고, 공간은 마치 시골 장터에 온 듯한 소음으로 채워졌다. 대부분이 제주도로 향하는 중국인 관광객처럼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수수하고 가벼운 옷차림에, 얼굴에는 기대와 흥분, 그리고 순수한 즐거움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연인이나 가족, 혹은 오랜 친구 사이에서나 오갈 법한 가볍고 명랑한 톤의 대화들이 나의 입가에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내 옆자리에는 중년의 남자와 그의 어린 자식 둘이 나란히 앉았다. 아이들은 기내가 익숙한 듯, 자리에 앉자마자 헤드셋을 끼고 앞 좌석에 붙은 태블릿 PC를 능숙하게 조작하여 각자가 원하는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금방 빠져들었다. 내 옆의 남자는 신발을 벗고 미리 준비해 온 슬리퍼로 갈아 신더니,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인데 벌써 등받이를 비스듬히 눕히고 눈을 감았다.나는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비행기를 타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공중에서 보냈지만, 여전히 이륙과 착륙을 준비하는 순간에는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는 긴장을 멈출 수가 없다. 특히 이륙할 때는 나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좌석의 팔걸이를 손톱이 하얘지도록 꽉 움켜쥐곤 했다. 아내는 언제나 그런 나의 모습을 신기해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곤 했다. 결혼 전, 그러니까 그녀가 입사하고 첫 해외 출장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였다. 이륙을 앞두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나의 표정을 처음 발견한 그녀는, 작고 깡마른 자신의 손을 나의 어깨 위에 살포시 얹고는, 마치 겁먹은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같은 다정한 눈길을 보내주었다.나는 바로 그 순간, 그녀의 그 자그마한 품속으로 내 모든 것을 던져 파묻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그녀의 작은 손짓 하나만으로, 내 속을 가득 채웠던 정체 모를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지며,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깊은 안도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고향을 떠난 이후, 내가 얼마나 사무치게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왔는지를. 혹독한 한파 속에서 떨고 있는 내게, 누군가가 더없이 부드럽고 두툼한 외투를 건네준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영업 전문가로서, 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뛰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냉소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으로 포장했고, 그런 기만적인 확신 속에서 세상을 무의미하고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나는 주고받는 계산 속에서만 움직이는 나에게 길들었고, 현대인에게는 흔한 냉담함을 넘어, 때로는 경쟁자의 고통을 은근히 즐기는 일종의 사디즘적인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문득문득 섬광처럼 깨닫고 스스로에게 놀라곤 했다. 홀로 자신의 양심을 후벼 파는, 그런 절망적인 단계 말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를 냉혈한으로 만들어가는 그 처절한 냉담함 속에 스스로를 매장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나는 이제, 그녀의 손에서 전해진 그 따스함에, 그 다정함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그 너머에 있는 거대한 사랑의 세계를 보았다.


6.


이륙 준비가 완료되자, 바로 앞 출구 옆 벽면에서 간이 의자를 뺀 여승무원 한 명이 자리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맨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객실을 살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화답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 노란 경고등이 꺼졌다. 나는 창밖의 엔진 소리에 잠시 한눈을 팔았다. 작은 타원형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비단결처럼 건너와 실내를 환하게 밝히며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던 승무원들은 일제히 안전벨트를 풀고, 익숙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기내식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중저음의 엔진 소리 속에 간간이 아이 울음소리와 승무원들의 대화 소리가 묻어났다. 간이 주방 구역을 가리는 커튼이 분주히 오가는 승무원들 사이에서 경쾌하게 춤을 췄다.“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희 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인 승무원 송안나입니다.”갑자기, 조금 전 내게 미소를 보이던 그 여승무원이 성큼 내게 다가와 유창하고 부드러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홍콩 항공사에 한국인 승무원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사실 더 놀란 것은, 이 많은 승객들 속에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단번에 알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나의 의문은 그녀의 다음 말에 곧바로 풀렸다.“고객님께서 이 비행기에 탑승하신 유일한 한국인이십니다.”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내는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렇다면, 이 비행기를 가득 메운 승객들이 모두 중국인이란 말인가?’ 제주도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든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제야 그 현실을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그녀는 내게 기내식 메뉴판을 보여주었고, 나는 딤섬이 포함된 중식 메뉴를 선택했다.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시작으로, 나의 시선은 자석처럼 그녀를 쫓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졌다. ‘단지 같은 동포라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외양에서 풍기는 느낌은 다른 외국인 승무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소와 행동, 표정과 걸음걸이에서, 이성으로는 분석할 수 없는 어떤 묘한 끌림, 혹은 기시감 같은 것을 감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순간부터 나의 시선은 온통 그녀에게로 쏠리고 말았다.그녀가 기내식을 건네주었다. 나는 바로 그 순간, 음식을 건네며 살짝 올라가는 그녀의 입꼬리에서 섬광 같은 익숙함을 느꼈다.…소녀는 짜장면 두 그릇이 담긴 쟁반을 익숙하게 식탁 위에 놓았다.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배정받아, 어머니와 함께 처음 학교를 방문했던 날이었다. 앞으로 내가 살 자취방을 알아보던 중, 허기를 때우기 위해 학교 근처 허름한 중식당에 들렀다. 주방에서는 떠들썩한 중국말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늦은 오후라, 식당 안 손님은 우리 모자뿐이었다. 나는 짜장면 곱빼기를 그야말로 걸신들린 듯이 먹어 치웠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즐겁게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식당 벽에 서툰 글씨로 붙어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방 있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중국 식당 옆 다세대 주택의, 해가 들지 않는 지하방. 그리고 그 소녀는, 나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었다. 아쉽게도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6년이라는 세월을 같은 공간에서 알고 지냈다.그녀는 언제나 로맨틱한 서사가 담긴 문학 서적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다녔다. 그녀의 몸에서는 항상 달큼하면서도 들척지근한 양파 볶는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그리고 유난히 암청색의 예쁘장한 블라우스를 즐겨 입었다. 그녀 위로는 짓궂은 오빠가 셋이나 있었다. 가족 모두가 식당 일에 매달렸다. 아니, 그 식당이 그들 가족의 세계 그 자체였다. 그녀는 오빠들의 짓궂은 장난 속에서도, 방과 후면 언제나 식당 홀을 지키며, 그 나이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의미심장하면서도 생경한 쾌활함 속에 사는 듯 보였다.그녀는 온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말랐다. 하지만 그 마른 몸에는 살이 좀 투실투실하게 붙어 있으면서도 세련된 끌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집에서 부쳐주는 용돈을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식당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내 가난한 자취 생활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내 앞에 내려놓는 짜장면 한 그릇과, 그때마다 보여주는 그 묘한 미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에게 끌렸다.성산일출봉이 아스라이 보이는 바닷가. 고향에서의 마지막 봄. 교내 백일장 대회 날. 나는 그날, 비로소 진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감상에 젖은 채 한동안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옆에 놓인 새하얀 원고지가 바닷바람에 팔랑거리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하게 맑은 날이었다. 세상은 온통 하늘과 바다, 바람과 햇빛, 이 네 가지로만 이루어진 듯했다.“저기… 사진 한 장… 찍어줄까?”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섰다. 그리고 이내, 세상 모든 햇살을 머금은 듯 활짝 웃었다.


7.


“저, 혹시 노트와 펜을 좀 얻을 수 있을까요?”나의 소소한 취미 중 하나다.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노트와 펜은 디자인이 제법 괜찮고, 무엇보다 무료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낼 때면, 아주 짧은 글이라도 좋으니 반드시 손으로 쓴 편지를 동봉한다. 물론 그때마다 항공사에서 받은 노트를 이용한다.“제주도로 완전히 돌아가시는 길이세요?”그녀는 내게 작은 노트와 편지 봉투, 그리고 로고가 박힌 펜을 건네주며 물었다. 비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40년 만이네요.”“와…!” 그녀의 동그래진 눈에 순수한 놀라움이 담겼다. 그 표정이 퍽 재미있었다.“그럼 그동안은 어디에…?”“육지에서 한 10년, 그리고 독일에서 한 30년쯤 살았죠.”“그럼 제주도가 고향이시겠네요?”“네, 그렇죠.”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고향 분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아, 그럼 승무원님도?”“네, 저는 일곱 살 때까지 제주도에 살았어요.”그녀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한 승객이 다가와 그녀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빠른 중국어가 오고 갔다. 그녀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피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오기 전에 위성 사진으로 미리 좀 봤는데, 동네가 너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네, 정말 많이 바뀌었죠. 저는 워낙 어릴 때라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요….” 그녀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은퇴하고 나서, 여생은 고향에서 보내기로 작정하고 가는 길이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막상 고향에 간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네요. 마치 처음 가보는 외국에 가는 기분이라서….”“그럼 친척이나 친구분들은 좀 남아 계시고요?”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부모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형제들은 모두 서울에 살고…. 저희 집안이 원래 이북 출신이라 제주도엔 혈육이 없어요. 친구들도… 이제부터 한번 찾아봐야죠. 뭐, 딱히 정해진 소일거리도 없는데.”“그래도… 친구분들은 몇 분 계시지 않을까요?”“사실, 꼭 한번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긴 한데….”나는 주저하며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깊숙이 간직해 온, 세월의 흔적으로 가장자리가 닳아버린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온통 푸른 하늘과 더 푸른 바다. 그리고 그 눈부신 푸름 속에 투명하게 담겨 있는, 맑은 미소의 소녀. 나는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는 안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그녀의 표정. 그 표정 속에, 찰나와도 같은 짧은 순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혹스러울 만큼 많은 이야기가.“옆집에 살던 친군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줄곧 같은 학교에 다녔어요.”그녀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작게 까딱거릴 뿐. 그녀의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자기 고향이 계림이라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물론, 계림은 잘 아시겠지만….”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사진 속에 박혀 있었다. 마치 사진 속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듯,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사라졌다.딩. 딩. 딩.착륙 준비를 알리는 경고음과 함께 안전벨트 표시등이 켜졌다. 그녀는 그제야 멈칫하더니, 황급히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녀가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다양한 기계음을 내기 시작했다. 좌측으로, 또 우측으로 한 번씩 기우뚱거리더니 이내 평형을 잡았다. 창밖으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삽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김없이 긴장이 몰려왔다. 문득,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다. 바다를 닮았던 그녀의 깊은 눈동자가 그립다. 내 손등에 닿던 그녀의 작고 따스했던 손의 온기가 더욱더 그립다.나는 맞은편에 앉은 안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여전히, 나의 낡은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구름이 빠른 속도로 창을 비껴갔다. 지상으로 가까워질수록 세상의 풍경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갔다. 이윽고 활주로에 다다른 듯, 녹색과 회색의 아스팔트가 눈앞에서 잽싸게 스쳐 지나갔다. 쿵, 쿵, 몇 번의 강한 충격과 함께 기체가 크게 흔들리다, 이내 부르르 떨며 지독한 역추진 굉음을 내질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그녀의 눈에, 맑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나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리고도 따스한 위로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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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최종 병기 _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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